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牛)도 도구 쓴다”…가려우면 빗자루로 몸 긁는 ‘천재 소’에 과학계 ‘깜짝’

송혜진 기자 2026. 1. 2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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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의 한입 과학]
입에 문 막대기로 몸을 긁는 소 '베로니카', /Antonio J. Osuna Mascaró

이 암소(牛)의 이름은 베로니카(Veronika). 올해 열세 살이 됐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한 유기농 농장에서 산다. 이곳 농장 주인 비트가르 비겔레(Wiegele)씨는 베로니카를 가축이 아닌 반려동물로 키우고 있다. 베로니카는 초원을 느긋하게 거닐면서 하루를 보내고, 종종 몸이 가려울 땐 혀로 나무 빗자루를 휘감아 가려운 곳을 등이며 배를 박박 긁을 줄도 안다. 이른바 ‘도구’를 쓸 줄 아는 소인 것이다.

베로니카의 등장에 과학계가 술렁이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 수의과대학 앨리스 아우어스페르크 박사팀은 20일 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서 ‘베로니카는 암소가 나무 솔을 유연하게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학계에 따르면 이렇게 도구를 다목적으로 사용하는 비영장류 포유류 사례가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도 도구 쓸 줄 안다

아우어스페르크 박사는 오랫동안 동물의 혁신 행동을 연구해왔다. 그는 똑똑하거나 독특한 각종 반려동물이나 야생동물에 대한 제보를 숱하게 받아왔다. 그러던 중 한 영화 제작자가 찍어 보낸 영상이 박사의 눈길을 끌었다. 암소 베로니카가 낡은 갈퀴로 자신의 등을 긁는 장면이었다. 아우어스페르크 박사는 “그건 분명 남다른 도구 사용의 능력을 보여줄 뿐 아니라, 분명한 목적과 의도가 있는 행동처럼 보였다”고 했다.

아우어스페르크 박사와 박사후 연구원 안티니오 오수나-마스카로는 곧바로 베로니카 주인 비켈레씨에게 연락했고, 베로니카를 만나러 갔다. 비켈레씨는 “베로니카가 이런 행동을 한 게 벌써 10년쯤 됐고, 세월이 흐르면서 막대기를 집어 몸을 긁는 기술도 점점 더 정교해졌다”고 했다.

연구팀은 실험을 진행해봤다. 약 70회에 걸쳐 베로니카 앞에 빗자루를 놓아두고 행동을 관찰했다. 빗자루를 사용한 것은 솔이 달린 쪽은 몸을 긁기 좋고, 손잡이가 있는 쪽은 그렇지 않아서, 베로니카가 어느 쪽을 사용하는지 보기 위함이었다.

연구팀은 베로니카가 총 76회나 이 빗자루를 혀로 감아 들어 올린 뒤, 빗자루를 몸 뒤쪽으로 조준해서 등을 긁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베로니카가 나무 빗자루의 솔 부분과 손잡이 부분을 모두 사용했는데, 각각 다른 용도로 썼다는 사실이었다. 등을 긁을 땐 보통 솔 부분을 썼지만, 젖이나 배처럼 살결이 더 연하고 민감한 부위를 긁을 땐 나무 손잡이를 밀거나 누르듯이 자극해서 썼다. 연구팀은 이를 두고 “‘유연한 도구 사용(flexible tool use)’의 사례”라고 했다. 이런 정도의 도구 사용은 대단히 드물다는 것이다.

동물이 도구를 쓴다는 것은 그만큼 고도의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도구 사용은 침팬지, 코끼리, 까마귀, 돌고래, 문어 등 상대적으로 소수의 동물에게서만 보고돼 왔다. 하나의 도구를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쓰는 사례가 보고된 것은 또한 비영장류 중에선 처음이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소의 똑똑함

아우어스페르크 박사는 “우리는 그동안 소가 이렇게까지 지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함께 연구한 오수나 마스카로 연구원은 이후 나뭇가지로 몸을 긁는 듯한 다른 소와 황소들의 영상을 온라인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베로니카뿐 아니라 다른 소에게도 도구 사용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또한 베로니카가 가축이 아닌 반려동물로 행복하게 살아온 것에도 주목했다. 그 덕분에 연구팀도 베로니카의 똑똑함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아우어스페르크 박사는 “그동안 소들은 대부분 밭을 가는 목적에만 쓰이다 보니 스스로의 인지 능력을 발달시키거나 드러낼 기회 자체를 거의 갖지 못한 것”이라면서 “동물이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환경을 통해 배울 기회를 가진다면 얼마든지 그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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