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친노 좌장, 이재명 멘토···역대 ‘민주 정부’ 산증인 이해찬 지다
김대중 정부 첫 교육부 장관·노무현 땐 실세 총리
민주 계열 당대표…‘비주류’ 이 대통령 지지 멘토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현지시간) 베트남에서 별세했다. 향년 74세.
여권 내 대표적 정책통이자 ‘친노 좌장’으로 불린 이 수석부의장은 진보 진영의 비주류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주류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한 ‘정치 멘토’이기도 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 23일 베트남 출장 중 건강이 급격히 악화해 현지 병원으로 응급 이송됐다. 이 수석부의장은 병원 이송 과정에서 심정지가 있었으나 호흡이 돌아와 베트남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았다. 이 부의장은 전날 베트남으로 출국하기 전 몸살 기운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오전 ‘몸 상태가 안 좋다’는 판단으로 귀국 절차를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대통령은 이 수석부의장의 위독 소식이 알려진 직후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보를 베트남에 급파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1952년 충남 청양 출생으로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이후 민청련 상임부위원장 등 재야활동을 하다가 1987년 평화민주통일연구회(평민련)를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에 들어가 정계에 입문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1988년 13대 총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화민주당의 간판으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민주정의당 김종인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관악을에서만 17대 총선까지 내리 5선을 했다. 초선 시절 노무현·이상수 의원과 ‘노동위 3총사’로 불렸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교육개혁을 이끌며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당시 여권 인사들이 김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할 때도 그는 직언하는 스타일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고건 전 총리에 이어 책임총리로 임명됐다. 노 전 대통령과 ‘맞담배’를 피우는 ‘실세 총리’로 국정 전반을 총괄했으나, 2006년 ‘3·1절 골프’ 파문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정동영 후보에게 졌다. 대선 패배 후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대표 체제가 출범하자 탈당했고 2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1년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야권 통합 추진 모임인 ‘혁신과 통합’을 주도했다.
2012년 19대 총선 때 세종시에서 당선된 뒤 민주통합당 대표에 올랐다. 그러나 18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사퇴 압박을 받은 끝에 중도 하차했다. 2016년 4·13 총선 때 공천 배제된 뒤 탈당, 무소속으로 당선돼 복당하는 곡절을 겪었다.

이 수석부의장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그러면서 당시 당내 비주류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2018년 당대표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서 당시 조폭 연루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이 대통령에 대해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이후인 2020년 20대 대선 경선에서 이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이른바 ‘이해찬계’ 의원들이 대거 이 대통령을 돕게 됐다.
2024년 4·10 총선에서 선거대책위원회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당시 당 대표이던 이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이어갔다. 그는 모두가 인정하는 여권의 대표적인 기획·전략가로 선거 전략 전문가이기도 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지난 총선 민주당 후보자 대회에 참석해 “선거를 많이 치러봤지만 나는 한 번도 안 떨어졌다”며 “선거는 연못에서 김이 나는 것과 비슷하다. 김이 나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못 막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지난해 10월 이 수석부의장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임명했다. 대통령실은 임명 소식을 전하며 “오랜 세월 통일 문제에 전념하고 활동해온 인사로서, 원숙한 자문을 통해 대통령의 대북·통일 정책을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 수석부의장은 ‘대쪽’ ‘버럭’이라는 별칭에서 느껴지듯 깐깐한 성격과 관련한 일화도 많다. 1997년 5월13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수석부의장은 불법 유턴을 한 자신의 차량에 ‘딱지’를 떼지 않은 교통 의경을 오히려 규정대로 처벌받게 했다. 13대 국회 노동위원 시절에는 돈 봉투를 들고 온 한 업체 간부를 사무실 밖으로 내쫓은 일도 있었다.
이 수석부의장은 생전 자신을 개량주의자라고 밝혔다. 그는 자서전 <청양 이 면장댁 셋째 아들 이해찬>(2007, 푸른나무)에서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근본주의적이거나 극단적인 주장에는 잘 끌리지 않는 개량주의자”라며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말은 ‘가치는 역사에서 배우고 방법은 현실에서 배우라’는 말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오가는 불성실하고 불철저한 근본주의자보다는 성실하고 철저한 개량주의자가 사회의 진보에 훨씬 더 기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고 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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