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ISDS 중재' 요구한 美 투자사 창립자...쿠팡 사외이사·김범석 동문이었다
김범석 의장과 '절친급' 특수관계...대리 소송 의혹
"김 의장 일찍 만난 건 행운" 인터뷰서 친분 과시
"한국이 차별"...美 개입 요청에 통상 분쟁 번지나

쿠팡에 대한 한국 정부의 차별적 대우를 바로잡아 달라며 미국 무역대표부(USTR) 조사와,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절차를 요구한 투자사 그린오크스의 창립자가 쿠팡의 사외이사와 보수위원회 위원을 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투자사인 알티미터의 창립자는 김범석 쿠팡Inc 의사회 의장과 하버드 비즈니스스쿨(HBS) 동문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쿠팡이 "(ISDS) 요청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두 투자사와 쿠팡의 특수 관계를 감안하면 회사가 이들을 통해 대리 소송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23일 쿠팡이 지난해 6월 연례 주주총회를 앞두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위임안내서(Proxy Statement)'와 결과보고에 따르면, 닐 메타 그린오크스 창업자이자 매니지 디렉터는 쿠팡 상장 후 10년 넘게 이사회의 수석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쿠팡의 최장수 이사회 임원이다. 쿠팡 임원들의 급여와 성과급 체계, 고용 조건 등을 감독하는 보수위원회 의장도 역임했다.
그린오크스는 금융업계에서 쿠팡의 '구원 투수'로 유명하다. 2018년 상반기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추가 투자가 미뤄지자, 쿠팡이 조건부지분전환계약(convertible note) 형태로 6억 달러 규모의 '브리지 라운드(스타트업 회사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존 투자자 등으로부터 받는 투자)'를 진행했다. 이때 5억 달러를 단독으로 제공한 게 그린오크스였다. 메타는 과거 미국 매체 콜로서스와 인터뷰에서 "김 의장을 일찍 만난 건 행운"이라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콜로서스는 "쿠팡의 브리지 라운드 8번 중 그린오크스가 5번이나 구원투수로 나서 지난 10년간 10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ISDS 중재 요청 사전에 몰랐다" 선그어

알티미터의 브래드 거스트너 회장은 김 의장과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동문으로 얽혀 있다. 2021년 블룸버그통신은 "거스트너는 김 의장과 거의 같은 시기 비즈니스스쿨을 다니다가 중퇴했다"며 거스트너가 하버드 동문들과 상장 초기부터 쿠팡에 투자한 정황을 소개했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에서는 두 투자사가 쿠팡을 대신해 ISDS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는 의혹이 나온다. 쿠팡의 매출 중 90%가 한국에서 발생해 직접 ISDS 중재를 요청하기엔 부담이 크다. 쿠팡의 투자사가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에는 '미국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도 살릴 수 있다.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미국 벤처캐피털이 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며 그린오크스, 알티미터와 쿠팡의 인연을 주목했다.
다만 메타는 이번 ISDS 제기와 관련해 액시오스에 "독립적으로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본보 문의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쿠팡 측은 "그린오크스 창립자가 쿠팡 사외이사인 것은 맞지만, (쿠팡은) 조사 요청 사실을 사전에 몰랐고 관여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정부 "미국 기업 차별 아냐" 확대 해석 경계

미 투자사들이 USTR 조사의 근거로 제시한 건 '슈퍼 301조'로 불리는 무역법 301조다. 외국 정부의 불합리하고 차별적 조치가 미국 상거래를 제한한다고 판단되면 관세 부과 등 미국 행정부의 보복 조치를 허용한다. USTR은 청원서 접수 후 45일 내 조사 개시 여부를 정해, 미 행정부가 직접 쿠팡 사태에 개입할 명분이 생겼다. 미국 정치권 일각이 쿠팡을 옹호한 것과 달리, 거리를 두던 미 행정부가 등판할 경우 한미 통상 분쟁으로 커질 우려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우려를 표명했는데, USTR이 조사에 착수할 경우 쿠팡을 넘어 한국의 디지털 규제 전반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부는 쿠팡 문제가 통상과 관련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을 통해 "책임은 한국의 쿠팡 자회사에 있는데, 미국 모회사에 투자한 소수 지분의 투자사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압박에 나서는 모습이 국제법 법리나 정의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며 "관련 법률 쟁점을 차분히 검토하며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산업부 등 관계 부처가 대응 방향을 별도로 논의할 것"이라면서 "쿠팡은 전례 없는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조사를 하는 것일 뿐 미국 기업 차별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내 시민단체들은 "주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매출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미국 상장 기업이 기본적인 정보보호 조치도 하지 않아 한국 국민의 4분의 3에 달하는 막대한 개인정보를 유출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시민사회 단체 135곳이 모인 '안전한 쿠팡 만들기 공동행동'과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연대도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정·재계의 이러한 행태는 명백한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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