"핵심광물 11개 공급 제안하자…美 러트닉 장관 눈빛 달라져"
11조 사업 넉달만에 속전속결
작년 8월 한미 경제인 미팅서
독자적 제련기술 설명하자
美정부 먼저 달려와 판 키워
美전쟁부도 함께 움직여
中 핵심광물 수출 통제이후
美 "전투기 못띄울수도"우려
'미니온산'美공장 새시장 개척

"미국 정부가 먼저 문을 열어줬습니다. 우리가 억지로 두드린 게 아닙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현장에서 만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투자금 11조원 규모의 미국 테네시 통합제련소 건설 프로젝트(크루서블 프로젝트)는 업계의 예상을 깬 '깜짝 승부수'였다. 최 회장은 이 프로젝트를 "세계 최고 효율을 자랑하는 온산 제련소의 DNA를 미국에 이식하는 '미니 온산' 프로젝트"라고 규정했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로 위기에 처한 미국에 고려아연의 독보적인 제련 기술과 핵심 광물 공급망 제안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와일드카드'였다는 설명이다. 다보스 현지에서 최 회장을 직접 만나 긴박했던 협상의 막전막후와 비전을 들어봤다.
―2년 만에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다.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나.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광물 자원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커졌다는 걸 실감했다. 예전처럼 단순 채굴 단계가 아니라 제련·정련까지 가치사슬 전반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순환경제'에 대한 관심도 높다. 고려아연이 '도시광산(도심 폐자원을 재활용한 광물 생산 모델)' 같은 순환 공급망 모델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재자원화 기술을 열심히 축적해 온 덕분이다. 미국 측 인사들과 만나 공급망·투자 협력을 집중 논의했다."
―크루서블 프로젝트의 시작은.
"지난해 초부터 미국 투자를 고민했다. 처음엔 미국에 니켈 리사이클링 공장을 짓는 정도의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기술진이 아예 온산 제련소의 축소판, '미니 온산'을 만드는 게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결정적으로 일이 시작된 계기는 지난해 8월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순방 때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이었다. 이 자리에서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지정한 60여 개 핵심 광물 확보 과제 중에서 고려아연의 기술로 11가지를 영구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후 미 상무부와 전쟁부(옛 국방부) 라인이 동시에 움직이며 협상에 속도를 냈다. 아이디어 제안부터 투자 확정까지 4개월도 안 걸렸다. 내부에서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왜 '미니 온산' 모델을 제안했나.
"온산 제련소는 주력 품목인 아연·연·구리뿐 아니라 제련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에서 인듐·게르마늄 등 20여 종의 유가금속을 동시에 뽑아내는 세계에서 유일한 공장이다. 어떤 해는 은, 어떤 해에는 안티모니가 돈을 벌어주는 식으로 특정 금속 가격이 떨어져도 다른 금속으로 수익을 보완하는 구조다. 미국은 인건비와 시공비가 비싸지만 기존 온산 제련소 시설을 절반 규모로 압축·업그레이드해 효율을 극대화하면 승산이 있다고 봤다. 여기에 미국 내 폐배터리·태양광 폐모듈 등에서 나오는 스크랩(고철·폐자재)을 처리하는 '도시광산' 역할까지 더하면 수익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미국 정부가 전례 없이 직접 투자를 결정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지난해 중국이 갈륨·게르마늄 등 희토류·핵심 광물 수출을 통제한 후 미국의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경제 논리 비중이 80%였다면 이후에는 안보 논리 비중이 70~80%까지 올라간 느낌이다. 실제로 중국의 핵심 광물 수출 통제 후 미국에선 "전면전 상황에서 전투기를 띄우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크루서블 프로젝트의 카운터파트(협상 부서)가 전쟁부가 된 이유다."
―제련소 용지로 미국 테네시를 낙점한 이유는.
"미국 남부 60여 개 후보지에서 시작해 테네시를 최종 낙점한 결정적 이유는 '사람'과 '폰드(Pond·폐기물 적치장)'다. 테네시 클라크스빌에는 50년 넘게 가동된 아연 제련소와 광산이 있다. 숙련 인력이 이미 약 1000명 규모로 가족까지 포함한 커뮤니티가 자리 잡고 있다. 폰드에는 지난 50년간 쌓인 제련 잔재물 약 60만t 이상이 있다. 구리와 게르마늄 등을 다시 뽑아낼 수 있는데, 분석해 보니 그 가치만 조 단위다. 용지와 기존 제련소, 폰드까지 포함된 패키지를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에 인수하는데, 폰드 가치만 봐도 매력적인 딜이다."
―테네시 제련소의 수익성은 .
"2030년 공장이 준공돼 풀 가동되면 연간 감가상각전영업이익(EBITDA) 1조2000억원이 목표다. 현재 온산 제련소의 70~80%에 달하는 규모다. 미국은 아연 수요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테네시에서 생산되는 연간 30만t 수준의 아연은 대부분 북미 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다. 물류비까지 고려하면 국내보다 오히려 더 좋은 마진을 올릴 수 있는 전형적인 '셀러 마켓(판매자 우위 시장)'이다. 미국 정부의 각종 인센티브를 더하면 마진율은 국내보다 높을 것으로 본다."
―온산 제련소 축소 우려도 나온다.
"테네시 프로젝트는 기존 수출 물량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북미라는 새로운 시장을 여는 투자다. 국내 조업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없고 온산 투자는 앞으로도 연간 수천억 원 규모로 지속될 것이다. 온산 제련소는 한국 내 아연 수요의 절반가량을 공급하고 나머지는 동남아시아 등으로 수출하는 구조다. 미국향 물량은 거의 없다."
―테네시 제련소의 미래 비전은.
"북미 전역에서 쏟아지는 데이터센터 폐자재, 전기차 폐배터리 등에서 핵심 광물을 추출하는 '자원 순환 허브'가 될 것이다. 도시는 '가장 큰 광산'이다.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반도체·자동차 시장이 모여 있는 미국에서 도시광산 사업을 하지 않으면 되레 이상한 일이다."
최윤범 회장
최윤범 회장은 고려아연 오너 3세로 2007년 입사 후 온산 제련소 경영지원본부장, 페루·호주 등 해외 법인 경영을 거치며 현장을 밟아온 경영인이다. 미국 애머스트대에서 수학·영문학을 전공하고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와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보유했다. 호주 SMC 제련소를 흑자로 돌려세우며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 2022년 회장에 올라 '전략 광물 핵심 공급망 기업' 도약을 주도하고 있다.
[다보스 윤원섭 글로벌경제부장 / 서울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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