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빼고 가자”···공실 공포에 서울 재건축 ‘전략 수정’

길해성 기자 2026. 1. 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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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공실 부담에 분양 수익 포기하는 조합들
강남권 대단지도 통매각 유찰, 주거 중심 설계 가속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에서 상가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미분양과 공실 리스크로 인해 단지 내 상가가 애물단지로 변모하면서다. 불확실성이 큰 상가 대신 확실한 주거 분양을 통해 사업성을 보전하려는 실리 위주의 구조 재편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을수록 손해"···정비계획 수정하는 조합들

2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동 우성4차 재건축 조합은 이달 하순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기존에 계획됐던 상가 건립안을 전면 백지화하는 정비계획 변경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당초 조합은 지하 1층~지상 1층 규모로 13개 호실의 상가를 지어 분양 수입 82억원을 거둘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이를 포기하고 상가 공간을 삭제하기로 했다. 준공 후 상가가 장기 공실로 남을 경우 단지 전체의 가치가 하락하고 조합원들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상가 기피 현상은 서울 전역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영등포구 여의도 공작아파트는 최근 상가 면적을 기존 1만4000㎡에서 5200㎡로 60% 이상 축소하는 정비계획을 확정 지었다. 동작구 노량진4구역은 신축 계획에서 상가 시설 자체를 배제했다. 인근 노량진1·3구역 역시 상가 규모를 줄이는 대신 주택 분양 면적을 늘리는 방향으로 사업 계획을 조정했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7차 역시 단지 내 중심시설용지를 폐지하는 등 상가 최소화에 나섰다.
임대가 붙어있는 빈 상가의 모습. / 사진=연합뉴스

조합들이 기회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상가를 외면하는 건 아파트와 상가의 미분양 리스크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견고해 미분양 시에도 대안 마련이 용이한 반면 상가는 장기 공실이 발생할 경우 조합이 관리비와 각종 세금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고정 부채'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최근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상가가 과거처럼 분담금을 낮춰주는 효자 노릇을 하기 어렵게 됐다"며 "사업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불확실성이 큰 상가 대신 수요가 확실한 주거 면적을 극대화하는 실리 위주의 전략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 강남권 대단지도 '공실 늪'···상가 통매각마저 유찰

조합들이 상가 조성에 소극적으로 변한 건 최근 입주한 대단지들의 '상가 공실 쇼크'와 궤를 같이한다.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사례가 대표적이다. 입주가 시작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단지 내 상가 477개 호실 중 약 63%인 300여곳이 여전히 전월세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채 비어 있다. 초대형 배후 수요를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임대료와 유동 인구가 모이지 않는 동선 구조로 상권 회복이 더디다는 분석이다.
/ 그래픽=챗GPT

강남권 신축 단지는 예외가 아니다. 2023년 입주한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는 핵심 입지인 1층 상가조차 일부 공실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서초구 '메이플자이'는 상가 통매각을 추진하다 한 차례 유찰된 뒤 기준가를 10% 낮추고 겨우 주인을 찾았다. 가격을 낮춰서라도 상가 물량을 빠르게 털어내는 것이 사업 전체의 기회비용을 줄이는 길이라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강남권 대단지조차 상가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다"며 "신규 사업장들 사이에서는 '상가는 무조건 수익이 난다'는 공식이 깨진 지 오래"라고 전했다.

◇ 치솟는 공실률과 고임대료의 악순환

시장 지표 역시 상업용 부동산의 경색 국면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집합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3분기 기준 9.3%를 기록했다. 이는 2023년 3분기 8.3%, 2024년 3분기 9.1%에 이어 꾸준히 상승한 수치다.

이는 토지 가격 상승에 따라 상가 분양가가 높게 책정되면서 임차인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적정 수준 이상의 임대료가 형성된 결과로 풀이된다. 소유주 입장에서는 고가에 분양받은 자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임대료를 쉽게 낮추지 못하고, 자영업자들은 고금리와 인건비 부담 속에 이를 감당하지 못해 공실이 장기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 그래픽=챗GPT

상가 시장의 위기 신호는 경매 지표에서 더욱 선명하게 확인된다.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 조사 결과, 지난해 서울에서 경매가 진행된 아파트 상가는 141건으로 전년(100건) 대비 41%나 급증했다. 상가 소유주들이 높은 대출 이자와 공실 부담을 버티지 못해 경매 시장으로 내몰리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매물은 늘어난 반면 매각률(낙찰률)은 20%대에 머물렀다. 이는 경매에 나온 상가 10곳 중 8곳은 주인을 찾지 못해 유찰되고 있다는 뜻이다.

◇ '상가 없는 단지'가 만드는 또 다른 공백

앞으로도 상가 슬림화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오프라인 소비 감소와 인건비 상승으로 상가 입점 업체의 수익성은 낮아진 반면 신축 단지의 꾸준한 공급과 지가 상승에 따른 고분양가가 맞물리며 수급 불균형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상가 축소 흐름이 확산되면서 단지의 생활 인프라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편의점·약국·병원·학원 등 생활 밀착형 시설이 줄어들 경우 입주민의 외부 이동이 늘어나고, 주변 상권으로 수요가 분산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단지 안이 '주거 섬'처럼 고립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권대중 한성대 일반대학원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미분양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상가를 무조건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가 결여된 단지는 장기적으로 주거 선호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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