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왕과 사는 남자' 역시 유해진, 잘한다 박지훈

역사가 스포지만, 이들의 웃는 모습을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끝내 허락되지 않은 웃음, 예고된 비극은 기어코 관객의 눈물을 끌어낸다. 연기로 잘 차린 한 상, '왕과 사는 남자'는 그 자체로 볼 가치가 있다.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쫒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 한국 영화 최초로 단종을 스크린의 중심에 담아낸다.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떠난 문종의 세자였다가, 즉위와 함께 암투에 내던져진 어린 왕이었던 단종 이홍위는 끝내 왕위를 찬탈당한다. 영화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본 적 없을 그가 1457년 궁을 떠나 영월 산골 마을 청령포로 유배길에 오르며 시작된다.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적 기록을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을 확장해나간 작품.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 온 어린 선왕 단종, 그를 맞이하는 광천골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희로애락은 관객들을 웃기고, 또 울리며 역사의 기록 그 너머의 이야기로 초대한다.
모두가 알고있듯, 이 이야기의 결말은 비극이다. 예고된 비극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동안, 배우들의 연기는 감정의 밀도를 한 겹씩 쌓아 올리며 역사와 상상 사이, 작품의 설득력을 단단히 지탱한다.

이 중심에는 역시 유해진이 있다. 유해진은 강원도 산골 마을에서 매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가다 광천골을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는 촌장의 유쾌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바탕으로, 특유의 신들린 듯한 연기를 펼치며 작품에 숨을 불어넣는다. 특히 보수주인으로서 이홍위의 일상을 감시하면서도 점차 그에게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는 엄흥도의 과정을 설득력 있게 연기하며 작품의 중심을 잡는다.
이렇듯 유해진이 길을 닦고 '왕과 사는 남자'를 단단히 끌고 간다면, 단종 이홍위 역의 박지훈은 그 위를 거침없이 달린다. '왕과 사는 남자'는 유해진과 박지훈, 영화계의 새로운 신·구조화가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작품이다. 단언컨대, 이 작품을 통해 젊은 배우 기근에 시달려온 영화계는 박지훈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얻게 됐다.
'약한영웅' 시리즈에서 원톱주연으로서 가능성을 증명한 박지훈은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배우 박지훈'을 각인시켰다. 왕위를 찬탈당한 뒤 분노와 두려움, 죄책감까지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빛으로 한명회(유지태 분)를 바라보는 첫 등장신부터 왜 단종이 박지훈이어야 했는지, 장항준 감독의 선택을 충분히 증명해낸다.
빛을 잃어 낭떠러지에 서 있던 인물이 역사의 물줄기를 정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범'의 눈빛으로 변모해 결단에 이르는 과정은 박지훈의 연기로 설득력있게 완성된다. 광천골 사람들을 만나 다시금 되찾은 이홍위 웃음을 오래도록 보고 싶었지만, 그 시간은 참으로 짧기만 하고, 그 찰나가 비극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이러한 배우들의 연기가 '왕과 사는 남자'의 작은 빈틈을 메운다. 비교적 기승전결을 잘 갖춰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작품이지만, 잦은 컷 편집과 아날로그적인 연출은 종종 감정의 흐름을 끊어놓는다. 유해진이 중심이 되어 '캐리'하는 코믹한 장면은 영화의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주면서도, 동시에 감정의 밀도를 분산시키는 순간도 존재한다.
'왕과 사는 남자'는 장점이 더욱 큰 작품이다. 관객들은 끝내 알고 있던 결말 앞에 다시 서게 되고, 누군가의 눈물과 이어지는 실제 역사는 긴 여운을 남기게 된다. 설 연휴 출격하는 '왕과 사는 남자'가 침체된 한국 영화를 살릴 수 있을까.
오는 2월 4일 개봉. 러닝타임 117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나연 기자 ny0119@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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