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세상만사 <46>] 서반구 노리는 트럼프, 가치 동맹 대신 中 배제 '자원망' 구축

연초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의 행보가 거침없다. 1월 3일(이하 현지시각)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기습적인 공격과 체포에 이어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사를 다시 분명히 하고 있다. 콜롬비아, 쿠바, 심지어 멕시코까지 미국의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언급은 많은 국가를 부담스럽게 하고 있다. 이란의 대규모 시위에 대해서도 이란 정부의 유혈 진압을 이유로 미국이 개입할 수 있음을 언급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2025년 관세전쟁으로 정신없던 세계가 2026년에는 미국의 직접 개입으로 다시 혼란과 충격에 빠지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모습은 그동안 새로운 전쟁은 없고 여러 분쟁 지역에서 신속하게 철수할 것임을 강조해 오던 트럼프의 공약과 다르다. 이와 같은 개입에 대해서 트럼프 지지층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미국의 최근 모습은 체계적인 구상과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한 시도임이 드러난다. 무작정 다른 나라를 공격하거나 압박하기보다 미국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제한적 개입과 압박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 전략 서반구로 집중시키는 트럼프
미국의 행동을 이해하는 단초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국가 안보 전략(NSS)이다. 과거 매년 의회에 제출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새로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이 한 번 작성하는 것으로 의미가 축소된 국가 안보 전략 보고서지만, 이번에는 25쪽에 불과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그 무게와 내용이 남달랐다. 보고서의 기본 내용은 미국이 더 이상 민주주의, 인권 등의 가치로 세계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 단독으로 세계의 안보를 떠받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세계 질서를 유지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것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미국의 힘은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얻게 된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서도 국가 안보 전략 보고서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서반구다. 인도·태평양 지역이 그다음이고 유럽과 중동의 우선순위는 뒤로 밀렸다. 중국을 견제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중국을 압박하고 변화시키기보다 일정 수준에서 묶어놓는 정도에서 만족하고 대신 미국의 이익을 강화하는 쪽으로 안보 전략을 변경한 것이다.
새로운 국가 안보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서반구다. 서반구는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미국인에게는 익숙한 공간 설정이다. 서경 20도 서쪽 지역이 서반구로 분류된다. 지도에 선을 그어보면 아메리카 대륙 전체, 카리브해의 섬과 그린란드 및 아이슬란드가 포함된다.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미치는 세력권인 셈이다.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집착은 19세기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서반구에서 유럽 세력이 손을 뗄 것을 요구하는 먼로 독트린 발표로 시작되었다. 당시 아직 강대국 반열에 올라서지 못한 미국으로서는 유럽 강대국에 대한 선언적 규정에 불과했지만, 이후 미국의 국격이 급부상하면서 먼로 독트린은 실체 있는 정책이 되었다. 이후 20세기 초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이 중남미 국가에 필요시 직접 무력으로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일명 루스벨트 코롤로리를 발표했다. 그리고 100년 후인 2025년 트럼프는 서반구에서 외부 세력의 개입과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이 최우선임을 밝혔다.
트럼프가 서반구에 집착하는 것은 전통적인 세력권을 안정화함으로써 미국 본토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지만, 이보다 더 큰 목표는 중국과 경쟁에서 미국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약점을 극복하는 데 서반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AI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미래 경쟁에서 결정적 요소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풍부하고 저렴한 에너지다.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이터센터로 인해 벌써 미국은 전력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력 공급을 위한 천연가스 발전이 증가하면서 미국 내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미국의 원유 생산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미래 수요를 안정적으로 감당할 정도로 지속적인 생산력을 보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000억 배럴(매장량 기준)이 넘는 베네수엘라의 원유를 활용할 수 있다면 미국은 미래 경쟁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80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베네수엘라 난민으로 인한 미국과 중남미 국가의 혼란을 억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반미 국가의 선봉을 자처하는 마두로 정권이 미국에 협력할 리는 만무했다.
중국 자원 줄 끊는 트럼프식 '자원 안보'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이후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와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라 판단했다. 특사를 임명하고 협상을 진행하면서 마두로의 입장 변화를 타진했지만, 마두로는 이를 거부했다. 2025년 하반기부터 미국은 대규모 군사력을 카리브해에 배치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고 마두로의 해외 망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물밑 협상을 통해 정권 핵심 관계자를 포섭해 마두로 제거 이후에도 권력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1월 3일 마두로가 허무하게 체포된 것은 이러한미국의 공작과 시도가 성공적으로 작동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마두로 체포 이후 트럼프는 미국 내 석유 기업으로 하여금 베네수엘라에 1000억달러(약 145조9600억원)를 투자해 생산량을 증가시킬 것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낙후된 시설 개선, 원유 자원의 안정적 확보와 더불어 베네수엘라 정부의 막대한 부채와 그동안 압류되었던 시설의 반환과 보상 등 수많은 과제가 산적했지만, 미국으로서는 에너지와 지역 안보 차원에서 큰 성과를 확보했다. 반대로 베네수엘라에 막대한 투자와 지원을 해왔던 중국으로서는 일정 부분 타격을 받는 것도 미국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마두로 제거는 미국에 베네수엘라의 변화와 더불어 쿠바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쿠바는 혁명 이후 미국에 가장 불편한 존재였다.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쿠바는 오랫동안 버텨왔으며 여기에는 베네수엘라의 원유 지원이 크게 기여했다. 미국으로서는 쿠바를 직접 공략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붕괴할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베네수엘라와 쿠바 양국이 모두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자원은 희토류다. 중국과 경쟁 과정에서 미국은 희토류가 자국에 가장 취약한 점임을 실감했다. 2025년 10월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1년간의 휴전을 얻어낸 미국으로서는 이 기간을 이용해 최대한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던 셈이다. 급한 대로 호주와 희토류 개발을 추진하고 일본과 손잡고 희토류 대체를 위한 기술 개발에 나설 것임을 밝혔지만, 희토류 자원의 직접적인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의 압박 역시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 북극권을 포함한 서반구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입지적 장점과 더불어 막대한 희토류 보유량은 미국에 큰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유럽 동맹국과 갈등을 빚어야 하지만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트럼프에게 이들과 갈등은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포와 압송, 그린란드 병합 요구는 기존 국제 질서가 얼마나 무력해졌는지 그리고 미래 질서는 노골적인 힘의 논리가 더 강하게 작동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변화를 현실로 인식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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