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백화점 식품관 고수는 비싸도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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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파는 고수는 버릴 게 없다.
고수를 어장(漁醬)에 무쳐 고기에 얹어 먹는 맛이 백미라, 백화점에 갈 때면 채소 코너를 기웃거리게 된다.
이번 달 대출 이자를 생각하면 마트 고수를 집는 게 주제에 맞는 소비겠으나 결국 고수의 신선도 앞에 지갑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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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백화점 식품관에서 파는 고수는 버릴 게 없다. 막 수확한 듯 신선하고 깨끗하다. 고수를 어장(漁醬)에 무쳐 고기에 얹어 먹는 맛이 백미라, 백화점에 갈 때면 채소 코너를 기웃거리게 된다. 마트보다 1.5배는 비싸다. 이번 달 대출 이자를 생각하면 마트 고수를 집는 게 주제에 맞는 소비겠으나 결국 고수의 신선도 앞에 지갑을 연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수향에 감탄한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정교하다. 가격표는 상품의 가치를 반영한다. 비싸면 비싼 값을 하고, 저렴하면 그 이유가 있다. 때로 가격과 가치의 괴리에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큰 틀에서 보면 시장은 결국 합리성으로 수렴한다. 돈은 욕망을 좇고, 우리의 선택은 효율적인 결과물을 향해 움직인다.
이 정교한 자본주의 문법 안에서 우리는 '서학개미'가 됐다.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어느덧 250조 원을 넘어섰다. 국내 증시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익률 앞에서 애국심을 이유로 '동학'을 고집할 투자자는 없다. 자본주의 합리성에 반하는 일이다. 설령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위협해도 개인에겐 서학개미로 남는 것이 여전히 합리적 선택이다. 시장의 생리를 쫓는 이들을 탓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환율 시장 역시 합리성을 따른다. 시장 참여자들은 여전히 원화보다 달러가 싸다고 판단한다. 미국 경제 성장률은 한국을 압도하고, 미국 증시는 아직도 매력적이며 향후 십수년 동안 한국의 대미 투자액이 3,5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시장은 이미 알고 있다. 정부는 환율을 끌어올리는 주범으로 '가수요'를 지목하지만, 시장 입장에선 '쌀 때 미리 사두는' 지극히 당연한 대응이다. 정부만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 대비 원화값이 저평가돼 있다고 외칠 뿐, 시장은 요지부동이다.
정부의 으름장은 통하지 않았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입을 빌린 구두개입의 약발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이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떠올리게 한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고 고점의 위험성을 경고할수록, 시장은 '지금이 아니면 못 산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정책의 권위가 시장의 합리성을 돌파해내지 못한 결과다.
이쯤 되니 고환율 상황은 신뢰의 문제인지, 자본주의 합리성의 발현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고환율을 방어할 실효성 있는 카드가 정부에 남아 있는지도 의문이다. 차라리 시장 참여자들에게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면 어떨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운동은 합리적 판단보단 위기 극복이라는 공동체의 마음이 만든 성과였다. 다만 나라 곳간을 책임졌던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마저 미국 국채에 투자했던 마당에, 정부의 진정성이 통할지 모르겠다.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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