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정책 리포트] 독서국가, 구호로 끝낼 것인가 생활로 만들 것인가

김현주 기자 2026. 1. 2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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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김현주 기자

[한국독서교육신문 김현주 기자]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독서국가 선포식 및 독서국가 추진위원회 출범식'은 독서를 바라보는 국가의 시선을 분명히 드러낸 자리였다. 이날 국회는 독서를 개인의 선택이나 학교 교육의 한 영역으로 두지 않고,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적 과제로 끌어올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AI 시대, 이제는 독서시대'라는 메시지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교육과 사회 전반의 방향을 다시 묻는 질문에 가까웠다.

'독서국가'라는 선언은 독서가 더 이상 개인의 선택에만 맡겨질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확산될수록, 인간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더 많이 외우는 힘이 아니라 읽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힘이라는 점이다. 독서는 그 출발점에 있다. 이번 선포식에서 제시된 생애주기별 독서교육, 지역 기반 독서환경, 학교도서관 강화 등은 독서를 국가 차원의 구조로 설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선언 이후를 묻다

그러나 독서국가의 성패는 선언의 크기가 아니라, 이후의 움직임에서 갈린다. 정책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독서가 실제로 삶 속에 자리 잡는지는 다른 문제다. 결국 독서국가는 회의장이나 문서가 아닌, 누군가 책을 사고, 정해진 시간에 읽고, 그 시간을 다시 다음으로 이어갈 때 비로소 형태를 갖춘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것은 이미 현장에서 준비되고 있는 움직임이다. (사)국민독서문화진흥회 책읽는나라운동본부(김을호 회장)는 최근 협의회와 지회·지부·분회가 한자리에 모이며, 독서공동체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함께 읽기'를 실제로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수요책갈피, 함께 읽는 시간을 만들다

그 상징적인 시도가 오는 2월부터 시작되는 온라인 독서모임 「수요책갈피」다. 매달 격주 수요일 저녁, 전국 어디에 있든 같은 책을 들고 온라인으로 연결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정기적인 날짜와 시간은 독서를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의 일정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다.

수요책갈피는 대규모 행사가 아니다. 눈에 띄는 성과를 앞세우지도 않는다. 대신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리듬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독서국가가 말하는 '생활 속 독서'는 이런 반복에서 출발한다. 같은 요일, 같은 시간, 같은 책을 함께 읽는 경험은 독서를 혼자의 과제가 아니라 관계 속의 활동으로 바꿔 놓는다.

책 읽는 가족 10만 세대, 숫자보다 습관을 향해

「책 읽는 가족 10만 세대 캠페인」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이 캠페인은 이미 10만 세대가 참여하고 있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매달 한 세대씩, 꾸준히 늘려가겠다는 약속에 가깝다. 매월 11일, 가족이 함께 책을 구매하고 읽는 시간을 갖자는 제안도 같은 이유에서 출발했다.

날짜를 정해 반복하는 행동은 습관을 만든다. 가정에서의 독서는 아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모가 함께 책을 고르고 읽는 과정은 가족 안에 읽는 문화를 남긴다. 독서국가가 학교 교육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서는 결국 가정과 일상에서 지속될 때 힘을 갖는다.

정책과 시민의 독서가 만날 때

국회가 제시한 독서국가 비전과 책읽는나라운동본부의 움직임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출발했지만,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국회는 제도와 정책, 예산과 법을 통해 길을 열 수 있다. 시민들은 그 길 위에서 실제로 걷는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독서국가를 만들기 어렵다.

독서국가는 위에서 내려오는 정책으로도, 아래에서 자발적으로만 이뤄지는 운동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정책은 지속성을 확보해 주고, 시민의 실천은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수요책갈피」와 「책 읽는 가족 캠페인」처럼 반복 가능한 일상의 장치들이 정책의 방향과 맞물릴 때, 독서국가는 비로소 현실이 된다.

선언을 넘어, 반복으로

독서국가 선포식은 출발선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매달 책을 고르는 손, 정해진 시간에 화면 앞에 모여 책을 여는 모습, 가족이 함께 읽는 풍경이 쌓일 때 독서국가는 단단해진다. 선언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독서는 반복으로 완성된다.

국회의 정책과 시민의 일상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독서국가는 구호가 아니라 삶의 모습이 된다. 독서국가를 향한 길은 이제 막 열렸다.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갈지는, 함께 읽기로 한 우리의 약속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