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후 남겨진 3t의 꽃, 추모를 예술로 보존하는 니나 사나제[시스루 피플]
사라지게 둘 수 없었던 추모 물품들
30도를 넘긴 창고, 꽃을 말리는 사람들
“부패와 슬픔, 그리고 아름다움이 함께 있다”

지난달 발생한 호주 시드니 본다이 비치 총기 테러로 15명이 희생되자 본다이 파빌리온에 마련된 추모소에는 꽃과 국기, 책, 장난감, 손글씨로 적은 애도 메시지들이 끝없이 쌓였다. 사건 다음 날 아침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이곳에 꽃다발을 놓고 희생자들을 추모했고, 이후 추모 물품은 계속 늘어났다.
최연소 희생자인 10세 마틸다 비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Bee)에서 따온 벌 인형과 벌 모양의 풍선도 사진 옆에 놓였다. 조용히 놓인 물건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담은 채 공간을 채워갔다. 사건 발생 일주일쯤 뒤 지자체가 추모 물품을 수거하기로 하자 시드니 유대인 박물관과 호주 유대인 역사학회는 물건들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추모 공간에 놓여 있던 물건들은 지정된 장소로 옮겨졌고 향후 추모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가장 큰 과제는 3t에 달하는 꽃이었다. 이를 예술로 남기겠다고 나선 이가 바로 유대인 예술가 니나 사나제다. 그는 북부 노스시드니의 한 창고에서 꽃을 보존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의 제안에 뜻을 함께한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에 모여들었다.
사나제는 21일(현지시간) 보도된 BBC와 인터뷰에서 “꽃들이 이 창고로 들어왔을 때 마치 백 구의 시신 같아 보였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며 꽃들이 시들고 부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는 꽃을 하나씩 철제 울타리에 걸어 말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창고 내부 온도는 30도를 훌쩍 넘겼고 공기 중에는 꽃가루가 가득 떠다녔다. 꽃에서 발생하는 가스와 양이 많아 퇴비 자연발화 화재 위험도 커서 봉사자들은 온도를 계속 확인하며 선풍기를 가동했다. 열기를 식히기 위한 제습기와 꽃을 눌러 말리기 위한 벽돌도 동원됐다.

사나제는 “이곳의 냄새와 습기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었다”며 “마치 향수 가게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창고 안에서는 꽃의 종류 하나하나를 목록화됐다. 아카시아, 부겐빌레아, 유칼립투스, 난초까지 모든 꽃은 라벨이 붙고 색깔별로 분류돼 상자에 담겼다. 사나제는 꽃의 모든 부분을 재활용하기로 했다. 꽃잎은 다리미로 다리거나 눌러 말렸고, 해바라기 꽃가루는 물감으로 가공됐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조차도 보존 대상이 됐다. 꽃줄기는 퇴비용으로 보관하고 있는데 사나제는 이를 가구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썩기 시작한 장미 봉오리 일부는 말린 뒤, 사용 가능한 꽃잎을 흩뿌린 레진 작품으로 만든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하루 최대 50명의 자원봉사자가 이 창고를 찾고 있다. 몇 시간을 운전해 오는 이들도 있고, 잠시 들러 돕고 가는 사람, 온종일 머무는 사람도 있다. 작품이 완성되면 2027년 초 재개관하는 시드니 유대인 박물관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사나제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여기에는 부패와 슬픔, 그리고 아름다움이 함께 있다”며 “완벽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 사건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가슴 아픔과 사랑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작업 초반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는 그는 이제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이 과정을 마주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나제는 “예술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말을 건넬 수 있다”며 “꽃은 인간의 연약함을 말해주고 언어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12151557001
https://www.khan.co.kr/article/202512142113005#ENT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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