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삼남매와 사이좋게 지내는 비결, 이겁니다

이지아 2026. 1. 2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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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담요 위에서 터지는 웃음소리... 하지 않던 이야기도 다 털어 놓는 '함께 게임'의 마법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지아 기자]

10대 사춘기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면 다들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저절로 '아이고' 소리가 나오는 분도 있고, '힘드시겠네요'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분들도 있다. 모두들 그 시절을 건너온 '선배맘'이고, 함께 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고 있는 '동지맘'들이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을 건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멋쩍네 "네~" 하고 웃어 넘긴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이들의 사춘기가 힘들지 않다. 물론 '아직은'이라는 전제를 붙여야겠다. 그럼에도 현재 '고2, 중3, 초6' 이렇게 다양하게 포진해있는 10대 아이들과 보낸 4년이 평균적으로 '맑음'에 해당한다면 어느 정도 굳은 살은 배겼고, 앞으로 다가올 시기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갖췄다고 생각한다.

순항 중인 우리집 사춘기

아이가 어릴 때는 해줘야 할 게 많아서 힘들고, 아이가 커가면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힘들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24시간 돌보느라 몸이 지치고, 아이가 크면 지켜볼 수밖에 없어서 마음이 괴롭다.

사춘기는 딱 그 중간에 있다. 아직은 나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 아직은 내가 어떻게든 아이의 방향을 잡아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나이. 어쩌면 사춘기 아이와의 불화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서 한 어머니가 '중학교 아들이 자꾸 옆길로 가려고 해서 고민이에요'라는 질문을 했다. 법륜 스님의 첫 마디는 역시나 심장에 들어와 꽂혔다.

"옆길은 없습니다. 길만 있을 뿐입니다."

엄마의 기준으로 봐서 '옆길'일 뿐, 아이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거라는 얘기였다. 아무 학위도, 자격증도 없는 내 '무근본 육아'의 핵심이라면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아이를 믿는 마음과 내려놓음. 아, 물론 아이들이 어릴 때 집중적으로 나눈 정서와 애착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 시간이 양분이 되어 아이들도 나도, 제법 편안하게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방학은 이 평화가 깨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시기다. 내가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나온 밤 11시. 큰누나가 '배고파'라는 말로 신호를 보내자 두 아들이 찰떡 호흡을 맞추며 애교를 떤다. 자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 탓에 방학 동안 '야식금지령'을 내렸지만 셋이 뭉치면, 엄마 말이 통할 리가 있나. '엄마, 돈 없어'로 방어하자, 아이들은 그러면 자기들이 돈을 모으겠다며, 그 방법으로 '고스톱'을 제안했다.
▲ 야식값을 건 치열한 고스톱의 현장 야식값을 걸고 한 시간 가량 고스톱을 치고 이후에는 진~한 이야기가 오갔다
ⓒ 이지아
아이들에게 고스톱을 가르쳐 준 건 순전히 나름의 '효심'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시골에 계신 시부모님과 소통이 어려워지는 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야 뽈뽈 기어다니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장기자랑도 하던 녀석들이 이제는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10대가 되었다. 서로 데면데면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속상하던 차에 고스톱이 떠올랐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적막하던 집에 웃음이 차올랐다. 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지?'로 소통하던 부모님은 아이들 옆에 붙어서 어떤 패를 내야 할지 가르쳐 주시고, 패배를 가장해 100원짜리 용돈을 두둑이 챙겨주신다. 어느덧 우리의 명절 풍경에는 초록색 담요과 돼지저금통, 그리고 부모님의 웃음이 함께 한다.

고스톱의 마법은 이번에도 통했다. 패를 섞을 때면 자연스럽게 학교 생활 얘기가 나왔고, 이런 틈을 타, '낙장불입'이라며 인생의 진리도 가르쳤다. '자뻑'을 두 번이나 가져가면서 20점이 나려했던 큰딸은 동생의 '역고'에 거실 바닥에 쓰러져 절망했고, 그 모습을 보며 아들과 나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친구들이랑 통화할 때나 들어볼법한 '깔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10대 아이들은 한번 올라간 텐션이 쉽게 낮아지지 않는다. 고스톱으로 포문을 열고 야식을 먹으면 알아서 이야기 보따리가 열린다. 중3 아들은 물어봤을 때는 절대 해주지 않던 얘기를 스스로 털어놓았다. 딸은 2년 더 살아온 경험으로 동생에게 어설픈 연애 코치를 해주고, 초6 아들은 생전 말하지 않던 6학년에 올라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고백했다.

여기에 엄마의 역할은 별로 없었다. 들어주고, 웃어주면 끝이다. 그럼에도 저질 체력 엄마에게 부작용은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새벽 3시가 넘도록 끝날 기미가 없는 것이다. 더 얘기하자고 붙잡는 막내의 간절한 손을 뿌리치고, 조금 더 놀다가 자도 된다는 허락으로 이야기 늪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함께 웃으며 소통하는 마법

이런 날이라면 조금 늦게 자도 괜찮다. '야식 금지령'을 나 스스로 깼어도 전혀 무안하지 않았다. 규칙을 지키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경험을 통해 우리 사이에는 믿음이 더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부모를 믿으면, 언젠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것이며 그러면 부모 자식 사이의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럼에도 이성이라 그런가, 딸보다는 아들의 사춘기가 더 걱정되었다. 그때 아들 교육 전문가로 최민준 소장이 유튜브의 한 게임 콘텐츠 채널에 출연한 영상을 접했다. '게임 하루 1시간이라는 규칙이 씨알도 안 먹히는 진짜 이유'라는 제목에 확 끌렸다.
 사랑하는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
ⓒ tesecreates on Unsplash
최민준 소장의 해결법은 간단했다. 유독 게임에 관해서 만큼은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불쾌감을 갖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라고 한다. 사랑한다면서 그 사람이 사랑하는 세계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아들이 어렸을 때 그 이름도 힘든 '파키케팔로사우루스'를 외웠던 것처럼 게임을 조금 더 이해하고 배워보려는 노력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늘 이렇게 조언한다고 한다. 전쟁처럼 서로 대립하고 있을 때 누군가 한 명이 바뀌어야 한다면 그건 어른이라고. 그래서 어른이라고.

이 영상에 감명 받은 나는 두 아들과 다시 시청하면서 '엄마랑 같이 게임 하는 게 진짜 좋아?'라고 물었더니 신나서 방방 뛰기 시작이다. 친구랑 게임 하는 걸 더 재밌어할 줄 알았던 아이들의 의외의 반응에 당황했지만 내심 기분도 좋았다. 게임에는 영 취미가 없는 엄마지만, 올 겨울 방학엔 꼭 '로블록스'를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아이들의 고스톱의 세계로 들어온 것처럼 이제는 나도 게임의 세계에 들어가 봐야 하나 보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사랑하는 영역을 알아보려는 노력 정도는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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