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전용 발권기?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버스가 없다
[지역 기자의 시선]
[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매일 아침 창원으로 출근한다. 출발지는 부산. 집 대문을 열고 나가서 회사 1층 엘리베이터로 헐레벌떡 뛰어가는 순간까지 약 1시간40분이 걸린다. 차도로 약 70km 거리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장거리 출퇴근을 한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이제 출근길부터 체력이 급격히 깎인다. 으악. 이까지 글을 읽었다면, 당신은 나를 나무랄 것이다. '아니, 징징대지 말고 집을 구하면 되잖아!' 맞다. 집을 못구한다는 건 대외적인 핑계다. 혼자 사는 게 좀 외롭기도 하고,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누룽지처럼 본가에 들러붙었다. 내가 선택한 길, '스스로 자처한 고생길'이다.
마산터미널 대합실에서 부산행 티켓을 끊으려던 참이었다. 평소 못 보던 발권기가 눈에 들어왔다. 장애인 전용 발권기였다.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기능이 탑재되어 있고, 무엇보다 모니터 높이가 낮았다. 휠체어 사용자가 편하게 발권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그 낮은 모니터를 보는 순간 묘한 괴리감이 스쳤다. 이상하다, 휠체어 장애인은 탈 수 있는 시외버스가 없는데?
경남에는 휠체어 탑승 설비를 갖춘 시외고속버스는 한 대도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전국 어디에도 없다. 비장애인인 나에게는 스스로 시외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장애인에게는 그 시작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특히 기초지자체에 사는 장애인에게는 이중고를 겪는다.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는 대중 교통수단은 사실상 기차뿐이다. 기차조차도 거점도시를 제외하면 역 자체가 없다. 그나마 있는 곳도 배차가 원활하지 않다.
최근에야 의미있는 판례가 생겼다. 휠체어 장애인들이 2014년 “시외버스 탑승을 보장하라”는 취지로 낸 소송이 지난해 12월 결론이 나왔다. 법원은 피고 측 버스회사가 주요 노선에 단계적으로 설비를 설치하라고 판결했다. 비록 재판부가 재정 여건 등을 이유로 특정 노선에 한정해 의무를 지웠다는 점은 아쉽지만, “시외버스 휠체어 탑승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법적 의무”임을 명시했다는 점은 기념비적이다.
사실 경남도는 이미 10여 년 전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있었다. 2011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약속했고, 2014년에는 전국 최초로 시외저상버스 설계도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운수업체와의 손실 보전금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골치 아픈 일을 제 일처럼 도맡아 소통하고 설득할 자치단체장과 정치인은 여지껏 없는 듯 하다. 오히려 최근 창원시의회에서는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을 줄이자는 조례안이 발의되어 논란이 일었다. '무장애 도시'를 슬로건처럼 외치면서도, 정작 장애인의 기본권은 상황에 따라 더하고 뺄 수 있는 '옵션' 정도로 여기는 지역 정치권의 민낯이다. 이런 풍토 속에서 시외버스 리프트 설치는 '사치'라고 봐야 할까?
운수업체 처지에서는 휠체어석을 확보하려면 의자 대여섯개를 빼야 한다. 수익성이 떨어진다. 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서 2019년 10월부터 2021년 6월까지 20개월간 4개 노선을 휠체어석을 갖춘 버스로 시범운행한 적이 있다. 당시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그 기간 동안 탑승객은 18명에 불과했다. 시범운행은 결국 중단됐다. 일부 언론은 '수요 없는 공급'을 지적하며, 장애인 리프트는 불필요하다는 취지의 지적을 했다. 이러한 비판에는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은 빠져 있다. 장애인 기본권 보장 책임을 사업자에게 전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수요 없는 공급이라는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기까지 공적 지원이 필요하고,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시민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지난해 추석 명절을 앞두고 경남지역 휠체어 장애인들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를 냈다. 곧 설 명절이다. 아마도 휠체어 장애인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올 것이다. 소리없는 아우성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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