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안개숲에서 드러난 ‘안전’의 얼굴

윤태민 기자 2026. 1. 2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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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 작가 ‘안개숲과 불꽃의 심장’ 출간
전자책 '안개숲과 불꽃의 심장' 표지.

환경 재난과 테러로 붕괴된 세계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장편소설 '안개숲과 불꽃의 심장'이 전자책으로 출간됐다.

이시형 작가의 신작인 이 작품은 재난 이후 인간이 선택한 '생존의 공동체'가 어떻게 또 다른 통제와 폭력의 공간으로 변질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소설의 무대는 인류가 마지막 피난처로 삼은 '안개숲'이다. 숲은 인간을 보호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머물 자격과 규칙, 권한을 둘러싼 갈등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폐쇄된 사회이기도 하다. 작가는 안개숲을 하나의 공동체로 축소해, 생존을 위한 질서와 보호를 명분으로 한 제도가 개인의 자유와 판단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서사적으로 드러낸다.

작품의 핵심 상징인 '불꽃의 심장'은 숲을 유지하는 근원이자 공동체의 존재 이유로 작동하지만 그 의미를 둘러싼 해석과 욕망의 충돌 속에서 공동체는 점차 균열을 드러낸다.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 누가 결정할 권한을 갖는지에 대한 질문은 사건의 전개 속에서 반복되고 독자는 인물들의 선택을 따라가며 끊임없이 판단의 유예 상태에 놓인다. '안개숲과 불꽃의 심장'은 명확한 해답이나 특정 정치 이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위기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선택의 딜레마를 통해, 공동체를 위해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책임은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를 독자에게 되묻는다. 환경 재난 이후의 세계를 다룬 판타지 소설이지만,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기후 위기와 안전, 통제와 자유라는 오늘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이시형 작가는 데뷔작 '파멸로부터의 생존자들'과 '편리한 진실' 통해 인간 본성과 권력, 정의의 문제를 장르소설 안에서 꾸준히 탐구해 왔으며, 이번 작품에서도 생존이라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 드러나는 사회의 민낯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안개숲과 불꽃의 심장'은 흥미진진한 서사를 따라가면서도, 읽고 난 뒤 오래 남는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