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오일 시대 연 아부다비] 스타트업 육성과 친환경 에너지에 베팅한 '석유 부국'

2025년 12월 4일(이하 현지시각) 세계 최대 금융 자유 구역인 아부다비 글로벌마켓(ADGM) 거리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전통의상인 ‘칸두라’와 ‘아바야’를 입은 현지인만큼이나 정장 차림의 외국인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는 아랍어보다 영어가 사실상의 공용어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아부다비가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 도시로 자리 잡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면적 1438만㎡에 달하는 ADGM은 세계 최대 규모의 금융 자유 구역으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블랙록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이 입주해 있다. 설립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2025년 3분기 기준으로 3227개 기업을 유치하며 전년 대비 43% 성장했다. 총운용 자산(AUM) 역시 전년 동기 대비 48% 급증했다. 이 같은 ADGM의 성장은 아부다비가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탈(脫)석유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루 원유 생산량이 300만 배럴에 이르는 ‘석유 부자’ UAE의 수도 아부다비는 일찍부터 탈석유 시대를 대비해 지속 가능한 국가로 전환을 준비해 왔다. ADGM은 석유로 축적한 부를 미래에 투자하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기업 활동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췄다. 자유 구역인 만큼 영미법 체계를 기반으로 운영되며, 법인세 면제 등 파격적인 세제 혜택도 제공한다.
글로벌 기업·스타트업 허브로 도약
ADGM이 기업의 활동 무대라면, 그 무대로 기업을 끌어들이는 역할은 아부다비투자진흥청(ADIO)이 맡고 있다. ADIO는 7개국에 8개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한국에는 2021년 사무소를 개설했다. H2O호스피탈리티(관광), 베스핀글로벌(클라우드), 네오플라이(블록체인) 등의 한국 기업이 ADIO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날 만난 아흐마드 수브라 ADIO 가치 창출·클러스터 기획 및 개발 본부장은 “ADIO는 국내총생산(GDP)에서 비석유 분야의 성장을 이끌기 위한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 있다”면서 “13개 경제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재편 중”이라고 했다. 아부다비는 약 3000억달러(약 442조원) 수준인 GDP를 2040년까지 1조달러(약 1472조원)로 확대하고, 이 가운데 80%를 비석유 부문에서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ADIO가 운영 중인 클러스터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것은 ‘SAVI(스마트· 자율주행차 산업)’다. 2023년 10월 문을 연 SAVI 클러스터는 UAE의 스마트 및 자율주행차 기술혁신과 상용화를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의 도심항공교통(UAM) 기업 조비에비에이션과 중국의 자율주행 기업 위라이드 등이 SAVI 클러스터에 참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농식품·수자원 기술 클러스터(AGWA)와 바이오 제조 클러스터(HELM) 등이 아부다비 경제 다각화를 뒷받침하는 핵심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아부다비는 글로벌 대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국부 펀드 무바달라의 지원으로 설립된 스타트업 육성 플랫폼 ‘허브71(Hub71)’이 이를 지원하고 있는데, 허브71에 참여 중인 기업은 현재 370여 개 사에 달한다. 이들 스타트업은 누적 21억달러(약 3조원)의 후속 투자를 유치했고, 매출 규모는 12억달러(약 2조원)에 달한다. 핀테크, 헬스 테크, 기후 테크 등 비석유 첨단산업이 중심이다. 허브71은 자금 투자뿐 아니라 사무·주거 공간 제공, 투자자 연결 등 정착과 성장을 위한 전방위 지원을 제공한다.
한국 기업 가운데는 빅데이터 전문 기업 디토닉, 에듀테크 스타트업 두브레인, 인공지능(AI) 기업 레드브릭 등이 허브71의 지원을 받고 있다. 양영모 레드브릭 대표는 “다른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와 비교해 아부다비는 스타트업이 성장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잘 갖춰져 있고,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도 풍부하다” 며 “허브71 자체의 투자 생태계도 탄탄하지만, 허브71의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 만으로도 여러 기관·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는 데 일종의 ‘보증수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레드브릭은 최근 영국 미들섹스대 두바이 캠퍼스의 이노베이션 허브와 AI 교육 및 연구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태양광·원자력발전으로 非석유 비중 커져
아부다비의 탈석유 전략은 산업 다각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UAE는 2050년까지 넷제로(Net-zero) 달성을 국가 목표로 설정했고, 아부다비는 친환경 에너지를 주력 전력원으로 키우고 있다.
산유국이 이처럼 전력 시스템을 바꾸는 이유에 대해 2025년 12월 6일 만난 압둘라 후메이드 사이프 알 자르완 아부다비에너지부(DoE) 의장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2050년, 장기적으로는 그 이후의 미래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며 “에너지 안정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태양광발전은 아부다비 에너지전환 전략의 핵심 축이다. 아부다비는 1.2 (기가와트)급 ‘누르 아부다비’와 2 급 ‘알 다프라’ 발전소를 운영 중이다. DoE에 따르면, 아부다비 정부는 매년 3 이상의 태양광발전 설비를 추가로 확보하고, 향후 10년 이내에 전체 발전용량을 33 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된 전력을 효율적으로 저장하기 위해 시간당 20 (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저장 시스템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 생산과 저장 역량이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아부다비를 만드는 핵심 요소라는 판단에서다.
아부다비 전력망의 또 다른 축은 원자력발전이다. 아부다비는 2009년 한국전력과 삼성물산 등으로 구성된 ‘팀 코리아’와 협력해 UAE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바라카 원전’ 을 건설했다. 2021년 1호기를 시작으로 2024년 4호기까지 상업 운전에 돌입해 현재 5 이상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알 자르완 의장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5 이상 규모의 원전을 8년 만에 구축한 사례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부 차원의 노력과 협력 전략에힘입어 아부다비 전력망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빠르게 줄고 있다. 10년 전 재생에너지와 청정에너지 비중이 1%에 불과했지만, 2025년 기준 45%를 넘어섰다. 아부다비는 향후 5년 안에 재생에너지·청정에너지 비중을 60%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앞으로 10년간 투입할 재원은 3000억디르함(약 120조원)에 달한다.
아부다비의 변화는 한국 기업에도 기회가 되고 있다. 알 자르완 의장은 “바라카 원전을 통해 한국과 기술협력 성과는 이미 입증됐다. 한국과 비즈니스 규모가 지금보다 10배 이상 성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아부다비는 에너지 분야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소프트 랜딩(연착륙) 플랫폼’ 역할을 기꺼이 맡을 것” 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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