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안 짓습니다”…서울 재건축 단지 ‘상가 다이어트’ 확산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2026. 1. 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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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 ‘올파포’ 단지 내 상가 300여 곳 여전히 공실…경매 나와도 대부분 유찰
미분양·공실 공포에 상가 축소·폐지 확산

(시사저널=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한때 정비사업의 수익 창출원으로 통했던 단지 내 상가가 최근 미분양과 공실 공포 속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들은 상가 규모를 대폭 줄이거나 아예 계획에서 빼는 등 본격적인 상가 지우기에 나선 모양새다. 불확실한 상가 수익 대신 수요가 확실한 주거 분양에 집중해 사업 리스크를 낮추려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우성4차 재건축조합은 조만간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기존에 계획됐던 상가 건립안을 전면 백지화하는 정비계획 변경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당초 조합은 지하 1층~지상 1층 규모로 13개 호실의 상가를 지어 분양 수입 82억원을 거둘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준공 후 공실 리스크와 조합원 부담 증가 우려가 커지자 분양 수입을 포기하고 상가 공간을 삭제하기로 했다.

상가 기피 현상은 서울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영등포구 여의도 공작아파트는 최근 상가 면적을 기존 1만4000㎡에서 5200㎡로 60% 이상 축소하는 정비계획을 확정 지었다. 동작구 노량진4구역은 신축 계획에서 상가 시설 자체를 배제했다. 인근 노량진1·3구역 역시 상가 규모를 줄이는 대신 주택 분양 면적을 늘리는 방향으로 사업 계획을 조정했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7차 역시 단지 내 중심시설용지를 폐지하는 등 상가 최소화에 나섰다.

조합들이 기회비용을 감수하면서 상가를 포기하는 건 아파트와 상가의 미분양 리스크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견고해 미분양 때에도 대안 마련이 용이한 반면 상가는 장기 공실이 발생할 경우 조합이 관리비와 각종 세금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1월21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아이파크리버포레2차 아파트 단지 상가 곳곳이 공실로 임대문의가 붙어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강남권 대단지도 '공실 늪'에 빠졌다

정비 업계 관계자는 "최근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상가가 과거처럼 분담금을 낮춰주는 효자 노릇을 하기 어렵게 됐다"며 "사업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불확실성이 큰 상가 대신 수요가 확실한 주거 면적을 극대화하는 실리 위주의 전략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합들의 선택은 최근 입주한 대단지의 '상가 공실 쇼크'와 맞닿아 있다.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사례가 대표적이다. 입주가 시작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단지 내 상가 477개 호실 중 약 63%인 300여 곳이 여전히 전월세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채 비어있다. 대규모 배후 수요를 갖췄음에도 높은 임대료와 유동인구가 모이지 않는 동선 구조로 상권 회복이 더디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강남권 신축 단지도 예외가 아니다. 2023년 입주한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는 핵심 입지인 1층 상가조차 일부 공실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서초구 '메이플자이'는 상가 통매각을 추진하다 한 차례 유찰된 뒤 기준가를 10% 낮춰 겨우 주인을 찾았다. 가격을 낮춰서라도 상가 물량을 빠르게 털어내 기회비용을 줄이겠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업계 관계자는 "강남권 대단지조차 상가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며 "신규 사업장들 사이에서는 '상가는 무조건 수익이 난다'는 공식이 깨진 지 오래"라고 전했다.

시장 지표도 상업용 부동산의 경색 국면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집합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3분기 기준 9.3%를 기록했다. 이는 2023년 3분기 8.3%, 2024년 3분기 9.1%에 이어 꾸준히 상승한 수치다.

공실률이 늘어난 건 토지 가격 상승으로 상가 분양가가 높아지면서 임차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고임대료가 형성된 결과다. 소유주 입장에서는 고가에 분양받은 자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임대료를 쉽게 낮추지 못하고, 자영업자들은 고금리와 인건비 부담 속에 이를 감당하지 못해 공실이 장기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경매 지표에서도 위기 신호가 선명하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상가 경매 진행 건수는 141건으로 전년 대비 41%나 급증했다. 공실과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한 소유주들이 경매시장으로 내몰린 결과다. 반면 낙찰률은 20%대에 그쳤다. 경매에 나온 상가 10곳 중 8곳은 유찰됐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근본 원인으로 소비 패턴 변화를 지목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2019년 약 136조원에서 지난해 연간 기준 270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배송 서비스 발달로 생활밀착형 상가의 집객력이 약화됐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고금리와 인건비 부담까지 겹치며, 높은 분양가를 감당할 임차인을 찾기 어려운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서울시의 정책 변화도 한몫했다. 시는 지난해 정비사업에서 상가 등 비주거시설 의무 설치 비율을 기존 20% 이상에서 10% 이상으로 완화했다. 조합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큰 상가를 의무적으로 조성해야 할 부담이 줄어든 셈이다.

"주거 편의성 저하 경계해야" 목소리도

전문가들은 정비사업장의 '상가 슬림화'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불확실성이 큰 상가 대신 수요가 비교적으로 안정적인 주거 공급에 무게를 두는 조합들의 전략이 하나의 기준처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성 확보를 위해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려는 판단이 전반적인 정비사업 기조로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급격한 상가 축소 바람이 자칫 입주민의 주거 편의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편의점, 세탁소, 병·의원 등 필수적인 생활밀착형 시설까지 부족해질 경우 입주민들이 간단한 소비를 위해 단지 외부로 나가야 하는 불편을 겪을 수 있어서다.

권대중 한성대 일반대학원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당장의 미분양 공포 때문에 상가를 무조건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가 결여된 단지는 결국 '주거섬'처럼 고립돼 장기적인 주거 선호도와 단지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면적을 줄이는 것을 넘어 단지의 규모와 입지 특성을 고려해 입주민에게 꼭 필요한 필수 업종 위주로 상가를 내실 있게 구성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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