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汶楗 풍수유람] 64. 영월 풍수기행…단종과 충신 엄흥도 묘
영월하면 떠오르는 것이 단종(端宗)이다.
조선왕조에는 27명의 임금이 있었지만, 적장자로 보위에 오른 사람은 7명에 불과했다. 그 중에서도 단종은 적장손으로 태어난, 역대 국왕 중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권력에 눈이 멀은 수양에게 보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어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함석헌(咸錫憲, 1901~1989년)은 수양이 일으킨 계유정난(靖難)을 정난이 아닌 “찬탈”로 규정했다. 유학을 국시로 하는 조선의 정신은 이 때 죽은 것으로 보았다.
춘원 이광수는 1928년 동아일보에 217회에 걸쳐 <단종애사>를 연재한다. 병마와 싸워가며 탈고했다. 어떤 독자는 “동아일보 왔소”가 아니라 “단종애사 났소”라고 물을 정도의 인기몰이 였다.인기몰이를 했었다.
단종의 숨결이 남아있는 영월로 향했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은 남한강 뱃길과 이포나루에서 천리 여정으로 청령포에 도착한다. 그리고 4개월 후인 1457년 11월 16세로 생을 마감했다.
복원된 어소 옆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비(碑)가 있다. 영조가 39년(1763)에 직접 글씨를 썼다고 하며, 유지비가 있는 곳이 어소였다고 한다.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 단종의 시신은 방치되었다.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라는 엄명 때문이었다. 당시 영월지역의 호장이었던 엄흥도가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다. “선한 일을 하다 화를 당하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다”라며 관을 비롯한 장례 용품 일체를 마련하여 장사를 치룬다. 이후 엄흥도는 벼슬을 내려놓고 아들과 영월을 떠나 평생을 은신하였다. 충절로 영월 엄문(嚴門)과 영월을 빛내주었다.

원래는 가매장 하였으나, 59년 후에 봉분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숙종이 단종을 복위시킴에 따라 장릉이란 능호도 받게 된다.

이곳은 기운은 아래에서 위로 빠져나가고, 장릉은 면배의 배(背)에 모셨다. 동구릉에 모신 현릉(顯陵, 문종과 현덕왕후)이 자리가 안된 것도 마음에 걸린다.

단종의 혼령이 태백산으로 가던 중 이곳 솔고개에서 쉬어가다가 소나무의 배웅을 받았다는 전설도 생겨났다. 원래는 중동면이었으나 산솔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소나무가 350회절이 넘는 천하대지에 자리한 덕분이리라. 필자는 자장율사가 소점한 적멸보궁 몇 곳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이곳은 풍수파워는 적멸보궁에 비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강원도에는 이와 같은 천하대지가 여러 곳 있다. 뉘라서 알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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