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듣고 있다고 믿어왔을 뿐이다
임형섭, 감각의 질서를 다시 배열하다

세계는 점점 더 빠르게 설명됩니다.
보는 즉시 이해하고, 이해하는 순간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 일상이 됐습니다.
그 속도 앞에서 감각은 늘 뒤처집니다. 감각은 확인되기보다 처리됩니다.
30일 서울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 시작하는 임형섭 개인전 ‘LHS 1140 b: 관측 이후의 잔향’은 이 흐름을 의도적으로 늦춥니다.
이 전시는 제주를 재현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제주를 안다고 말해온 감각의 작동 방식이 얼마나 정형화돼 있었는지를 청각의 공백으로 드러냅니다.
화면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소리는 즉각 따라오지 않습니다.
그 틈에서 관객은 감각이 어떻게 길들여져 왔는지를 스스로 마주합니다.

■ 관측은 끝났지만, 감각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LHS 1140 b’는 지구와 유사한 환경을 가졌다고 보고된 외계 행성의 이름입니다.
수치와 데이터로는 설명되지만, 인간의 경험 안으로는 쉽게 진입하지 않는 대상입니다.
임형섭은 이 이름을 통해 우리가 현실을 이해한다고 말할 때 실제로 무엇을 근거로 삼고 있는지를 건드립니다.
관측은 완결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감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보가 정리된 이후에도 설명되지 않은 인상이 남습니다.
전시는 바로 이 이후의 상태를 전면에 둡니다.
의미로 봉합되지 않은 감각이 어떤 밀도로 남아 있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 풍경은 남아 있지만, 소리는 그 자리에 없다
전시의 영상과 사운드 작업들은 이미지와 청각을 일부러 결합시키지 않습니다.
‘arrival’과 ‘청각적 풍경’에서는 제주에서 채집된 화면 위로, 그 장소를 즉각 떠올리게 하지 않는 소리가 흐릅니다.
자연은 보이지만, 자연의 음향은 제공되지 않습니다.
이 어긋남은 연출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우리가 특정 이미지를 볼 때 자동으로 기대해온 소리와 정서가 얼마나 학습된 반응이었는지를 드러냅니다.
관객은 자신이 무엇을 당연한 감각으로 받아들여 왔는지를 인식하게 됩니다.
■ 제주에서 소리를 채집하며, 감각의 관성에 부딪히다
임형섭은 제주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하며 소리를 수집했습니다.
하지만 작업은 기록으로 수렴되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진짜 소리’라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소리로 인식하도록 훈련돼 왔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관광’ 이미지 속에서 제주는 청각까지 포함해 이미 패키지화돼 있습니다.
파도와 바람, 자연이라는 조합은 거의 반사 작용처럼 작동합니다.
작가는 이 결합을 분리해 놓음으로써 감각이 대상이 아니라 관념을 따라 움직여 왔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 가장 정확한 기호로 드러나는 불확실성
신작 ‘untitled’는 숫자를 전면에 배치합니다.
가장 명확한 기호지만, 그 숫자가 무엇을 지시하는지는 끝내 확정되지 않습니다.
정확함이 곧 이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 작업에서 노출됩니다.
‘악보를 위한 호흡’은 숨소리와 코골이처럼 음악의 규범 밖에 있던 소리를 악보로 옮깁니다.
작곡을 전공한 작가의 이력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지점입니다.
이 작업은 음악을 확장하기보다, 음악이라는 체계가 무엇을 제외해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 설명이 멈춘 자리에서, 현실은 선명해진다
‘beyond the beyond’에서는 실재와 가상이 겹쳐지지만 어느 쪽도 중심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현실은 정의되지 않은 채 놓이고, 관객은 판단을 미룬 상태로 머무릅니다.
이 전시는 해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감각이 성급하게 결론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붙잡아 둡니다.
세계는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인식의 조건에 따라 다른 밀도로 출현하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 작곡에서 출발해, 인식의 구조로 향하다
1983년생인 임형섭은 컴퓨터음악작곡을 전공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과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작곡과 전자음악을 공부했고, 작곡가로 출발해 영상과 설치를 포함한 미디어 작업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해 왔습니다.
제주현대미술관 개인전 ‘LHS 475b’를 비롯해 인천아트플랫폼,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 제주현대미술관 창작스튜디오 등 주요 레지던시 이력은 그의 작업이 특정 매체가 아니라 인식의 조건 자체를 다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는 그 문제의식이 가장 응축된 지점입니다.
■ 이해보다 체류를 요구하는 전시
‘LHS 1140 b: 관측 이후의 잔향’은 30일부터 2월 15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지하 1층 제주갤러리에서 열립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매주 화요일은 휴관입니다.
이 전시는 빠른 이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미지를 소비하는 흐름에서 한 발 물러나, 감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머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전시 이후 남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감각이 작동하던 방식에 대한 인식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들으며 살아왔는지, 아니면 들었다고 믿어왔을 뿐이었는지를 이 전시는 끝까지 따라갑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Copyright © JI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