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워라밸 타령 더는 못참아”…봉인 해제하겠다는 ‘과로사의 나라’ [박민기의 월드버스]
‘인력난’ 식당·숙박시설 업주 발동동
‘초과근무 제한’ 규제에 문 닫는 곳도
인플레 겹쳐 신입 채용도 사실상 부담
다카이치 총리, 규제 완화 정책 지시
노동계 “생명·건강 지켜야” 반발
![해외 관광객들로 붐비는 일본 도쿄의 한 거리 [사진 출처 = 로이터 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24/mk/20260124100604950irkq.jpg)
교토에서 료칸을 4대째 운영하고 있는 업주는 “체크인 응대부터 침구 정리, 현지 전통 요리 준비까지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지만 직원들의 근무 시간을 늘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초과 근무에 대한 여러 제한 규정이 있기 때문에 직원들의 근무 시간도 이에 따라 배정할 수밖에 없다”고 블룸버그에 전했습니다.
해외 여행객들 사이에서 ‘인기 여행지’로 부상하며 관광 특수를 노리고 있는 일본이 최근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일본을 찾는 해외 관광객 수는 매년 꾸준히 늘어 지난해 약 4270만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올해에도 지난해와 비슷한 약 4140만명의 해외 관광객들이 일본을 방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처럼 일본을 찾는 해외 관광객들이 빠르게 늘면서 식당과 숙박 시설 등을 향한 수요도 함께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업주들은 몰려드는 해외 여행객들을 응대하기 위해 기존 직원들의 근무 시간을 늘려야 할 판이지만 현재는 일본 정부의 ‘연장 근무 제한’이라는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일본은 과거 매일 반복되는 야근으로 한때 ‘과로사의 나라’라는 오명을 썼습니다. 관련 이슈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일본 정부는 과도한 야근을 억제하기 위해 월·연간 근로 시간을 제한하는 법률을 마련하고 지난 2019년부터 이를 본격 시행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 근로자들의 통상 초과 근무 시간은 월 45시간, 연 360시간으로 제한됐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집권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최근 이 같은 규제에 따른 일본 산업 내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자 다시 이를 뒤집는 정책 마련에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근로 시간 제한 규정을 완화해 일본 경제를 되살리는 동시에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고 노동자와 기업에 ‘일하고 싶은’ 자율적 선택권을 돌려주겠다는 것이 다카이치 총리의 계획입니다.
규제 완화는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구체적인 내용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다카이치 총리의 이 같은 행복은 ‘과로사’에 시달려온 일본 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는 분석입니다. 과로로 사망한 근로자들의 유족들과 노동계는 다카이치 총리의 근로 시간 규제 완화 추진이 힘들게 이뤄낸 근무 환경 개선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연설에서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그가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의 개념과 중요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 출처 = 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24/mk/20260124100606249puwj.jpg)
일본 사회는 자국이 맞닥뜨린 현 상황이 근로자들의 워라밸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갈지, 아니면 과거 고도 성장을 떠받쳤던 고강도 노동 문화의 회귀로 갈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일본 기업들은 다카이치 총리의 이번 규제 재검토가 갈수록 심화되는 인력난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은행(BOJ)이 최근 발표한 단기경제관측조사(단칸)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은 최근 34년 만에 가장 심각한 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으로 임금과 자재비가 오르면서 기업들 입장에서는 신규 인원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실정입니다. 시장조사기관 도쿄쇼코리서치 조사 결과 지난해 인력 부족을 이유로 파산을 신청한 일본 기업은 397개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근로 시간 규제 완화는 기업들을 넘어 일부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환영받고 있습니다. 블룸버그가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를 바탕으로 한 계산에 따르면 일본 근로자들은 평균적으로 연간 소득의 약 6%를 초과 근무 수당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초과 근무 시간이 제한되면서 근로자들의 월급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최근 일본 지역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 이상이 다카이치 총리의 계획을 지지했고, 특히 18~29세 사이에서의 지지율이 80%까지 오른 이유입니다.
반대로 과로사 피해자 유족들과 노동계는 이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강조하는 ‘근로 유연성’이 ‘노동 착취’를 포장하는 완곡한 표현에 불과하고, 이를 선택의 문제로 산업계에 떠넘기면 업주가 근로자에게 추가 근무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들은 2024년 회계연도에 업무 관련 정신질환 사례가 1000건을 넘어섰고, 이 중 약 60%가 업주 또는 상사와의 문제 때문이라는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연합체인 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의 요시노 도모코 회장은 “노동자들의 근로 시간을 더 늘리려는 시도는 일본 사회가 워라밸을 개선하기 위해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퇴행시키는 것”이라며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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