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회계사서 요리사로…북녘 ‘손맛’으로 탈북민 도와
[앵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에 자리잡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요리'를 매개로 탈북민들의 홀로서기를 돕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도 탈북민입니다.
북한에서 회계사로 일했고, 남한에서의 첫 직장은 양계장. 여러 일을 거치며 요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북한 음식과 문화 전하기에도 열심인 김금옥 원장을 정미정 리포터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충북 청주로 향합니다.
혹한의 추위가 이어지는 날씨였지만, 배움의 열기가 가득했는데요.
식기와 재료가 하나 둘 준비되며, 교육을 앞둔 실습실.
탈북민인 김금옥 원장이 조리대를 바쁘게 오가며 수업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김금옥/요리학원 원장 : "(안녕하세요. 지금 뭐 준비하시는 거예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콩나물밥과 무생채를 하려고 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수강생들도 모두 탈북민들입니다.
탈북민 대상 수업이 개설됐다는 소식에 먼 길을 달려온 이들도 있었는데요.
[전해옥/수강생 : "(어디에서 오셨어요?) 충주에서 왔어요. (충주에서?) 1시간 15분 걸리더라고요."]
[임진강/수강생 : "(새벽) 5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서울에서 청주를 오가며 두 달 동안 학원에 다녔다는 임진강 씨.
지난해 11월, 시험에 합격했다며, 한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꺼내 보입니다.
[임진강/수강생 :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니까 실제 시험장에서 떨리는 것도 없고 내가 배운 그 지식 가지고 하니까 (첫 시험에) 이렇게 합격이 됐습니다. (그럼 선생님께서는 이 자격증 가지고 이제 뭐 하실 거예요?) 저는 이 자격증 가지고 취직해서 (일을 배우고) 사업을 할 겁니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땅에서 자립이라는 목표 하나로 모인 탈북민들.
이들에게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아닌 내일을 여는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자, 김금옥 원장의 한마디 한마디에 수강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집중합니다.
["콩나물은 주로 어떤 때 해 드세요? 해장."]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은 조리 과정 하나하나가 매우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6cm는 보통 우리 (손가락) 마디 하나가 2cm로 보면 돼요."]
13년 차 전문 강사의 노하우가 아낌없이 전해집니다.
[김금옥/요리학원 원장 : "아무리 잘해놔도 제출을 못하면 안 돼요. 제출을 못하면 빵점이야."]
[김해순/수강생 : "멥쌀로 할 때는 물을 얼마만큼 부어야 해요. (30분 이상 불려야 해요. 1시간 이상 더 불리면 밥이 맛없어져요.)"]
요리 기술만큼이나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습니다.
[김금옥/요리학원 원장 : "북한분들은 성격이 급하잖아요. 고기를 썰라 해도 그냥 막 대충 썰어. 그런데 시험 보러 가야 되니까 할 수 없어요. 차분하게 해서 성격도 바뀌어요."]
구슬땀을 흘리며 배운 내용을 다시 연습해 보는 탈북민들.
[최선옥/수강생 : "너무 잘했지요? (진짜 잘했네요.)"]
10년 전 한국에 온 장윤서 씨도 이곳에서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장윤서/수강생 : "지금 회사 일 열심히 하면서 자격증 취득하고 기회가 되면 이런 업무에 음식 관련한 일을 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고향을 떠나온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 원장의 격려가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장윤서/수강생 : "북에서 혼자 아이를 데리고 오다 보니까 부모가 없잖아요. 그래서 엄마 역할을 많이 해주세요."]
이토록 세심한 교육이 이뤄지는 데에는 김 원장 스스로가 겪어내야 했던 고단한 정착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김금옥/요리학원 원장 : "이분들도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으리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탈북민 반을 따로 만드니까 이분들이 편하게 자존심 내려놓고 원장님 이건 뭔가요? 이건 뭔가요? 편히 물어봐요."]
수업이 끝난 뒤에도 김 원장의 하루는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자격증을 딴 뒤의 진로와 식당 개업을 앞둔 현실적인 고민까지, 상담이 이어집니다.
[김금옥/요리학원 원장 : "자격증 취득한 후에 진천에서 감자옹심이나 이런 걸 해서 가게를 오픈하시겠다고 해서 그 얘기를 좀 나눴어요."]
이런 시간을 통해, 탈북민들에겐 자립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씩 쌓여갑니다.
[민정옥/수강생 : "많은 걸 배우게 되었고, 조금 더 자부감도 생기고 그러는 것 같아요."]
김 원장은 북한에선 회계사로 일했지만, 남한에서의 첫 직장은 양계장이었는데요.
여러 일을 거친 끝에 요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원장님 지금 자격증 몇 개예요?) 5개입니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복어."]
이후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요리공부에 매진했고 지금까지 요리 연구가이자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김 원장이 가르친 수강생은 2천여 명.
그중 탈북민은 백여 명에 불과하지만, 남과 북의 제자들을 통해 한국 사회에 뿌리내렸다는 보람을 느낍니다.
[김금옥/요리학원 원장 : "한국분들이 저를 탈북민으로 생각 안 하고 정말 자격증을 가르쳐주는 원장님이라고 생각해주고 그럴 때 '내가 헛 가르쳐주지는 않았구나' 이런 생각할 때가 있고."]
김금옥 원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다른 일은 북한 음식 알리기라고 하는데요.
낯선 맛 속에 담긴 북한 주민들의 진짜 삶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진짜 새댁 같네요."]
북한 음식 배워보기에 나섰습니다.
첫 번째 메뉴는 두부밥.
두부밥은 북한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자, 별미로 꼽힙니다.
[김금옥/요리학원 원장 : "시장에 가서 뭘 팔아야 먹고 살잖아요. 배급을 안 주니까. 가장 싼 게 뭐예요. 고기 대신 두부잖아요. 그러니까 두부를 가지고 고난의 행군 시기에 만들어낸 두부밥이거든요."]
유부초밥과 닮은 두부밥을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는데요.
튀긴 두부를 주머니처럼 만들고 밥과 채소를 넣어 완성합니다.
["(음식의 특징이라고 하면 어떤 게 있어요?) 담백하죠. 담백할 수밖에 없어요. 고기도 없고 기름도 없으니까."]
개성 지역의 향토 음식인 '개성나물'도 선보였습니다.
숙주, 미나리, 무나물 등 갖은 재료 가운데 '곶감'이 눈길을 끕니다.
재료를 볶고 데친 후 간을 해 완성한 개성나물 과연 그 맛은 어떨까요?
["재료 본연의 향들이 다 느껴져요. 뭔가 미나리, 무나물 다 느껴지고 식감이 엄청 아삭아삭하고 재밌네요."]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함을 자랑한다는 북한의 손맛.
김금옥 원장은 낯선 북한 음식 속에 한민족의 공감대가 채워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김금옥/요리학원 원장 : "북한 요리를 많이 연구해서 북한 요리지만 맛있게, 우리 한국분들도 맛있게 부담 없이 드실 수 있도록 계속 연구하고 보급해 나가도록 할 계획입니다."]
요리를 통해 기술을 전하고, 음식으로 문화를 이어가는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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