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경제위기 해법 모색…“산업·금융 함께 살려야” 오피니언 리더 60여 명 머리 맞대
김재구·이창영 “수도권 집중·지역 금융 약화가 악순환 키워”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갈수록 심해지는 수도권 집중은 대한민국 남부권 경제의 한 축인 대구·경북의 산업 기반을 크게 흔들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지역 경제의 현주소를 짚고 실질적인 살길을 찾기 위한 '대경미래혁신포럼 창립 기념 세미나'가 지난 21일 오후 대구 수성구 지산동 바우어 카페에서 열렸다.
지역의 위상을 되살리고 당면한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출범한 대경미래혁신포럼은 교수, 법조계, 언론계, 의료계, 문화계 인사 등 지역을 대표하는 오피니언 리더 60여 명이 뜻을 모은 모임이다. 포럼의 첫 행보인 이번 세미나에는 김재구 명지대 교수(전 한국경영학회 회장)와 이창영 iM금융지주 전무(ESG전략경영연구소 소장)가 발표자로 나서 각각 산업 생태계와 금융 인프라를 중심으로 지역이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생존 전략을 제시했다.
◆멈춰선 성장 엔진 가동…제조업 스마트화와 신산업 거점 구축 강조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재구 교수는 현재 대구·경북이 맞닥뜨린 위기를 '혁신 생태계의 약화'로 진단하며 지역 경제의 현실을 짚었다. 김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73조 원 규모로 부산과 인천 등 다른 광역시에 비해 6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연간 경제성장률도 전국 평균을 밑돌고 있으며 특히 1인당 GRDP는 30년 넘게 전국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를 두고 "지역 주민들의 삶의 여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그는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산업과 자본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지목했다. 매출 상위 500대 기업 본사의 77%, 시가총액 상위 50개 기업의 78%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현실은 비수도권이 자생력을 갖기 어려운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일자리 격차로 이어져 최근 10년간 늘어난 취업자의 과반수가 수도권에 집중됐다. 그 결과 대구·경북 인구 500만 명 선이 무너지는 등 '지방 소멸'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 됐다.
김 교수는 이를 타개할 해법으로 '글로벌 신산업 라이브 테스트베드' 구축을 제안했다. 단순히 기존 제조업을 유지하는 데 머물지 말고 제조업의 스마트화와 고도화를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융합기술 기반의 신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글로벌 수준의 시험·인증·평가기관을 유치하고 공공조달을 활용해 초기 시장을 만들어 주면 신산업 기업들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금융의 실핏줄 복원…"실물보다 작은 금융, 구조부터 바꿔야"
두 번째 발표자인 이창영 iM금융지주 전무는 지역 금융의 위축이 실물경제의 침체를 더 빠르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구·경북의 실물경제 비중은 전국의 8.3%에 달하지만 금융 비중은 5~6%에 그치고 있다"며 "지역에서 벌어들인 부가가치에 비해 자금이 지나치게 수도권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은행권 수신의 71.1%, 여신의 67.7%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반면 대구·경북의 비중은 수신 5.5%, 여신 6.8%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 전무는 국토 면적의 11%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51%, 자금의 67%가 집중된 구조를 짚으며 "자금 유출이 결국 지역의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지방은행이 여전히 지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됐다. 지방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평균 57.4%로, 4대 시중은행 평균(42.3%)보다 훨씬 높다. 또 인구 1만 명당 약 0.5개의 점포를 유지하며 고령층과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대면 금융망을 지키고 있다. 이 전무는 "지방은행이 시중은행과 같은 규제를 적용받는 현 제도는 규모의 한계와 디지털 경쟁 부담을 안고 있는 지역 금융에 불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은행법상 지방은행의 정의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비대면 금융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영업구역 제한만으로 지방은행을 묶어두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전무는 "지방은행을 기능과 역할 중심의 '지역은행'으로 다시 정의해야 한다"며 "지역은행의 법적 지위를 분명히 하고 지자체 금고와 공공기관 주거래은행 선정 때 지역은행을 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부 정책자금을 지역은행이 우선 취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산업과 금융의 선순환…지역 주도의 새로운 성장 패키지 필요
마지막 종합 토론에서는 산업과 금융을 따로 떼어 놓고는 지역 경제 회복이 어렵다는 데 참석자들의 의견이 모였다. 산업 기반이 약해지면 자금이 빠져나가고 금융 지원이 줄면 다시 산업이 무너지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산업과 금융을 함께 살리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중앙정부의 일시적인 지원에 기대기보다 지역 스스로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는 구조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산업 측면에서는 제조업 고도화와 신산업 육성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금융 측면에서는 지역은행을 중심으로 모험자본과 장기자금을 공급해 기업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투자·금융·인재·기술이 한 축으로 맞물리는 '지역형 성장 패키지'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단순한 보조금이나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기업이 지역에 머물며 커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참석자들은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며 "대응이 더 늦어지면 대구·경북은 회복 자체가 어려운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미나를 주최한 서민교 대경미래혁신포럼 대표는 "대구·경북의 위기는 개별 주체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며 "제조업 고도화와 지역 금융 역할 강화를 함께 추진해 우리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정부와 지자체에 계속 제안하고 실제 변화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명환 기자 km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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