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춘기 다이어리] 예순여섯, 엄마는 도예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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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오후에 친정엄마의 카톡이 울렸다. 낯선 서류 사진이 올라왔길래 확인해 보니, 한국도자재단에서 엄마를 정식 도예가로 인정한다는 인증서였다. 우리 엄마는 예순여섯에 비로소 '도예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직업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플로리스트였고 태어날 무렵에는 속셈학원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는 어린이집 원장님이었다. 아버지와 이혼 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엄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낮에는 어린이집 교사로, 저녁에는 액세서리 행상을 하며 장사를 하셨다. 그 와중에도 간호조무사 공부를 해 자격증을 따셨고,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에는 한의원에서 일하셨다.
엄마는 늘 말하곤 했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본 적이 없다고. 원하는 시기에 대학에 가지 못했고, 플로리스트의 길은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기에, 그저 잘했던 수학 실력으로 속셈학원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고. 생때 같은 아이 둘을 혼자 키우며 직업을 가릴 여유가 엄마에게 없었을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싱글맘에게 차가웠던 20여 년 전 사회가 엄마에게 얼마나 가혹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워낙 손재주가 좋았던 엄마는, 자식 둘이 모두 대학에 가고 나서야 비로소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결혼하고 육아 도움을 청하자 기꺼이 한의원을 그만두고 내 곁으로 올라와 손녀를 돌보며 도자기에 매진하셨다. 단체전과 개인전을 열고, 인사동을 바삐 오가며 손녀와 함께 어린이 도예 공방도 잠시 운영하셨다.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을 돌아 엄마는 마침내 도예가가 되었다. 집에 쌓여있는 수많은 도자기 작품, 주변 사람들의 "작가님"이라는 호칭에도 꽉 채워지지 않던 엄마의 마음이, 인증서라는 한 장의 종이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나는 소소한 축하금을 보내며 '도전에는 나이가 없다'라는 흔한 그 상투적인 말이 얼마나 무거운 문장인지 새삼 생각했다. 나의 전 생애를 거쳐 엄마는 언제나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원하는 직업과 꿈을 일찍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나의 대학원 동기 중에도 두 아이를 모두 대학에 보낸 뒤 대학원에 진학한 동기가 있다. 이제야 꿈을 찾아왔다고 말하던 그 모습이 참 반짝거려 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속에서 놓지 않고 계속 생각한다면, 결국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직업에도, 꿈에도 한계 나이는 없으니까.

글쓴이 김명지 세모라이브 대표 & 동서울대학교 디지털컨텐츠학교 겸임교수. 2018년생 딸 아이를 키우며 미디어커머스 회사를 운영하는 워킹맘. 꽃과 사찰산책, 맛집, 와인과 야장을 좋아하는 감성 T.
이설희 기자 seherhe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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