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교육학자가 본 CES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2026. 1. 23.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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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훈 교수 (성균관대 교육학과-교무처장)

1883년 고종은 민영익을 단장으로 한 보빙사(報聘使)를 미국에 파견했다. 서양의 정치·군사·산업·교육을 눈으로 보고 배우라는 뜻이었다. 수행원으로 동행한 청년 유길준은 2년 체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유견문'(西遊見聞)을 남겼다. 그는 국력의 바탕이 과학기술과 산업 같은 물질문명임을 인정하면서도 교육과 사회제도를 개혁해 국민 수준이 올라갈 때 그것이 온전히 실현된다고 강조했다. 1월 초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를 돌아보며 유길준이 떠올랐다.

올해 CES엔 160여개국에서 4000여개 기업이 참가했다. 한국 기업만 800곳이 넘었는데 절반이 스타트업이었다. 화두는 AI, 로보틱스, 디지털헬스, 모빌리티 등 혁신기술이었지만 교육학자의 눈엔 다른 것이 보였다.

먼저 '융합'과 '협력'이다.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생존전략이었다. 현대자동차는 보스턴다이내믹스, 구글 딥마인드와 손잡고 AI 기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Atlas)를 선보였다. 1시간반을 기다려 들어간 전시장에는 자동차의 미래뿐만 아니라 미래 산업생태계의 청사진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현대차를 '자동차 제조회사'로만 보지 않는다. 차세대 생산플랫폼을 구현하는 AI·로보틱스 선도기업으로 인식한다.

카세트플레이어 '워크맨'(Walkman)으로 유명한 소니의 도전도 인상적이었다. 영화·엔터테인먼트 확장을 넘어 혼다와 손잡고 전기차 '아필라'(Afeela))를 개발 중이다. 소니의 엔터테인먼트·센서·네트워크 기술과 혼다의 자동차 제조·안전기술을 결합한 차세대 스마트 모빌리티다. 산업의 경계가 흐려지고 이종기술의 융합으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현장이었다. 우리 교육은 어떠한가. 여전히 교과·학과·학문별 칸막이는 높고 협력보다 개인간 등급경쟁이 앞선다. 학교는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는 곳을 넘어 대화와 소통, 설득과 양보를 배우고 체험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다른 전공·집단과 섞여 문제를 찾고 해법을 모색하는 융합의 배움터여야 한다.

다음은 변화를 읽는 속도다. 파나소닉의 변신이 상징적이다. 가전브랜드였던 이 기업은 삼성·LG 등 글로벌 강자와 경쟁하면서 전략을 바꿨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건물 유리에 적용하는 에너지 솔루션을 선보였고 AI 기반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주력 사업으로 내세웠다. 반대로 과거 CES 한가운데를 차지한 기업의 상당수는 자취를 감췄다. 변화의 타이밍을 놓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커리큘럼 혁신 없이 비슷한 학과를 유지한 채 '눈치 보기'로 버티는 전략은 한계에 이르렀다. 자교의 강점에 기반한 특성화·차별화를 이루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서울대 따라 하기'가 되면 안되는 이유다. 간판만 바꿔선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AI 시대다. AI는 가전·로봇뿐 아니라 자동차·에너지·환경·바이오 등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무인 자동차 '웨이모'(Waymo)가 라스베이거스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덧 AI가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느꼈다. AI는 생산성과 삶의 질 향상을 약속하지만 일자리 감소와 악용에도 대비해야 한다.

답은 교육에 있다. 코딩 교육시간을 늘리고 AI과목 몇 개를 신설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데이터를 의심하며 알고리즘 편향의 위험을 이해하고 기술에 따르는 윤리적 책임을 아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융합과 특성화, 기업가정신은 교과서만으론 배울 수 없다. 혁신과 도전, 실패와 재도전의 서사는 눈으로 보고 느낄 때 체화된다. CES에 전시된 것들을 국내로 옮겨와 학생들에게 '서유견문'의 장을 열어주는 상상을 해본다. 학생들이 진로를 탐색하고 창업을 꿈꾸며 AI와 로봇의 가능성과 한계를 성찰하는 배움터로 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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