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진의 민감(敏感) 중국어] 끊어진 인터넷

신경진 2026. 1. 2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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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 명말청초(明末清初)의 학자 고염무(顧炎武, 1613∼1682)가 저서 『일지록(日知錄)』 ‘정시(正始)’편에 남긴 말이다. “천하가 흥하고 망하는 데에는 하찮은 사람도 책임이 있다”며 일종의 참여정치를 강조하면서다.

‘정시(正始, 240~249년)’는 삼국지 위(魏)나라의 3대 황제 조방(曹芳)의 연호다. 사마의(司馬懿)가 어린 황제를 후견하던 대장군 조상(曹爽)을 살해하면서 정시 연간이 막을 내렸다. 당시 사회는 공리공담의 청담(清談)에 빠져있었다. 고염무는 조씨의 위나라가 사마씨의 진(晉)나라로 바뀌던 시대에서 “망국(亡國)과 망천하(亡天下)”를 다음처럼 구분했다.

“나라가 망하는 것과 천하가 망하는 것은 다르다. 어떻게 구분하나. 성을 바꾸고 나라 이름을 바꾸면(易姓改號) 망국이라고 한다. 인의가 사라져 짐승처럼 서로를 잡아먹는 지경이 되면 망천하라 한다. (중략) 천하를 지킬 줄 안 연후에야 그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법이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군주와 신하, 곧 고기를 먹는 자들이 도모할 일이지만, 천하를 지키는 일은 미천한 보통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

천여 년 뒤 후속글이 나왔다. 중국의 언론인 출신 독립학자가 SNS에 “사담 후세인에게 상황은 망국이었고, (시리아) 알아사드도 마찬가지였으며, (베네수엘라) 마두로 역시 망국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란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고염무가 말한 인의가 사라지고 짐승처럼 서로를 잡아먹는 지경”이라고 했다.

학자가 특히 주목한 건 인터넷이 끊긴 것(단망·斷網)이다. 이란의 이른바 신정(神政) 정권이 경제 실정으로 반(反)정부 시위가 번지자 인터넷부터 끊었는데, 그는 이를 세상의 몰락(亡天下)에 비유했다. “지구가 스타링크로 둘러싸인 시대에 인터넷은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닌, 필수품이자 일상생활, 문명 자체다. 강제로 인터넷을 끊는다는 것은 문명이 최저선 아래로 타락했으며, ‘짐승처럼 서로를 잡아먹는 일’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다는 의미다.”

인터넷 차단이 잦은 중국인들은 단망에 민감하다. 그렇더라도 이란 정권에 의한 유혈 진압이 반문명적인 건 분명하다. 그는 “(차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한국) 광주를 위했던 거짓말이 테헤란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천하를 지키려 나선 이들의 용기와 희생에 고개를 숙인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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