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업체 실적 개선 한계…차세대 기술 확보해야 [스페셜리포트]
K배터리 주춤하지만 中 업체 질주
CATL 점유율 갈수록 높아져
문제는 K배터리가 주춤하는 사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이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가 주춤해지자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 기업이 유럽 시장 공략에 힘쓰는 중이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1~10월 27.2%였던 CATL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중국 시장 제외)은 2025년 같은 기간 29.2%로 더 높아졌다. 중국 BYD 점유율 역시 4.1%에서 7.6%로 치솟았다.
이에 비해 LG에너지솔루션 점유율은 같은 기간 24.2%에서 21%로 줄었다. SK온(10.7% → 9.9%), 삼성SDI(9% → 6.6%) 등 국내 빅3 업체 점유율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며 존재감이 약해졌다.
점유율 격차는 더 벌어질 우려가 크다. 줄줄이 계약 취소 사태를 맞는 K배터리 업체와 달리, CATL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 관계를 돈독히 다지는 모습이다. SK온과 결별하면서도 CATL 기술을 빌려 설비를 확장 중인 포드가 대표적이다. 포드는 CATL로부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 라이선스를 받아 미시간주 공장 건설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SK온과 갈라선 포드 켄터키 공장도 CATL 기술을 활용해 ESS 생산시설로 바꾼다는 방침이다.
CATL은 유럽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낸다. 헝가리에 짓는 연산 40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올해 가동할 계획이다. 실적도 날개를 달았다. 2025년 3분기 순이익이 185억4900만위안(약 3조7000억원)을 기록해 전 분기 대비 33.7%, 전년 동기 대비 41.2% 증가했다. CATL은 테슬라, BMW, 폭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해왔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전문위원은 “K배터리 업체의 핵심 시장인 미국과 EU 판매 부진이 뼈아프다”며 “가성비 좋은 중국산 LFP 배터리가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늘려가는 대신 K배터리 업체의 삼원계 배터리 수요는 감소한 것이 결정타”라고 진단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린 K배터리 산업을 보면, 10여년 전 국내 태양광 폴리실리콘 산업이 고사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란 우려도 나온다.
2010년대 초반 국내 태양광 업체는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열풍 속에 수조원대 장기 공급계약을 맺고, 대규모 차입을 통해 대대적인 공장 증설에 나섰다. 하지만 중국의 저가 공세, 글로벌 경기 침체로 폴리실리콘 가격이 폭락하자, 글로벌 고객사들은 위약금을 물거나 파산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잇따라 파기했다. 사실상 중국과의 경쟁에서 패배를 선언한 격이다. 재계 관계자는 “K배터리 업체들은 전기차 캐즘 핑계를 대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독주하는 중국 업체와의 점유율 격차가 벌어지는 점은 위기 요인”이라며 “이대로 가면 K배터리 존재감이 더욱 약해질 우려가 크다”고 귀띔했다.

실적 개선 한계…차세대 기술 확보해야
코너에 내몰린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새 먹거리로 불리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공략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6월 미국 미시간주 공장에서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에 돌입했다. 2027년부터는 국내 오창공장에서도 1GWh 규모 배터리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SK온은 충남 서산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 양산 검증을 끝냈다. 미국 조지아주 공장 일부 생산라인을 LPF 배터리로 바꿔 새해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삼성SDI도 인디애나주 스텔란티스 합작공장 생산라인을 ESS용으로 바꾸는 중이다.
배터리 업체들이 ESS 시장 공략에 나서는 것은 ESS 시장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다. 전기를 미리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ESS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을 위한 핵심 장치로 급부상했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ESS 시장 규모는 2024년 235GWh에서 2035년 618GWh로 2.5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 정부의 투자세액공제(ITC) 정책도 호재다. 올해부터 배터리 원가 중 비(非)중국산 부품 비율이 55%를 넘어야만 최대 30%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ESS 사업자들이 중국산 배터리 대신 한국산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배터리 업계가 ESS로 돌파구를 찾지만 실적 반전을 이끌 정도의 파급력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최문선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위축된 만큼 ESS 수요가 이를 대체해야 하지만, 미국 ESS 시장 성장률은 예상보다 높지 않다”며 “현지 공장 생산능력에 비해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국내 배터리 업체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SS는 전기차 배터리 대비 수익성이 낮고, 계약 기간도 짧은 편이다. 데이터센터 건설 시점에 따라 일시적인 수요가 발생하지만, 전기차 배터리처럼 6~10년 단위의 장기 계약은 흔치 않다. 그만큼 안정적인 매출 확보가 어렵고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 기업에 밀린다는 점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국내 배터리 산업이 글로벌 시장 패권을 되찾기 위해선 주요 설비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한편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적 부진에 위축되는 사이 고성능 차세대 배터리 개발이 지연될 경우, 향후 중국과의 기술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LFP뿐 아니라 리튬망간리치(LMR), 나트륨이온 배터리 같은 차세대 중저가 배터리 개발과 양산을 서둘러야 한다”며 “앞으로 주요 격전지는 이들 신기술 배터리 시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LMR 배터리는 양극재 내 리튬과 망간 함량을 높인 리튬이온 배터리다. 기존 배터리와 비교해 에너지 밀도가 높아 중저가 배터리 시장에서 ‘LFP 배터리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 대비 원가가 낮고, 저온 환경에서 안전성이 높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탈중국 전략을 앞세워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 있다. 황경인 전문위원은 “ESS 외에도 군용 드론, 휴머노이드 로봇 등 고성능 배터리 수요가 높은 미래 산업군을 선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들 산업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분야로, K배터리 업체에 새로운 시장 기회를 열어줄 잠재력이 크다”고 진단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3호 (2026.01.14~01.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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