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 전승' 국회의원… '범민주 진영 좌장' 이해찬 전 총리 별세
DJ 정부 교육장관·참여정부 총리 역임
대선·총선 승리 이끌며 '킹메이커' 각인
'李 사람' 윤호중 김태년 이해식 등 주축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대표, 교육부 장관, 7선 국회의원 등을 지낸 '친노무현계 좌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25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이 전 총리는 화려한 경력, 강한 카리스마, 뛰어난 지략으로 정치인생 내내 범민주 진영 내에서 대체불가한 존재감을 보였다. 최근까지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활발히 활동했으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한국 정치권에 영원한 안녕을 고했다.
민주평통 측은 이날 "이해찬 수석부의장이 25일 별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22일 베트남 호찌민에 도착했으나, 다음 날인 23일 몸 상태에 이상을 느껴 귀국 절차를 밟던 도중 호흡 곤란으로 호찌민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스텐트 시술 등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오후 2시 48분(현지시간) 사망했다. 국내 운구는 27일 마무리 된다. 정부는 고인의 생전 헌신을 고려해 국가장·국장·국민장·민주평통 기관장 등 장례 절차를 어떻게 할지를 유족과 상의해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타공인 전략통, 1인자 같은 '킹메이커'
이 전 총리는 1952년 7월 10일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서울 용산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학교 섬유공학과에 입학했으나 자퇴한 뒤 사회학과로 재입학했다. 유신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 동안 복역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2년 6개월 형을 살기도 했다.
1988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 섰던 재야인사들과 함께 평화민주당에 입당했다. 1988년 국회의원 총선 때는 평민당 후보로 서울 관악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내리 5선을 했다. 집권여당 의원들과 날 선 공방을 피하지 않는 공격수로 활약하며 '버럭 해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대 총선에선 세종시로 지역구를 옮겨 당선됐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 배제를 통보받으며 위기에 처했으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후 민주당으로 금의환향했다. 이로써 7번의 총선 도전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전승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 전 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략통이자, 최고의 '킹메이커'였다.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캠프의 기획본부장을 지냈다. 앞선 초대 서울민선시장 선거 때는 조순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조순 서울시장을 당선시킨 뒤 정무부시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에는 교육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대선 출마를 권했다. 노무현 캠프 선거대책위원회 기획본부장을 맡아 노 전 대통령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우며 '친노 좌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대한민국 36대 총리다. 총리 시절 '행정부 2인자'로서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며 세종특별자치시 건설 등을 주도, '실세 총리', '책임총리' 등으로 불렸다.
2007년 대선에는 직접 도전했다. 그러나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서 패하며 뜻을 접었다.
2012년 6월 민주통합당 임시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치러진 18대 대선 직전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야권후보 단일화에 물꼬를 트기 위해 대표직 사퇴를 결단했다.

2020년 총선 압승 이끈 후 사실상 은퇴
문재인 정부 2년 차였던 2018년 7월 "정부 성공을 튼튼하게 뒷받침하겠다"며 민주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8월 전당대회에서 42.88%의 득표율로 민주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대표로서 이끈 2020년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석권하는 압승을 거두며 2년의 당대표 임기를 명예롭게 마쳤다. "당대표직을 제 마지막 소임으로 삼겠다"던 출마 일성대로 퇴임과 함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이재명 정부 첫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직에 취임했다. 민주평통은 대통령 직속 헌법기관으로, 민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정책 수립과 추진에 대해 의장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임기 중 별세하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이 전 총리의 마지막 이력으로 남게 됐다.
이 전 총리의 정치역정을 함께한 이른바 '이해찬의 사람들'은 현재 여권의 주축이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 전 총리가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이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2012년 이 전 총리가 민주통합당 대표를 맡았을 당시 사무총장을 지냈다. 당시 비서실장으로 이 전 총리를 보좌했던 5선 김태년 의원도 측근으로 분류된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여당 간사인 정태호 의원은 13대 국회에서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고, 과방위 간사인 김현 의원은 2007년 경선 당시 공보를 담당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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