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72] 북한 배구에선 왜 '포지션 폴트(position fault)'를 ‘자리위반'이라 말할까

김학수 2026. 1. 22.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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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포지션 폴트'는 영어 'position fault'를 소리나는대로 차용한 단어이다.

배구에서 선수들이 서브 로테이션을 위반하거나 포지션을 위반할 때 쓴다.

북한 배구에선 포지션 폴트를 '자리 위반'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자리 위반이라는 말에는 북한 스포츠관의 한 단면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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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북한-베트남 여자배구 친선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외래어 ‘포지션 폴트’는 영어 ‘position fault’를 소리나는대로 차용한 단어이다. 배구에서 선수들이 서브 로테이션을 위반하거나 포지션을 위반할 때 쓴다. ‘position fault’의 어원은 말 그대로 위치를 의미하는 ‘position’과 반칙을 의미하는 ‘fault’의 결합어이다. 직역하면 “정해진 위치를 어긴 잘못”, 즉 자리 위반 반칙이라는 뜻이다. (본 코너 490회 ‘배구에서 파울(Foul)과 폴트(Fault)는 의미상 어떤 차이가 있을까’ 참조)

포지션 폴트는 배구·테니스 등에서 대개 동작 자체가 아니라 ‘서 있는 위치’가 규칙에 어긋났을 때 성립한다. 배구에서는 특히 이 개념이 명확하다. 서브 순간, 앞줄·뒷줄 선수의 상대적 위치, 로테이션 순서를 위반할 때 적용한다. 이때 문제 되는 것은 스파이크 동작도, 블로킹 행위도 아니라 “서 있었던 자리 그 자체”이다. 포지션 폴트는 1947년 국제배구연맹(FIVB) 창설한 뒤 1950년대 로테이션·앞줄·뒷줄 규칙의 엄격화를 위해 개념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선 1960년대 포지션 폴트라는 말을 사용했다.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국제 규칙 번역서와 심판 교재를 통해 포지션 폴트라는 표현이 영어 원형 그대로 유입됐다.

북한 배구에선 포지션 폴트를 ‘자리 위반’이라고 부른다. position을 음역하지 않고 ‘자리’로 옮겼다. fault 역시 ‘반칙’이 아니라 ‘위반’으로 바꿨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말이 자리 위반이다.

이 표현은 판정의 성격을 단번에 설명한다. 문제가 된 것은 플레이의 질이 아니라,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공을 잘 쳤는지 못 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규칙이 요구한 질서를 지켰느냐가 판단 기준이다. 북한식 체육 언어는 이처럼 규칙을 기술 설명이 아니라 질서의 언어로 번역한다.

자리 위반은 고립된 사례가 아니다. 북한에서는 오버네트를 ‘손넘기’, 네트 터치를 ‘그물접촉’, 이라 말한다. 공통점은 외래어를 줄이고, 규칙의 핵심을 일상적이면서도 규범적인 말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 언어들은 선수에게 “어떤 기술을 쓰지 말라”고 말하기보다, “어디까지가 네 몫인가”를 묻는다. (본 코너 1670회 ‘북한 배구에선 왜 ‘오버네트’를 ‘손넘기’라고 말할까‘, 1671회 ’북한 배구에선 왜 ‘네트 터치’를 ‘그물접촉’라 말할까‘ 참조)

그래서 자리 위반이라는 말에는 북한 스포츠관의 한 단면이 담겨 있다. 개인의 재치나 순간적 판단보다, 정해진 배치와 순서를 지키는 것이 경기의 공정성을 만든다는 인식이다. 스포츠를 자유로운 경쟁으로만 보지 않고, 질서가 유지되는 집단 활동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언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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