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사람 냄새’ 그리운 도시노동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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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며 순천댁 할머니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져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슬픈 이야기지만 이렇게 이웃의 일상을 속속들이 잘 안다는 건 도시에서는 '섬뜩한' 일일 수도 있다.
순천댁 할머니 이야기처럼 시와는 또 다른 호흡으로 적어 내려간 시골 일상과 농부의 마음이 담겼다.
그가 말하는 농부의 이치는 단순히 자연에서 배우고, 사람답게 사는 일에만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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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노동자 출신 농부시인
경쟁사회에 젖어든 채 살다가
자연에서 주민과 일하며 느낀
‘사람답게 사는 삶’ 소회 담아내

"함께 늙어 가던 순천댁 할머니는, 몸이 아파 사흘 내내 누워만 있었습니다. 어제 해 질 무렵에 겨우 일어나 흙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고달픈 세월을 함께 살아온 무화과나무 아래 서 있기도 하고, 장독대 앞에 앉아 키 작은 채송화도 바라보고, 낡은 신발장문도 살며시 열어 보고는 지친 몸을 늘 기다려 주던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새들은 잠에서 깨어 새로운 아침을 여는데 할머니는 눈을 뜨지 못하셨습니다." (20쪽)
글을 읽으며 순천댁 할머니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져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슬픈 이야기지만 이렇게 이웃의 일상을 속속들이 잘 안다는 건 도시에서는 '섬뜩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는 오랜 세월 더불어 사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합천 황매산 자락 나무실 마을에서 땅을 일구는 서정홍 농부시인이 15년 만에 산문집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를 냈다. 순천댁 할머니 이야기처럼 시와는 또 다른 호흡으로 적어 내려간 시골 일상과 농부의 마음이 담겼다.

1990년 마창노련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시인은 1992년 전태일문학상을 받기도 했던 노동시인이었다. 그런 그가 문득 합천 산골로 들어가 '열매지기공동체'와 '담쟁이인문학교'를 운영하는 농부시인이 됐다. 공단 노동자에서 농부가 된 그가 일궈낸 것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 희망이다.
"가난한 사람 도우려면 우선 돈을 주는 것도 좋지만, 그들과 함께 살면서 희망을 찾아 나서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을까요? 돈은 있다가도 없어질지 모르지만,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하나로 이어 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니까요." (80~81쪽)
시인 농부가 되고서야 비로소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체감한다. 그는 이를 사람 냄새로 표현했다.



그가 말하는 농부의 이치는 단순히 자연에서 배우고, 사람답게 사는 일에만 있지 않다. 시인에게 농사는 이웃의 식탁을 걱정하는 마음이고, 누군가의 고단한 삶을 지탱해 주는 생명줄이다. 농부의 일은 세상의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농촌이 살아야 도시가 살고, 노동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우리 땅에서 난 건강한 먹거리도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은 정규직에 견주어 36%(2024년 기준 47.4%-편집자 주)밖에 안 되는 낮은 수준이지요. 임금이 적으면 어찌 그 월급으로 우리나라 농부들이 생산한 우리밀 라면 한 개 마음 놓고 끓여 먹을 수 있겠습니까? 몸에 해로운 줄 뻔히 알면서도, 독한 농약과 방부제 범벅인 싸구려 수입 농산물을 사 먹는 비정규직 마음을 헤아려 보셨습니까?" (82~83쪽)
이처럼 이번 산문집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도시의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내 몸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가만히 맡아보고 싶은 이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뜻하게 잇는 진짜 '사람 냄새'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끝으로 출판사의 저자 소개가 재밌다.
"저자 : 서정홍/ 근무처 : 아름다운 들녘 마을/ 소속 : 모든 생명을 품어 키우는 흙/ 직위 : 별을 노래하는 농부/ 담당 업무 :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생명농업/ 최종 학력 : 생태귀농학교/ 전공 분야 : 이 시대 마지막 희망, 가족 소농"
340쪽. 교육공동체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