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100년 전 사람, 1만㎞ 밖 세상 만나러 서점에 가자
옛 사람 만나고 먼 그곳도 갈 수 있어… 이 글이 서점 가는 오솔길 되길

새해에 한 출판사가 신문에 낸 광고를 보고 또 보았다. 줄글로 이루어진 그 광고에 끌렸기 때문이다. 줄글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서점에 오면, 사람과 만난다.” 어떤 사람인가? “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거나 1만㎞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이거나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 서점에 오면 이런 사람과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광고의 상단부에는 서점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혼자인 사람, 연인과 함께인 사람, 아이와 함께인 사람과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있다. 출판사 고단샤가 2026년 1월 1일 일본의 주요 일간지에 낸 전면 광고다.
종이 신문에 낸 이 아날로그 광고는 SNS로 전파, 순식간에 국경을 넘어 급기야 나에게까지 닿았다. 일본에 살지도 않고, 일본어도 모르고, 일본 매체를 구독하지도 않는 나에게까지 말이다. 이 글을 나누고 싶었던 누군가가 한국어로 번역해 전파한 고단샤의 신년 광고를 보며 새삼 책이란 과연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책은 사람이 쓰는 것인데, 이 사람이라는 것이 참으로 복잡하다는 생각도. 태어나고 자란 곳과 보고 들은 것과 읽고 쓴 것으로부터 한 사람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을 생각해 봤다. 그들도 그들이 태어나기 100년 전에 나온 책을 읽었을 것이다.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쓸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100년 전쯤에 나온 책을 떠올렸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1만㎞라는 아득한 거리에 대해서도 가늠해 보았다. 서울에서 그 정도 떨어진 곳은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스페인 마드리드 정도라는 것도. 캘리포니아 정서가 담긴 ‘미국의 송어 낚시’와 스페인 라만차의 자칭 시골 기사 이야기인 ‘돈키호테’를 읽었기에 가본 적 없는 그 먼 곳이 낯설지만은 않다.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인간이란 관심 있는 쪽으로 기울기 때문이다. 전문 용어로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책과 서점과 도서관에 대한 글과 그림으로 가득한 책이었다. 제목은 ‘우리가 사랑한 세상의 모든 책들’(제인 마운트 쓰고 그림, 진영인 옮김, 아트북스, 2019). 뒤표지에 있는 카피 문구는 이러하다. “우리는 책으로 세상과 이어져 있다.” 반박할 도리가 없었다. 이 명쾌하고도 단순한 진실!
가보고 싶은 서점들이 생겼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유니티 북스부터. 서점 외벽에 있다는 거창한 문구에 혹했다. “유니티 북스에는 무엇이 있지? 노래를 부르는 것/ 논쟁하는 것/ 이야기하는 것/ 놀라운 것/ 미래를 볼 수 있는 것/ 유혹하는 것/ 기분을 들뜨게 하는 것.” 다음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참조했다는 영국 런던의 리브레리아 북스다. 끝도 없이 뻗어나가는 책의 미로를 시각화하기 위해 책을 비추는 거울을 설치했다거나 책을 종잡을 수 없이 분류했다는 사실에 끌렸다. ‘바다와 하늘’ ‘환상이 깨진 이들을 위한 황홀’ 같은 식이다. 세 번째는 냄새가 피어오르는 서점, 영국 런던의 북스 포 쿡스다. 1층에서는 아내가 책을 팔고 2층에서는 남편이 책에 나온 레시피대로 조리한 점심을 판다고.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했기에 세계의 도서관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렘 콜하스의 설계로 유명한 시애틀 중앙도서관, 브루탈리즘 양식으로 지은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 대학교 가이젤 도서관, 완벽한 양의 자연광이 들어오게끔 조도를 설계했다는 가나자와 우미미라이 도서관도 궁금하지만 지역의 특색을 살린 이동 도서관을 만난다면 더 좋겠다. 몽골 고비사막에는 낙타에 책을 싣고 도서관이 없는 마을의 아이들에게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다. 20년 동안 고비사막을 5만 마일 이상 운행했다고. 콜롬비아 마그달레나에는 책을 실은 당나귀를 타고 다니며 역시 아이들에게 책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배고픔도 잊은 채 내가 미처 만나지 못한 특별한 그 책을 만나기 위해 서점과 도서관을 반나절 헤맨 기분이다. 100개의 서점이 있다면 100개의 세계관이 있는 것이므로, 100개의 세계를 오가느라 어지러웠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와중에 접한 어느 워싱턴 서점 주인의 열정과 집념은, 너무 두꺼워 읽기를 미뤄 왔던 조지 엘리엇의 소설을 읽을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소박한 이 글이 책과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서점으로 가는 오솔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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