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은 쿠팡을, 사모펀드는 정부를 고소했다"[천조국 리포트]
美 쿠팡 투자사 '그린옥스·알티미터', ISDS 착수

미국 개인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선 직접적인 이유는 손실 회복 가능성 때문이다. 미국 증권 집단소송은 개별 투자자가 소액 손실을 입었더라도, 다수의 피해자가 모이면 집단 전체의 손해를 한 번에 다툴 수 있다. 소송 비용은 로펌이 선투자하고, 승소나 합의가 이뤄질 경우 성과보수 형태로 비용을 회수하는 구조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별도의 소송 비용 부담 없이 손실 회복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도다.
이번 사건에서도 개인 투자자들은 쿠팡의 공시 시점을 문제 삼았다. 쿠팡은 2025년 12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공개했고, 이후 주가가 급락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중대한 사이버보안 사고를 적시에 공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미국 법무법인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관련 소송은 캘리포니아 연방법원 등에서 진행 중이며, 일부는 최고경영진을 피고에 포함하고 있다.
절차는 이제 본격적인 초기 심문 단계로 들어간다. 연방법원은 먼저 집단소송 요건을 충족하는지, 공시 위반이 있었는지, 허위·누락 공시와 주가 하락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심사한다. 이 과정에서 법원이 소송 요건을 인정하면 집단소송으로 공식 지정되고, 이후 증거개시(discovery)와 본안 심리가 이어진다. 반대로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소송은 초기 단계에서 종료된다.
이미 소송이 제기됐는데도, 미국 로펌들이 계속 투자자 모집 공고를 내는 이유는 이 초기 절차와 관련돼 있다. 집단소송에서는 '대표 원고(lead plaintiff)' 선정과 집단 범위 확정이 핵심 변수다. 참여 투자자가 많을수록 집단 규모가 커지고, 손해액 산정과 협상력도 달라진다. 여러 로펌이 동시에 모집에 나서는 것은 대표 원고 지위를 확보하고, 향후 소송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 성격이 강하다.
이와는 별개로, 쿠팡의 미국 투자사인 그린옥스 캐피털과 알티미터 캐피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KORUS FTA)에 근거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의향서를 제출했다. 이 의향서는 곧 정식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단계로, 제출 뒤 90일 '냉각 기간'이 지나면 청구인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등의 중재 기관에 정식 신청을 할 수 있다.
ISDS를 제기한 투자사들은 한국 정부의 쿠팡 관련 조치가 한미 FTA의 공정·공평대우(fair and equitable treatment), 최혜국대우(most-favored-nation), 국적 대우(national treatment) 등 투자보호 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조사와 행정조치가 “일반적인 규제 집행 범위를 넘어섰다”고 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십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청구 요지를 제시하고 있다.
투자사들은 ISDS와 동시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 정부 조사의 정당성 여부를 검토해달라는 청원도 제출했다. 이 청원은 미국 국내법인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요청하는 것으로, 최대 45일 안에 USTR이 조사 착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조사 착수 결정이 나오면 공청회와 의견 수렴, 보복 관세 등 무역 규제 조치가 논의될 수 있다.
이 같은 절차는 ISDS가 장기적, 법리적 대응을 위한 채널인 반면, USTR 조사 요청은 단기적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사들이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즉 ISDS는 향후 국제중재 판정부 구성을 앞두고 법적 근거를 다지는 장기 전략이고, USTR 청원은 미국 정부의 공식 조사 및 무역 압박을 유도하려는 단기 전략이다.
이 때문에 쿠팡 관련 사안은 단순히 한 기업의 리스크를 넘어섰다. 미국 개인 투자자들은 기업에 대한 공시 책임을 문제 삼고 있고, 사모펀드들은 국가의 규제 행위를 문제 삼고 있다. 두 집단은 제도와 절차가 다른 법적 경로를 통해 각각의 상대를 겨냥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국제투자분쟁대응단'을 가동하며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법무부는 중재 의향서와 관련한 법률 쟁점을 검토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와 절차적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정보 제공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ISDS 의향서 제출은 정식 중재 제기는 아니며,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법리에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쿠팡 사태는 두 갈래의 법적 전선으로 갈라졌다. 개인 투자자들은 기업의 공시 책임을 묻고 있고, 사모펀드들은 국가의 규제 책임을 묻고 있다. 같은 사건이지만, 자본의 성격과 제도적 수단에 따라 법적 대응 경로가 달라졌다.
다만 개인 투자자들이 선택한 증권 집단소송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싸움이기도 하다. 집단소송 요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입증, 인과관계 증명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증권소송이 초기 단계에서 기각되거나 소규모 합의로 마무리된다.
개인은 기업을 고소했고, 사모펀드는 국가를 고소했다. 같은 사건이지만, 개인과 거대 자본이 책임을 묻는 방식과 도달할 수 있는 법적 무대는 크게 다르다. 쿠팡 사태는 그 차이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염현석 머니투데이방송 MTN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