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 아이 미국 명문대 보낸 엄마가 입시보다 먼저 지켜온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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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 작가가 세 아이를 키우며 지켜온 교육의 원칙
신간 <세 아이를 미국 명문대로 이끈 떡볶이 식탁> 출간

김지나 작가는 세 아이의 엄마다. 큰아이는 존스 홉킨스 출신 의사, 둘째는 미국 내 상위 로스쿨, 막내는 아이비리그와 세계적인 미술대학 RISD에 진학했다. 세 아이 모두 각자의 전공과 진로는 달랐지만, 미국 대학 입시라는 공통의 관문을 거쳤다. 이 경험은 최근 출간한 신간 <세 아이를 미국 명문대로 이끈 떡볶이 식탁>(드림셀러)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의 가족이 처음부터 미국 이민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교육을 목표로 한 조기 유학이나 이민도 아니었다. 김 작가는 "잠시 쉬어가 보자"는 마음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고, 처음에는 '3년 정도'만 머무를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서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고, 각자의 문제를 겪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지나오면서 체류는 정착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시간 역시 책 속에서 한 부모의 기록으로 차분히 풀어냈다.
미국 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다. 언어와 문화, 학교 시스템은 모두 새로 배워야 했고, 부모가 아이의 학교생활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개입하기 어려운 순간도 많았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왕따를 겪었고, 우울증과 ADHD를 경험하기도 했다. 진로를 바꾸는 선택과 입시를 앞둔 불안도 피할 수 없었다. 김 작가는 이 시간을 "교육 이전에 삶을 통과하는 시간"이었다고 표현하며, 이 문장은 이번 책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인터뷰는 '어떻게 하면 명문대에 보낼 수 있는가'를 묻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김지나 작가 역시 명문대를 목표로 아이를 키운 적은 없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기준을 지키려 했는지를 신간을 통해, 그리고 이번 인터뷰를 통해 차분히 설명한다. 그 기준의 중심에는 매주 반복된 하나의 식사 시간, 이른바 '떡볶이 식탁'이 있었다.
미국 정착부터 왕따와 우울증, 진로 변경과 입시 선택까지. 세 아이가 각자의 길로 성장하기까지 김지나 작가가 지켜온 원칙을 질문과 답으로 정리했다.
연고 없이 시작한 미국 생활, 정착이 되기까지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붙잡을 수 있느냐"
Q 연고도 없이 미국에 정착해 아이 셋을 키우는 건 정말 큰 결심이었을 것 같아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제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이게 맞는 선택일까?"였어요. 누구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제게는 미국이라는 또 다른 세상에서의 선택이라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이민이 아니라 잠시 쉼을 위한 선택이었기에, 이민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장을 쓰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그저 '3년'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시작했기에 인생의 정확한 지표를 세우지도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1년 살기'를 하려다 아이들로 인해 정착하게 된 경우였어요.
Q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는 사람 한 명 없었고, 영어도 문화도 학교 시스템도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일을 온전히 이해해주지 못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훨씬 컸고요. 아이들은 새로운 언어와 문화 속에서 빠르게 적응해 갔지만, 좌절하는 순간마다 저는 부모로서 아무것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을 자주 느꼈습니다.
Q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무너졌던 순간이 있다면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먼저 나요. 어린아이가 왕따를 당했을 때, 그리고 그 아이가 결국 우울증 속에서 헤맬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마음 아픈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이었다면 당장 해결할 수 있었을 것 같았고,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죠. 미국에서는 검은 머리 이방인으로, 한국에서는 또 다른 이질적인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을 아이들에게 물려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붙잡아준 건 '완벽한 선택을 하지 말자'는 다짐이었어요. 고비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따뜻한 가족의 울타리를 함께 지켜가자는 약속을 반복했죠. 그 다짐이 이후 모든 교육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Q 책 제목이 인상적이네요. '떡볶이 식탁'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떡볶이'는 그저 음식이 아닙니다. 매주 일요일,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이 모이는 '고정된 약속'이었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시작된 이 의식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민자로서 느끼는 외로움은 물론이고, 큰아이의 진로와 교육 문제, 둘째의 우울증과 ADHD, 왕따, 막내의 교통사고와 인종차별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 떡볶이 식탁 위를 오갔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 자리에서 훈계나 강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에요.
Q 그 식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지킨 원칙이 있었다면요?
"왜 성적이 떨어졌어?", "왜 그런 선택을 했어?" 같은 질문 대신 "이번 주는 어땠어?", "지금 네가 가장 힘든 건 뭐야?"를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말하지 않아도, 그냥 같이 앉아 있기만 해도 충분한 시간이었거든요. 이 식탁 덕분에 아이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숨지 않았고, 부모에게 돌아오는 통로를 잃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성교육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의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구조, 그것이 인성교육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저희는 아주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떡볶이 식탁'이라는 교육의 구조를 만들었던 셈이죠. 각 가정마다 저마다의 반복되는 교육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세 아이의 성향이 다 다르다고 들었어요.
큰아이는 계획형이고, 둘째는 감각형, 막내는 관찰형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마다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어요. 큰아이는 스스로 목표를 세우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부모가 개입하면 오히려 부담이 됐어요. 그래서 "네가 정한 만큼 책임질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해줬죠.
Q 아이마다 접근 방식을 달리하는 게 어렵진 않았나요?
둘째는 독서광이면서도 섬세하고 예민했으며 표현 욕구가 강한 아이였어요. 그 아이에게는 선택권을 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모델 일을 병행하겠다는 말에 처음엔 불안했지만, 대신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어요. 막내는 느리고 조심스러운 아이였어요. 그래서 재촉하지 않았고, 기다려주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아이마다 다른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저는 이 세 아이를 키우며 몸과 마음으로 배웠습니다.
Q 어릴 때부터 영재교육이나 선행학습은 어떻게 했나요?
많이들 물어보시지만 특별한 영재교육은 하지 않았어요. 다만 아이가 좋아하는 건 끝까지 해보게 했습니다. 중요했던 건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붙잡을 수 있느냐였어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긴 인생에서 어린 나이에 가장 잘하는 것, 가장 좋아하는 것을 단정 짓는 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죠.

왕따·우울증·진로 변경… 아이들이 겪은 변수들
"'규칙 후 자유'라는 원칙만큼은 절대 흔들지 않아"
Q 아이의 선택을 믿는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좋아하는 것을 잘 관찰하며 그 공간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자 했습니다. 큰아이가 음악을 하며 의사로 살아가고 있는 것도, 둘째가 모델 일을 병행하며 로스쿨에 진학한 것도, 막내가 아이비리그에서 예술학도로 성장하는 것도 모두 아이 스스로의 선택이었어요. 조금 느리더라도 좋아하며 자신을 확장해 갈 수 있는 길을 찾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영재로 타고난 아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 아이들 역시 영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학습지를 고르고 분량을 정해 스스로 지키게 했어요. '학습지 한 페이지, 악기 연습 1시간, 학교 숙제는 반드시 하기.' 이 규칙만 지키면 이후 시간은 완전한 자유였습니다. '규칙 후 자유'라는 원칙만큼은 절대 흔들지 않았어요. 지금은 모두 성인이 되었지만, 자기 일에 책임지는 태도만큼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Q 세 아이 모두 미국 명문대에 진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무엇일까요?
입시는 준비했지만 명문대학을 목표로 두지는 않았습니다. 미국 대학은 성적도 보지만, 아이가 무엇을 선택했고 어떤 여정을 거쳐왔는지를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더 나아가 이 아이가 학교 공동체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어떤 미래를 그려가는지를 함께 봅니다.
명문대를 목표로 하지 않았던 교육의 기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입시를 넘어 삶으로"
Q 그래서 입시 전략도 달랐던 건가요?
저는 아이들에게 대학이 좋아할 활동을 하기보다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고, 잘하는 일이 자신의 미래가 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온 시간이 쌓여 에세이가 되었고, 그 진솔함의 깊이가 아이들만의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전과를 하며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을 아이에게 그대로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입시는 결국 아이 삶의 일부일 뿐입니다. 원하는 학교든 아니든 그것이 끝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추구하다 보면, 입시를 넘어 자신에게 맞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부모가 만들어줄 수 있는 가장 큰 울타리라고 생각합니다.
Q 각자의 길을 찾아간 세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부모로서 바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이제는 "얼마나 가야 한다"는 바람은 거의 없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며 깨달은 건, 성공보다 중요한 건 자기 삶에 대한 태도라는 사실이었어요.
Q 결국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삶에는 누구에게나 넘기 힘든 순간이 옵니다. 그때 도망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반대로 모든 것이 잘 풀릴 때도 자신을 잃지 않고 세상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직업이 무엇이든, 얼마나 인정받든, 자신을 사랑하며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재능이고, 음악도 재능이고, 누구나 자기만의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눈꽃송이처럼 각자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가다 자기 자리 하나에 닿을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아이들이 '잘 산다'는 말을 남에게서 듣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길 바랍니다. 그것이 부모로서 제가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교육입니다.
글 신수경(프리랜서)
사진 출판사 제공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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