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 민심 돌아서면 정권이 무너졌다…착잡하게 이란 시위 바라보는 두바이 거주 이란인들 [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
필자가 거주하는 두바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불과 1시간 30분 거리. 페르시아만 건너편 이란이 불타오르고 있다. 최근 테헤란 그랜드 바자르에서 시작된 상인들의 파업은 2주만에 이란 전역 111개 도시로 번졌다. 인권단체 집계로 시위대 사망자는 이미 수백 명을 넘어섰고, 2000명 이상이 체포됐다. 이란 정부는 통신과 인터넷을 끊어버렸다.
중동에 10년 가까이 살면서 이란 관련 뉴스는 늘 접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평소 정치 이야기를 꺼리던 두바이의 이란인 지인들이 먼저 입을 연다.

두바이에서 무역업을 하는 이란인 친구 A씨의 말이다. 그의 가족은 20년 전 두바이로 건너왔다. 고국에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남아 있다. 요즘 그의 전화 통화는 짧아졌다. 인터넷이 끊기면서 연락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세대와 하메네이(이란 최고 종교지도자) 같은 늙은 혁명 세대가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현재 이란은 전체 9000만 인구 중 2030 세대가 절반을 넘는 아주 젊은 나라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인구의 60% 가까이 된다. 이들에게 팔레비 왕조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오히려 혁명 이전의 이란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22년 히잡 시위도, 이번 시위도 이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거리에서 “팔레비는 돌아오라”, 심지어는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까지 터져 나온다. 사자와 태양이 그려진 혁명 이전 깃발을 흔드는 젊은이들의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퍼지고 있다.

“슬프지만 안 변한다. (정부의) 유혈진압밖에 답이 없다고 본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현 체제 지도부 입장에서는 물러서면 끝이다. 본인들이 축출되면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러니 끝까지 간다. 마지막 발악이라는 것이다.
“팔레비 왕조 복귀?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 그냥 지금 체제가 싫은 거다.”
B씨는 시위대가 외치는 “팔레비는 돌아오라”는 구호의 진짜 의미를 그렇게 해석했다. 왕정 복귀가 목표가 아니라, 지금보다 나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이자 현 정권에 대한 거부라는 것이다.
그는 현장 상황이 언론 보도보다 더 참혹하다고 전했다. “언론에 발표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테헤란에 사는 내 친척 형도 이번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진압당해 팔이 부러졌다. 그런데 치료를 못 받고 있다.”
병원도 포화상태에 의료붕괴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그는 말했다. 심지어 최근 이란 당국이 부상당한 시위대가 입원한 병원을 급습해 최루탄을 쏘고 의료진을 폭행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미 국무부는 이를 “명백한 반인도적 범죄”라고 규탄했다.
“그래도 (친척은) 또 나가겠다더라.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A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상인들이 돌아선 게 큰 문제다. 이란에서 바자르는 그냥 물건을 거래하는 시장이 아니다. 경제의 심장이자 정치의 바로미터다.”
지표는 이미 나라가 붕괴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달러 대비 이란 리알화 가치는 지난해 12월 한 달간 20% 폭락했다. 현재 1달러에 147만 리알을 넘어섰다. 2015년 핵 합의 당시 1달러당 3만2000리알이었으니, 10년 만에 화폐 가치가 44분의 1로 쪼그라든 셈이다. 물가상승률은 42%를 넘었고, 식료품 가격은 전년 대비 72% 뛰었다.

“우리처럼 역사도 오래되고 석유도 많고 인구도 많고 땅도 크고 과학도 발전한 나라가 왜 이렇게 못사냐.”
실제로 이란은 세계 2위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4위 원유 매장량을 가진 자원 부국이다. 9000만 인구 대국에 교육열과 과학기술이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중동에서 몇 안 되는 제조업 기반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같은 페르시아만을 끼고 있는 옆나라 아랍에미리트(UAE) 인구는 고작 1000만 명, 이마저도 현지인은 100만 명에 불과하다. 석유 매장량도 이란보다 훨씬 적다. 이란이 찬란한 페르시아 제국을 운영할 때 두바이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그런데 현재 두바이는 세계적인 비즈니스 허브가 됐고, 이란은 국제 제재와 고립 속에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물론 단순 비교는 위험하다. 두바이와 이란은 정치체제도, 외교 노선도, 역사적 맥락도 다르다. 하지만 이란 젊은 세대 입장에서 보면 답답함은 이해가 된다. 누가봐도 우리가 훨씬 더 가진게 많은데 왜 저쪽은 번영을 누리고 우리는 이렇게 힘들까. 그 답답함이 거리로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두바이의 이란인 커뮤니티는 이번 시위를 남다른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희망과 불안이 교차한다. 조금이나마 경제가 좀 나아지고 정치가 안정화되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유혈 진압이 이어지면 가족들이 다칠 수 있다는 불안이 공존한다.
A씨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혁명을 믿었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묻는다. 46년 동안 뭐가 나아졌냐고. 부모 세대도 대답을 못한다.”
중동의 지정학은 복잡하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붕괴, 이스라엘과의 전쟁, 미국의 압박까지 이란을 둘러싼 외부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내부의 분노와 외부의 압력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모르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새해 페르시아만 건너편에서 역사가 움직이고 있다.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john.won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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