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사조위 한계와 과제는] 유족·시민사회 중심 사고조사단, 신뢰성 더 높일 수 있다
‘조사대상=조사자’ 독립성 결여
참사 유족 의견 배제 반복돼
지역사회 주체기구 대안 꼽아
국회서 방치된 생명안전기본법
예방·조사 등 국가 책임 명시
조사단 독립·전문성 뒷받침도
사회적 참사에서 수사·사법 기관이 지닌 한계는 명확하다. 법 위반 여부를 중점으로 따지다 보니 수사 대상과 범위가 협소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각지대는 사고 책임자들에게 불필요한 면죄부를 줄 뿐 아니라 피해자의 일상 회복에도 걸림돌이 된다. 진상규명이 필요한 중대 사고일수록 독립된 조사 기구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한국 사회가 이러한 조사 기구 필요성에 대해 최소한의 공감대는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원NC파크 관중 사망사고 관련 시설물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도 사고 3주 만에 꾸려졌다. 다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채워나갈 부분이 적지 않다.
유족 투쟁 없이도 지속 가능해야
사조위 출범 이후 10개월 동안 유족은 딱 한 차례 회의에 참석했다. 그마저도 회의 도중 들어가 입장을 짧게 밝히는 수준에 그쳤다.
유족은 단 한 번의 발언 기회를 얻고자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고 경남도에 수차례 문의를 구해야 했다. 초기 사조위 운영 주체였던 창원시는 물론 경남도 또한 먼저 유족 측 의견을 묻지 않았다. 사조위 역시 유족 참관을 거부하는 등 유족을 배제했다.
유족이 사고 진상규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세월호 참사부터 이태원·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대형 재난 진상규명은 늘 유족 희생을 동력 삼았다.
송해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유가족은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를 가장 알고 싶은 사람"이라며 "내 몸이건 마음이건 간에 회복이나 치료는 그다음 문제지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유족이 받아들일 수 있는 독립된 사고 조사 기구 설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가족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건 사고 책임 유무를 형사 처벌만으로는 가릴 수 없다는 것"이라며 "단순히 업무상 과실치사이냐 아니냐만 보면 책임이 있어도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 일도 생긴다"고 털어놨다.
실제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를 받는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구청 관계자들은 2024년 9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유족 중심 조사 기구 재설치 가능성도
전문가들은 유족과 시민사회 중심으로 사조위를 다시 구성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6년 5월 28일 서울 구의역 승강장에서 벌어진 산업재해 사망사고 때도 두 개의 조사 기구가 설치됐다. 당시 '지하철 비정규직 사망재해 해결과 안전사회를 위한 시민대책위(이하 시민대책위)'는 서울시가 직접 꾸린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와 별개로 '구의역 사고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을 만들었다.
시민대책위는 진상조사단 구성을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각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하되 서울시와 운영기관인 서울메트로 등 관계자들도 포함했다. 또 서울시의 행정 지원도 끌어냈다. 진상조사단 2016년 6월 27일부터 2개월간 11차례 회의를 이어가며 현장 조사와 간담회를 벌였다. 그 결과 안전·기술·고용 분야에 걸친 11가지 권고안을 제시했다.
당시 진상조사단장을 맡았던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조사 대상인 지자체가 사조위 운영 주체가 된다면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제주항공 참사 역시 국토부 소속 기관인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조사를 맡으면서 독립성과 객관성 문제가 불거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사 기구 객관성을 확보하려면 독립적으로 구성돼야 하는 점은 물론 피해자 참여권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며 "누구보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원하는 피해자가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조사 기구 객관성을 끌어올리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도 "문제가 불거진 사조위가 내는 보고서만 기다릴 필요는 없다"면서 "유족과 시민단체가 직접 전문가를 꾸려서 독자적인 사고 조사 보고서를 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으로 근본 대안 마련해야
이번 사조위를 둘러싼 논란을 비롯해 대형 재난 때마다 반복되는 사고 조사 어려움을 해소할 대안으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 꼽힌다.
생명안전기본법은 모든 사람의 안전권을 법률로 명시하고 국가와 지방정부 예방·관리·조사·피해자 구제 책임을 규정하자는 게 골자다. 2020년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 핵심 가운데 하나는 상설 조사 기구 설치와 관련된 내용이다. 지금까지 사고 조사 기구는 대형 재난이 발생한 이후 설치됐다. 그렇다 보니 신속한 구성이 어렵고 독립성과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았다. 또 일회성 조사 기구인 까닭에 조사 결과에 대한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데도 한계가 존재한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한국 사회도 그간 대형 재난을 겪으며 여러 사고 조사 관련 경험을 축적했는데 이를 공적 시스템 안에서 체계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사고 조사를 한데 모아 역량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상설 조사 기구가 설치되면 중대시민재해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상대적으로 중대산업재해 논의는 활발하게 이어졌지만 같은 법안에 담긴 중대시민재해는 관련 사례가 적은 까닭에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전 연구원은 "시민이 사망한 사고를 두고 어디까지가 중대 사고이며 누가 어떻게 조사할 것인지 등 모호한 지점이 적지 않다"며 "상설 조사 기구가 설치되면 직접 중대재해 여부를 판단하거나 수사 기관에서 드러나지 않은 문제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명안전기본법에 피해자가 참여하는 재난 조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앞으로는 피해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재난 조사에 참여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며 "조사가 종결됐다고 해도 이번 사례처럼 유가족이 조사 기구를 신뢰하지 못할 때는 상설 조사 기구가 나서 재조사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끝>
/박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