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금리 인하가 부른 하이퍼인플레이션 재앙

권순우 기자 2026. 1. 2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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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금리를 만졌을 때: 미국·터키·헝가리의 ‘정책 실패’ 연쇄
해법은 독립성: 중앙은행 신뢰가 무너지면 비용은 약자에게 돌아간다
금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 나라의 경제 체계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언어이자 질서다. 역사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정치적 목적 혹은 사회적 요구에 의해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려 했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경제 시스템의 붕괴라는 뼈아픈 대가로 이어졌다. 금리를 조작하려는 유혹은 항상 달콤하지만 그 끝은 늘 비극이었다.

첫 번째 사례는 미국이다. 1970년대 초반 닉슨 행정부는 경기부양을 통한 재선을 노리고 금리 인하를 강하게 압박했다. 당시 연준 의장으로 임명된 아서 번스는 학문적 양심과 대통령의 정치적 요구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다 결국 완화적 통화정책을 선택했다. 이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실업률과 경기지표가 개선되는 듯 보였지만 이내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고통스러운 결과로 이어졌다.

물가는 치솟고 경제는 역성장하는 악몽이 현실화된 것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이 이 시기 처음 등장했는데, 이는 사람들이 미래의 물가 상승을 예측하고 현재의 소비나 임금 행동을 바꾸는 현상으로 정책 실패가 어떻게 사회 전반의 인식 구조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서 번스 의장과 닉슨 대통령은 자신들의 실패를 인정하고 통화 정책을 바꾸기 보다 통계를 바꾸기로 한다. 그래서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명분은 연준이 통제할 수 없는 날씨, 유가가 포함된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취지다.

인플레이션을 축소하려는 시도는 결국 시장의 신뢰를 더욱 훼손했다. 밀턴 프리드먼은 이 당시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통화적인 현상”이라고 단언했고 이는 이후 연준의 기조 변화로 이어졌다.

이후 등장한 폴 볼커 의장은 금리를 20%까지 올리는 초강수를 두며 물가를 안정시키려 했다. 농민, 노동자의 시위가 이어졌고 볼커 의장에 대한 살해 위협, 의회의 탄핵안 상정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볼커 의장은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을 고수했고, 레이건 대통령은 그런 볼커 의장을 지지해줬다. 폴 볼커 의장이 등장해 통화량을 직접 목표로 삼고 금리를 20%까지 올리는 초강수를 두며 물가를 안정시키려 했고, 실업률 10.8%, 모기지 금리 18%라는 극한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물가는 안정됐고 금융안정도 함께 취하며 미국은 장기 호황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법적인 권리가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라는 걸 미국 경제에 극명하게 보여줬다.

두 번째 사례는 터키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슬람 율법과 정치적 이해, 그리고 경제 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금리를 강제로 낮추는 정책, 이른바 ‘에르도믹스’를 펼쳤다.

그의 논리는 금리를 낮추면 기업의 비용이 줄어 수익성이 올라가고 고용이 늘어나며 물가도 안정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같은 비전통적 경제 이론을 근거로 금리 인하를 압박했고 이에 저항한 중앙은행 총재는 가차 없이 해임됐다. 잠시 성장률이 올라가는 듯 보였지만 결국 인플레이션은 급등했고, 통화가치는 폭락했다.

부랴부랴 리라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리라화 보호예금’ 제도를 도입한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는 가운데 너도나도 리라를 팔아 달러를 사려고 했다.

터키 정부는 환차손을 정부가 보장해줄테니 리라화를 팔지 말라는 ‘보호예금’을 도입한 것이다. 이 역시 일정 부분 리라화 매도를 줄이는 효과를 줬지만 터키 정부 재정에 큰 부담을 줬다. 재정 부담이 다시 통화 가치을 부채질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왜곡된 통화정책은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삶 그 자체를 뒤흔들었다. 자산이 있는 사람들은 자산가격 상승 덕에 이익을 얻었지만 임금 노동자들은 실질임금 하락과 물가상승으로 생활이 악화됐다.

특히 자산이 없는 청년층은 높은 임대료와 낮은 실질소득에 절망하며 대규모 해외 이주까지 발생했다.

결국 터키 정부는 금리를 다시 50%까지 올려야 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러시아 등의 외부 지원으로 겨우 신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작년 7월부터 총 금리를 다섯 차례, 9%포인트를 인하했다. 하지만 지금도 터키의 소비자물가상승률(CPI)는 30%가 넘고 금리는 37%에 달한다.

세 번째 사례는 세계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기록된 헝가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45년부터 시작된 헝가리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세계사에서도 가장 극적인 사례로 기록된다.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헝가리의 국가 자산은 40% 이상 파괴됐고, 나머지 90%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헝가리는 3억 달러 상당의 배상금도 현물로 지불해야 했다.

조세 시스템이 무너져 세금을 걷을 수도 없었다. 헝가리 정부는 중앙은행의 저금리 대출을 통해 민간과 공공 기업에 공급했고, 이 전략은 통제 불가능한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1945년 달러당 1320 펭괴였던 환율은 1년도 되지 않아 4경 2천조 펭괴로 치솟았다. 지폐에 숫자를 기록할 수도 없을 정도로 단위가 커지자 정부는 밀펭괴(100만), 비펭괴(10억) 등 화폐를 발행했다. 하루 물가 상승률이 207%에 달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 펼쳐졌다. 화폐는 아무런 의미 없는 종이, 불쏘시개로 전락했다.

1946년 마침내 포린트(Forint)화가 도입되며 이 재앙은 끝을 맺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내부적인 노력으로 벗어날 수 없었다. 포린트화는 미국이 반환한 3200만 달러 규모의 금괴를 담보로 신뢰 기반을 구축했다. 국민들이 가지고 있던 펭괴는 사라졌다. 전국민의 자산과 부채가 삭제되는 극단적 조치가 이뤄졌다.

이 세 국가의 사례는 금리라는 숫자가 단지 금융정책의 변수가 아니라 정치, 사회, 역사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정치권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금리를 단기적 지지율 확보나 지엽적 목표를 위해 인위적으로 조정하려고 하면 그 나라는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이라는 질병에 걸리게 되며, 회복에는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무엇보다 그 비용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가혹하게 돌아온다.

최근 미국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신용카드 금리를 10%로 제한하겠다고 공언하며 다시금 금리 문제에 정치가 개입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미국 신용카드 금리는 평균 19.6%에 달하는데, 이를 인위적으로 10% 수준으로 낮추게 되면 은행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대출을 꺼리게 되고 이는 결국 취약 계층의 자금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금리를 강제로 내리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그것이 구조적 개선이 아닌 정치적 개입에서 비롯될 경우 더욱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터키와 헝가리, 그리고 미국의 과거는 분명히 증명해주고 있다.

결국 핵심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다. 연준이든 한국은행이든 금리는 통화량과 경제 여건에 따라 결정돼야 하며 정치적 인기나 선거 전략에 따라 조정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라는 시스템은 복잡하고 섬세하다. 한 번 무너진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으며 시스템이 붕괴될 때 가장 먼저 고통받는 것은 자산이 없는 청년층과 서민이다.

금리를 낮추면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직관은 아름답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과거의 실패는 단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경고하는 실시간 신호이기도 하다. 금리를 건드릴 때마다 반복된 파국, 이제는 그 반복을 막을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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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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