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집권 1년' 트럼프의 미국, 21C판 조공체제 꿈꾼다

한승동 에디터 2026. 1. 2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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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한론자들 주장과 닮은 그린란드 병합론

“나토 종말 알리는 신호탄, 중·러시아 신났을 것”

“우리 군대로 그린란드 방어” 유럽에 관세 폭탄

미국이 나토국가 공격하는 자가당착 →나토 와해
20일로 재집권 1년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19일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국제공항에서 에어포스 원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6.1.19. AFP 연합뉴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국수주의 우익 정한론자들이 조선을 침략, 합병해야 할 이유로 내세운 것 중의 하나는, 조선을 그대로 두면 러시아 등 다른 강국이 조선을 삼킬 것이고, 그러면 일본이 위험해진다는 주장이었다. 일본의 안전과 동아시아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먼저 조선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 열도를 겨눈 '조선반도 비수(匕首)'론이다. 조선을 그대로 두면 적대적 강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 그 날카로운 칼날이 일본을 찔러 치명타를 입히고 동아시아는 남진하는 러시아나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될 것이니, 선수를 쳐서 먼저 빼앗아야 한다는 것이다. 뻔뻔하고 후안무치한 제국주의 침략 궤변이었다.

"나토 종말 알리는 신호탄, 중국 러시아는 신났을 것"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그린란드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소규모 군대를 파견했거나 파병하겠다는 유럽연합 6개국과 영국, 노르웨이 등 총 8개국에 대해 2월부터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그래도 미국의 그린란드 매수/합병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6월부터 25%로 관세를 올리겠다고 했다.

유럽은 트럼프의 "협박"에 발끈하며 지난해 여름 미국-EU 무역협정 체결 뒤 중단됐던 930억 유로(약 160조 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조기 재가동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리사 낸디 영국 문화부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결정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했고,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미국의 그린란드 침공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어 푸틴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EU 27개 회원국 대사들은 18일 긴급회의를 열었고, 수천명의 그린란드 주민들이 수도 누크에 있는 미국 영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2024년부터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를 맡고 있는 카야 칼라스는 트위터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는 신났을 것"이라며 트럼프 주장을 비꼬았다.
지난 17일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그린란드 국기를 흔들며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에 항의하는 시민들.   가디언  1월 19일

유럽 "우리 군대로 그린란드 지키겠다"

유럽 8개국이 그린란드에 파병하기로 한 것의 의미를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 주장의 근거를 허물기 위한 것이다.

트럼프는 그린란드를 그대로 두면 중국과 러시아가 그린란드를 삼킬 것이고, 그러면 미국, 유럽의 안전과 평화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그린란드에 "개썰매 2대"를 보낸 정도의 덴마크 방위능력과 태세로는 그 땅을 지킬 수 없다고도 했다. 결국 미국이 그린란드를 병합해 직접 통치해야 안전해진다는 얘기다.
'그린란드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 미국대통령으로부터 관세폭탄을 맞은 유럽 8개국의 대미 수출입 비중. 위로부터 독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단위 10억 달러, 2024년.  가디언 1월 19일

미국이 나토 회원국 공격하는 자가당착 →나토 와해

유럽 8개국은 '그렇다면 우리가 군대를 보내 방어체제를 강화하겠다'며 파병했다. 지난 주 그린란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무장관은 J. 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만나 "(트럼프)대통령이 언급한 (유럽 8개국의) 그린란드 주둔 군사력 증강의 목적은 북극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아무 소용 없었다. 미국 언론으로부터 '아첨꾼'이라 지탄받은 밴스 부통령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등 측근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덴마크는 지난 주 자국 군대를 그린란드에 파병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다른 7개 유럽국들도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이 (트럼프가 걱정한다는) 북극 안보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음을 미국에 보여주기 위해 그린란드에 정찰 임무 병력을 파견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트럼프는 돌연 그 8개국이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며 그들 나라가 미국의 그린란드 매수/복속을 인정할 때까지 10~25%의 관세 부과 방침을 공표했다. 이는 트럼프의 진짜 목적이 그린란드 방어가 아니라 그것을 핑계로 한 그린란드 잡아먹기(병합)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솝의 우화 '늑대와 어린 양'에서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죄없는 어린 양을 늑대가 결국 잡아먹고 만다.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압박은 "북대서양조약(나토) 제1조와 제2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라고 바르샤바 동방연구센터의 로버트 프슈첼 선임연구원은 지적했다.

나토 헌장 제1조는 회원국들이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어떤 분쟁도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하고 무력사용을 삼가야 하는 의무를, 제2조는 회원국들이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강화하고 안정과 복지 증진을 통해 평화적 국제관계를 발전시키도록 상호 협력할 것을 명기했다.

이런 조항들에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미국이 무력으로 그린란드 복속을 강행할 경우 나토 헌장 제5조를 위반하게 된다. 5조는 '한 회원국에 대한 무력공격은 모든 회원국들에 대한 공격으로 강주하고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 집단안보 원칙은 나토의 존재 이유이자 핵심 근간이다. 트럼프는 관세공격에도 유럽이 굴복하지 않을 경우 무력점령도 불사한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공격한다면 미국은 제5조에 의거해 자국을 스스로 응징해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나토는 와해된다.

또 하나는 그린란드의 미국 복속을 밀어붙이는 트럼프와 워싱턴의 측근들 최근 행보를 나토 해체 수순으로 보는 것이다.

유럽 공동군대의 파병은 냉전시기인 1949년에 미국 주도로 결성된 이후 유럽 안보의 근간으로 존재해 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결성 70여년 만에 해체되고 있다는 걸 감지한 유럽이 미국없는 대안 집단안보체제 결성을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기 시작한 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유럽은 트럼프가 구상하고 있는 미국-중국-러시아 3대국의 세계 분할지배 구도를 밀어붙일 경우 그것을 거부하고 유럽 독자적인 한 축을 따로 구축해 대항하려 할 것이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이 제시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구상에서도 미국이 유럽보다는 러시아와의 거래를 우선하고 있다는 흔적들이 역력하다. 지난해 4월 본격화한 트럼프의 '관세전쟁' 주적은 중국이었으나, 결과는 오히려 중국에 가장 관대했고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에 더 가혹했다. 올 11월 중간선거 성적에 모든 걸 걸고 있는 트럼프는 미국산 대두(콩) 수입 재개와 희토류 수출규제 조치 연기를 거래조건으로 제시한 중국에 대중국 관세전쟁의 주무기인 첨단 반도체 수출까지 허용했다.

21세기판 조공체제

트럼프의 미국은 유럽과의 집단안보체제를 해체하고 미국 일국이 서반구와 유럽을 직접 지배하는 대국주의 세계 분할지배 구도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미국 제일주의의 국익 추구에 최적의 조건이라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 위해 트럼프가 유럽과 한국, 일본 등 미국의 기존 동맹국들을 속국으로 거느리는 21세기판 조공체제를 꿈꾸고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EU와 한국, 일본이 각기 수천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 첨단기술 제품 생산공장을 미국 영토 안에 짓도록 강제하는 대신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해 주고 관세를 면제해 주는 것은 조공과 책봉, 진상품(조공품)과 답례품(회사품) 등으로 구성되는 근대 이전 중국 중심의 조공무역체제와 닮은 점이 있다.

트럼프의 미국이 일사불란한 시진핑의 권위주의적 중화체제의 '효율성'을 선망하며 그것을 모방하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옛 소련 시절 연방공화국들과 동유럽 국가들을 조공체제로 다시 묶으려는 시도의 일환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린란드를 그대로 두면 중국 러시아가 그 땅을 차지해 미국과 유럽을 찌르는 비수로 활용해 서방의 안전과 평화를 무너뜨릴 것이니 미국이 먼저 그린란드를 차지해야 한다는 논리는 일본 우익 제국주의자들의 조선 침략 논리와 다르지 않다.

20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재집권 1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1년간 "나는 국제법이 필요없다"고 큰소리 친 트럼프의 "힘에 의한 평화"에 기존 국제질서가 회복 불능 수준으로 망가졌다. 기성질서 붕괴는 위기이자 기회다. 기존 대외관계 틀에 시선을 고착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sudohaan@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