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삶] 검여(劒如) 그리고 남전(南田)

'좋은 스승이 좋은 제자를 만든다' 러시아 연극인 스타니슬랍스키의 교육철학이라고 기억한다. 평소에 좋은 스승 과 좋은 제자의 표본이라고 생각해 온 검여 선생과 남전 선생, 그 대를 잇는 좋은 제자들의 서원인 (사)시계연서회의 김인숙 대표가 밝은 목소리로 서구문화재단의 검여 50주기 전시준비소식과 전시의 의미를 더 높이기 위해 아직 노출되지 않은 작품들을 발굴해야 한다는 의지를 전해왔다.
검여의 탄생지가 있는 서구에서 선생을 기리는 '검여 유희강 K-Culture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하니 우선 반가움이 앞섰다. 그리고 그 다음은 최선을 다해 협조할 일이었다. 아직 노출되지 않은 검여의 작품 소장자를 찾기 시작하여 제주도에 사는 지인을 떠올렸고 검여 선생 마지막 전시 출품작 포함 2점(여천무극, 춘화추실)을 소장 중인 것으로 확인했다. 3월에 전시라고 하니 더 수소문하며 찾아볼 것이다.
검여 유희강은 1911년 인천에서 태어나 한국 근현대 서예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독창적인 서체와 불굴의 예술혼으로 평가받는 인물로 알고 있다. 검여 유희강, 남전 원중식.
긴 세월 두 분 사제지간의 실화는 잘 알려진 대로 감동의 극적 서사가 있는 한편의 드라마이다. 남전은 '검여 선생님에 대한 사념'에서 "1968년 검여 선생님은 뇌졸중 발병으로 서예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오른쪽 반신불수가 되고 실어증까지 걸리시고 말았다. 그 후 괴로운 투병생활을 계속하며 다른 한편으로 좌수로 붓을 잡아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보여주신 각고와 정성, 집념과 불굴의 의지는 실로 기적과 같은 것이었다… 선생님은 <논어> '위령공편'의 '유교무류(有敎無類)'의 말 그대로를 철저하게 실천하셨던 것이다. 가르침에 있어서 배우고자 하는 자의 우열, 선악, 빈부 등을 분별하여 치우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검여는 인천시 서구 시천동 진주 유씨 집안에서 태어나, 유림의 명륜전문학원을 졸업하고(1937), 경성기독교청년회 외국어학교에서 중국어를 수학한 후 1939년 중국으로 건너가 서예와 금석학을 연구했으며, 상하이미술연구소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1943-1945). 광복 후 귀국하여 인천에서 대동서화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했으며, 1954년 제2대 인천시립박물관장에 취임하였다.
인천시립박물관 주최 인천중고교 미술대회에서 남전이 제물포고등학교 2년(1958)가을 2등상을 수상하게 되어 직접 상장을 받으며 첫 대면을 하게 된 후, 남전이 서울농대 1학년 때(1960)부터 검여에게 스스로 찾아가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1962년, 검여가 박물관장을 그만두고 서울 안국동에 검여서원을 개원하였는데 오늘 날 시계연서회의 모태가 된다. 시계(柴溪) 는 검여의 출생지 '시시내(柴溪)'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한 서구 시천동의 옛 이름이다. 검여는 시계외사(柴溪外史)란 호를 사용한 바 있고, 1995년 남전이 창단하여 시계서회(柴溪書會)라고 명명하고 매년 1회씩 전시를 개최하였으며, 좋은 스승 검여, 남전 사후에도 좋은 제자들은 시계연서회를 사단법인으로 등록(2018)하여 60년 역사를 이어가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필자는 서울 중곡동에 있는 시계연서회 서실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데, 남전이 재직했던 서울시립대학에 선생이 1976년에 만든 서예동아리 연묵회를 50년째 지도하고 있어 감탄했다. 코로나 기간 제외하고 매년 2회씩 현재88회 연묵회전을 개최했다. 좋은 제자들이 좋은 스승을 닮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천 서구에 '검여·남전 서예관을'짓고, 시계연서회를 데려와서 인천에서도 좋은 제자를 키우고, 좋은 스승들이 태어나는 날이 오기를 상상했던 적이 있는데, 이젠 더 늦기 전에 현실이 되기를 기원한다.
/박은희 연출가·전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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