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는 착혀”…고맥락 사회, 충청도의 말
이봉현의 농막 일기 18: 시골 말 이해하기

“고추밭 참 개갈 안 나네.”
밭에서 일할 때 동네 어르신이 지나며 툭 던지는 이 한마디는 외지인에게는 암호와 같다. 사전적 의미의 ‘개갈’은 논밭 둑을 다듬는 일을 말하지만, “개갈 안 난다” 하면 본래 뜻은 희미해 지고 “일이 시원치 않다” 거나 “불만족스럽다”는 비유적 표현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어르신은 “비가 자주와 고추 작황이 형편 없다”고 한 걸까 아니면 “고추밭에 풀이 너무 우거져 심란해”라고 한 것일까? 듣는 사람이 알아서 판단하거나 되물어야 한다. 이처럼 드러난 표현 보다 속뜻을 읽어내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한 곳, 충청도는 전형적인 ‘고맥락(High-context) 사회’이다.
귀에 착착 감기는 충청도 사투리
그 까닭은 말에 관해 내가 ‘경계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충청남도 논산으로 전학을 왔다. 아버지가 고향에 사업체를 차려서였다. 고등학교는 대전에서 다니고 대학 때 서울로 다시 왔으니 충청도에서 산 시간은 10년 남짓이다. 살아온 인생에 비할 때 짧은데도 서울에서 나는 여지없는 충청도 사람이다. 내 딴엔 서울말을 반듯하게 쓴다고 생각하지만 (대학 졸업반 때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을 본 적도 있다), 남들은 “말투를 보니 딱 충청도네” 한다. 부모의 고향이고 감수성 예민할 때 머문 고장이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주말의 나는 ‘서울에서 온 젊은이’가 돼, ‘저분이 무슨 뜻으로 말을 저렇게 하지?’ 하고 곱씹는 사람이다.
부정도 긍정도, 칭찬도 비난도 되는 말
그런 신묘함 때문인지 충청도 말은 근래 핫한 문화적 소재가 됐다. 유튜브에는 충청도 사투리를 유머러스하게 다루는 콘텐츠가 넘친다. 드라마와 영화도 충청도 사투리의 맛을 드러내는 작품이 늘었다. “니가 오늘 한 짓은 말여, 꽃다운 18세 소녀의 마음에 농약을 친 겨” 같은 구성진 대사가 이어지는 10부작 드라마 ‘소년 시대’(2023년 말 방영)는 공주 바로 옆 동네 부여가 무대이다. 1989년 부여농업고등학교(실제 부여에는 그런 학교가 없다)로 전학 온 ‘온양 찌질이’ 장병태(임시완)가 싸움짱인 ‘아산 백호’ 정경태(이시우)로 오해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출연자들이 사투리를 찰지게 구사해 충청도 말의 교과서 같았다. 2019년 방영된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배우 강하늘 등 출연자들이 현장감 있는 충청도 사투리를 보여줬다.
충청도 말은 느리고 온화하다. 그래서인지 말하는 사람도 순해 보인다. 말끝을 늘이고 급하지 않게 말 하는데, “빨리 와” 하지 않고 “빨리 와~~” 한다. 독특한 종결어미 ‘햐아’, ‘겨어’, ‘여어’를 써서 길게 끌어주는데, “아 말로 햐아~~”, “왜 그러는 겨어~~” “그래서 내가 귀띔 했쟈녀어~~” 등이다. “밥 먹었슈~” 처럼 유~, 슈~를 길게 발음하는 것도 친근감을 더한다.
“애는 착혀”는 비난일까 칭찬일까

미용실 물 뜨거우면 “닭 튀겨유?”
충청도 말은 메시지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 뜻을 잘 살펴 들어야 한다. 한번은 아내가 “아, 그게 그 뜻이었구나! ”하며 혼자 아쉬워한다. 낮에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을 준비하는데 동네 할머니 한 분이 “김치가 이걸로 될라나 모르겠네”를 혼잣말처럼 두어 차례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이 나이에 내가 하기는 귀찮으니 젊은 자네가 김장김치 좀 꺼내다 더 썰어야겠네”란 말이란 걸 아내는 밥 다 먹고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본심이 뭔지 몰라 답답할 경우는 뭐니 뭐니 해도 선거철이다. 출마한 정치인 와서 “이번에 나 찍을 거쥬?” 하면 “그때 가봐야 알쥬~” 이상의 답을 듣기 어렵다. 한데, 그 정치인이 돌아가려고 악수하고 다닐 때쯤 살짝 다가와서 “그 표가 어디 가남유~” 해서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관찰, 거리두기, 우회하기

말은 굼떠 보여도 과감한 행동
더욱 놀라운 반전은 말과 대비되는 그들의 행동에 있다. 평소엔 굼떠 보여도 마음먹은 일에는 거침이 없고 과감하다. 상해 훙커우 공원에서 물통 폭탄을 던진 윤봉길(예산) 의사를 비롯해 유관순(천안), 김좌진(홍성) 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충청도에서 배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에 누가 던질 텐가?”라는 물음에 “일단 줘 봐유~”라고 무심하게 답했을 법한 그들의 강단은 충청도식 기질의 정수를 보여준다.
충청도는 국토의 중원이면서 경계에 놓인 공간이다. 영남, 호남, 수도권, 강원과 맞닿아 이방의 풍속과 물상이 흘러들어 관통하고 섞여 독특한 생활양식과 성향을 빚어냈다. 충청도의 말은 그런 ‘충청도 기질’을 보여주는 ‘고갱이’이다.
귀농이든 5도 2촌이든, 시골 마을에서 겉돌지 않으려면 그들의 말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사투리를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람의 마음과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더불어 충청도와 서울에 걸친 ‘경계인’ 나에게는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 지를 들여다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충청도 말의 은근한 온도에 익숙해질 때쯤, 우리는 비로소 그들이 건네는 ‘고맥락의 다정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봉현의 농막일기는?
기자로 35년간 서울에서 일했습니다. 혼자 집중할 때 에너지를 얻는 편이어서, 텃밭과 정원이 있는 호젓한 공간을 꿈꿔왔습니다. 마침내 충남 공주의 산간마을 밭을 사 2018년 사과대추, 자두 등 유실수를 심었습니다, 2020년 봄부터는 농막을 들여놓고 금요일 밤에 내려가 주말 텃밭 농사를 짓고 옵니다. 5년간의 ‘5도2촌’ 생활에서 경험한 기쁨, 시행착오, 지역의 현실 등을 담아 격주로 독자를 만나려 합니다. 한겨레 로그인 콘텐츠 ‘오늘의 스페셜’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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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막 ‘이런 곳’에 지어야 후회 안 한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travel/1201444.html?h=s
▶‘느낌’에 확신을 더하라…농지 구매 체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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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를 놀렸더니, 경고장이 날아왔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06246.html?h=s
▶농막에서 빚어 먹는 막걸리와 쑥인절미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31776.html?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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