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언박싱] 티파니, 문구점에서 결혼반지의 대명사로

김수연 2026. 1. 2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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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5번가의 이른 아침.

1837년 코네티컷 출신 20대 청년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친구와 함께 뉴욕으로 상경해 차린 정찰제 문구팬시점 '티파니앤영'이 이 브랜드의 전신이다.

브랜드는 링컨 대통령이 부인 메리 토드 여사에게 줄 선물로 '티파니 시드 펄 네클리스'를 살 정도로 1860년대 '미국 보석상' 대표 주자로 성장했다.

현재 티파니는 200년 가까운 전통이 빚어낸 브랜드의 탁월함을 지속시킬 혁신을 만들기 위한 날갯짓을 퍼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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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 웨딩링. [티파니앤코 홈페이지 캡처]

<15> 티파니


뉴욕 5번가의 이른 아침. 블랙 드레스를 입은 한 여자가 보석상 쇼윈도를 바라보고 있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 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란 영화의 첫 등장 신이다. 이 한 장면으로 그녀는 우아함의 상징이 됐고 그녀의 시선이 꽂힌 보석 브랜드는 선망의 상징이 됐다. 1960년대 미국 문화의 상징이 된 브랜드, 티파니 이야기다.

1837년 코네티컷 출신 20대 청년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친구와 함께 뉴욕으로 상경해 차린 정찰제 문구팬시점 ‘티파니앤영’이 이 브랜드의 전신이다.

티파니하면 떠오르는 연한 청록색 상자도 이 무렵 나왔다. 신부가 하객에게 터키석이 들어간 비둘기 브로치를 선물하던 당시 미국 웨딩 문화에서 착안해, 결혼식 답례품 박스로 푸른색 상자를 사용한 게 시작이었다. 1845년 카탈로그 ‘블루북’에서부터 쇼핑백, 제품 박스 등에 이 색을 사용했다.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난 1998년 이 브랜드의 상징 컬러는 ‘티파니 블루’로 상표등록이 됐다. 2001년엔 팬톤이 티파니앤영 설립년도를 따서 ‘1837 블루’로 명명했다.

문구상 찰스 티파니가 고부가가치 주얼리 산업에 발을 디딘 건 1851년이 돼서다. 은 세공업체 하나를 인수하며 사명을 ‘티파니앤코’로 바꿨다. 브랜드는 링컨 대통령이 부인 메리 토드 여사에게 줄 선물로 ‘티파니 시드 펄 네클리스’를 살 정도로 1860년대 ‘미국 보석상’ 대표 주자로 성장했다. 1867년엔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은제품 부문 최고상을 받으며 국제적 명성까지 얻었다. 창업자의 과감함은 브랜드의 위상을 ‘퀀텀점프’ 시켰는데, 1878년의 티파니가 그랬다.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287캐럿의 노란 다이아몬드를 구매해 82면 커팅과 일명 ‘티파니 세팅’으로 불리는 육지 세팅(여섯 개의 백금으로 된 발이 다이아몬드를 받치는 형태의 세팅)을 적용한 것. 이로써 크기가 아닌 광채로 승부하는 다이아몬드 업계의 새 룰을 세팅했다. 상승가도는 전쟁엔 힘을 잃었다. 1955년 2차 세계대전 이후 고객 감소, 매출 부진으로 경영이 악화하면서 창업자가 물러났고, 회사는 월터 호빙에게 인수돼 브랜드 재건에 나섰다. 1980년 호빙 회장 퇴임 이후 CEO 변경과 경영체제 변화를 겪었지만 ‘최고의 품질만을 제공한다’는 창업자의 철학만은 지켜왔다. 이를 지켜 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이 2021년 158억달러에 인수하며 티파니는 ‘자본력’이란 날개를 달게 됐다. 현재 티파니는 200년 가까운 전통이 빚어낸 브랜드의 탁월함을 지속시킬 혁신을 만들기 위한 날갯짓을 퍼덕이고 있다.

김수연 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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