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규 칼럼] 숭의여고 농구부, 진짜 엘리트가 되는 과정

조원규 2026. 1.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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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위기의 숭의여고 농구부, 부활의 날개짓
주장 신보민 포함 6명의 새 얼굴로 시즌 준비
고아라 코치 "후회 없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12점차 리드에도 경기 포기한 고교 여자농구…엘리트 스포츠의 몰락”

2024년 5월, 한 언론은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경기를 포기한 팀은 숭의여고였습니다. 5명이 대회에 나왔습니다. 그중 한 명이 부상으로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이기면 최소 공동 3위 입상이지만, 4명으로 준결승 경기를 치르는 것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 2024년 연맹회장기. 숭의여고는 선수단 안전을 위해 이기고 있던 경기를 포기했습니다.

2년 전에 춘계연맹전 고등부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던 팀입니다. 불과 2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사실 한 해 두 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졸업생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했는데…. 많이 곪아 있었더라고요.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새로운 부장님 모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힘을 많이 실어주시고, 선배님들도 많이 연락주셔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고아라 숭의여고 코치의 말입니다. 2007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로 WKBL에 입성한 고아라는 출산 직후인 2025년 2월 은퇴식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7월에 모교인 숭의여고 코치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숭의여고에는 선수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선수 없는 학교에 코치가 먼저 왔습니다.

 

▲ 2025년 2월, 고아라 코치의 은퇴식


"일단 (선수) 5명을 채우는 것이 목표“라던 고 코치는 SNS와 농구 커뮤니티에 직접 선수 모집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6명이 모였습니다. 새해를 맞아 전체가 모인 팀 훈련도 드디어 시작했습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코트에 우리 학교 선수들이 없는 것을 보면서) ‘어쩌다 이렇게 됐지?’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 어떻게든 살려봐야겠다 생각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추억이 정말 오래 가더라고요. 지금 선수들도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기를 바라죠.”

신보민은 팀의 유일한 3학년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엘리트 농구를 시작했는데 숭의여고 진학 후 다른 진로를 모색했습니다. 자의반 타의반이었습니다. 그 기간이 2년에 가까웠습니다.

“너무 좋아하던 선수”였던 고아라의 코치 부임 소식을 듣고 SNS를 통해 먼저 연락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팀에 합류했습니다. “2년 가까이 운동을 쉬었는데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라는 신보민에게는 가고 싶은 대학이 있습니다. 최종 기착지는 WKBL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1승을 해보는 게 (시즌) 목표인데 너무 큰 목표라는 생각도 든다”라고 할 정도로 전력이 약합니다. 전력이 약하면 관심도 적습니다. 대학을 얘기할 때 신보민의 눈시울이 잠깐 붉어지기도 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내 “열심히 따라가려고 노력한다”라며 밝게 웃었습니다.


 

▲ 수비 훈련. 고아라 코치가 직접 시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엘리트 농구를 처음 시작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했던 선수도 공백이 있습니다. 고아라 코치는 훈련할 때 기본적인 수비 스텝부터 직접 시범을 보여야 했습니다. 기술 이전에 40분 풀타임을 소화할 체력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고 코치의 바람은 “최대한 농구를 잘하게 만들어서 대학이든 프로든 좋은 곳으로 (제자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목표’가 아닌 ‘의무’라고 표현했습니다. “코트에서는 선수들이 자식 같은 존재”라는 고 코치에겐 이제 14개월 된 딸이 있습니다.

모교의 코치 고아라가 되기 위해 엄마 고아라의 역할 중 많은 부분을 포기했습니다. 육아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교대로 도와줍니다. “다행히 할머니들을 진짜 좋아해요”라며 웃었지만,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기에는 아직 어립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선수들이 고맙습니다. 학교가 힘든 상황이라 선수들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고맙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후회 없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계획입니다.

 

▲ 2018년 춘계연맹전 결승. 이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숭의여고는 4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엘리트의 어원인 ‘eligo, eligere’는 ‘뽑다, 가려내다’라는 뜻입니다. 과거 국내 엘리트 체육이 그랬습니다. 운동에 재능이 있는 소년, 소녀를 선발해 집중 육성했습니다. 대학 입학과 졸업, 병역 면제 등 특혜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시스템은 과거가 됐습니다.

지금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은 위기가 맞습니다. 부족한 선수층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농구만이 아닙니다. 야구, 축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종목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희망의 싹은 자라고 있습니다. 초보 코치와 초보 선수들의 열정이 어우러진 숭의여고도 그랬습니다.

엘리트의 사전적 의미 중 하나는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입니다. 해체 위기의 숭의여고에는 엘리트로 성장하는 소녀들이 있습니다. 재능이 있고, 지친 몸을 힘겹게 옮기는 열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과제입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면 이 선수들은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현재와 미래가 됩니다. 선수는 물론 학교, 지도자, 협회, 연맹, 동문 등 모두가 과제 해결의 주체가 돼야 합니다.

#사진_점프볼DB, 조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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