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 후 ‘딱 10분’…문 닫는 그 1초가 곰팡이 천국을 만든다
“물기 남아 있는 게 싫어서요. 빨리 문 닫고 나오는 게 습관이 됐죠.”

하지만 이 짧은 행동 하나가 욕실 공기를 바꾸고, 그 공기가 다시 집 안으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 세계 주택 절반 ‘습기 몸살’…한국은 더 심각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전 세계 주택의 최소 10%에서 많게는 50%가량이 과도한 습기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된 원인은 환기 부족과 부실한 단열이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철 실내외 온도 차가 큰 한국은 곰팡이가 살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국립환경과학원 주거 실태 조사에 따르면 겨울철 국내 단독주택과 빌라의 25~30%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곰팡이가 발견됐다. 집 네 곳 중 한 곳은 이미 곰팡이 습격을 받았다는 뜻이다.
◆샤워 끝난 뒤 욕실, 가장 느리게 식는다
샤워가 끝나면 물은 멈추지만, 욕실 안 환경은 그대로 남는다. 벽과 바닥에 맺힌 수증기, 따뜻한 공기, 배수구 주변의 잔여 물기까지.
겨울철에는 창문을 여는 집이 거의 없어 습기는 빠져나갈 곳을 잃는다.
서울 시내 다세대주택을 관리하는 한 시설 관리자는 “곰팡이 민원이 들어오는 집들을 보면 대부분 구조나 자재보다 생활 습관이 비슷하다”며 “샤워 직후 환기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곰팡이, 눈에 보일 땐 이미 늦다
곰팡이는 얼룩이 생기기 전부터 움직인다. 포자 상태로 공기 중을 떠다니다가 습기와 온도를 만나면 자리 잡는다. 욕실은 이 조건이 가장 쉽게 충족되는 공간이다.
한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곰팡이는 번식 속도가 빠르고, 포자가 워낙 가벼워 욕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며 “수건, 옷, 공기를 타고 생활공간으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이 포자를 들이마시는 순간, 문제는 호흡기로 넘어간다.
◆코 좀 막히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곰팡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알레르기성 비염, 기관지염, 천식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만성 기침이나 잦은 코막힘을 호소하는 환자 중 상당수가 실내 환경 문제를 함께 안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연구진은 가정 내 습기와 곰팡이에 노출된 경우, 호흡기 질환 발생 위험이 최대 50%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한국 집 구조, 더 불리한 이유
한국 가정의 다수는 샤워 공간과 세면대가 분리되지 않은 ‘습식 화장실’을 사용한다. 샤워 한 번이면 욕실 전체가 젖는다. 타일 사이 줄눈뿐 아니라, 수건과 세면도구, 플라스틱 수납함까지 습기를 머금는다.
한 인테리어 업계 관계자는 “곰팡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수납장 뒤쪽이나 변기 하부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먼저 번식한다”고 말했다.
해결 방법은 복잡하지 않다. 샤워를 마친 뒤 환풍기를 10~15분만 더 켜두는 것. 가능하다면 욕실 문을 살짝 열어 공기를 순환시키는 것.
바닥에 고인 물만 한 번 밀어내도 습도는 눈에 띄게 떨어진다. 기자가 확인한 일부 다세대주택 욕실에서는 환풍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전원이 꺼진 채 방치돼 있었다.
전문가들은 “곰팡이는 환경이 맞지 않으면 자리 잡지 못한다”며 “제거제를 쓰기 전, 먼저 곰팡이가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다음엔 환풍기부터 켜야겠네요”라며 욕실 쪽을 한 번 더 돌아봤다. 문을 닫는 데 걸리는 몇 초보다, 그 뒤에 남는 공기가 더 오래 집에 머문다는 걸 알게 된 뒤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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