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정' 사라진 대전비엔날레의 몰락

이성현 기자 2026. 1. 2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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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민국을 열광시킨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의 흥행 공식은 명확했다.

이름을 가린 채 오직 실력으로 증명하려는 '흑수저'의 투지와 모든 것을 이뤘음에도 자신의 명성을 걸고 심판대에 선 '백수저'의 품격이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뒤로하고 불명예 퇴장하는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를 취재하며 마주한 현실은 우리가 열광했던 그 '수저론'의 추악한 변주였다.

지난 1개월 반 동안의 취재 결과, 대전시립미술관은 '흑백요리사'가 보여준 공정한 서바이벌의 장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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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취재1팀 기자

최근 대한민국을 열광시킨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의 흥행 공식은 명확했다. 이름을 가린 채 오직 실력으로 증명하려는 '흑수저'의 투지와 모든 것을 이뤘음에도 자신의 명성을 걸고 심판대에 선 '백수저'의 품격이다. 대중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열광하면서도, 그 바탕에 깔린 '공정함'에 매료됐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뒤로하고 불명예 퇴장하는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를 취재하며 마주한 현실은 우리가 열광했던 그 '수저론'의 추악한 변주였다.

지난 1개월 반 동안의 취재 결과, 대전시립미술관은 '흑백요리사'가 보여준 공정한 서바이벌의 장이 아니었다. 그곳은 특정 인맥이 설계하고, '유전적 배경'이라는 이름의 레드카펫이 깔린 곳이었다.

국내 경력이 전무한 신진 작가가 비엔날레에 발탁, 소장품 매입이라는 특혜를 받는 과정은 흑수저들이 이름 석 자를 찾기 위해 흘린 땀방울을 비웃는 듯했다.

'금수저' 작가를 밀어올린 동력은 실력이 아닌 인적 네트워크였다. 그 끈끈한 연결고리 속에서 공적 전시의 원칙은 난도질당했다. 오직 실력으로 승부하는 '흑수저'의 반란은 이곳에 없었다. 대신 부모의 배경을 실력으로 둔갑시킨 기관장의 "유전적·환경적 배경이 좋아 추천했다"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질 뿐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지역 예술인들의 가슴은 타들어 간다. 지역의 숱한 작가들에게 시립미술관은 꿈의 무대이자, 평생에 걸쳐 도달하고 싶은 지향점이다. 어떤 작업을 내놓아야 이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밤잠을 설치며 고뇌하는 이들에게, 이번 인맥 전시는 그 자체로 거대한 폭력이다.

지역 예술인들이 동경하고 아껴온 미술관이 '유전적 배경'을 운운하며 특정 인맥의 잔칫상으로 전락한 순간, 대전의 예술 생태계는 회생 불가능한 내상을 입었다. 치열한 작가 정신보다 어디에 사는지가, 누구의 아들인지가 공적 전시의 가이드라인이 된다면 어떤 작가가 대전에서 창작의 꿈을 꾸겠는가.

대중들이 흑백요리사에 열광한 이유는 단순히 요리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공정한 기회'를 갈구했기 때문이다. 비엔날레를 폐지하고 간판을 바꾼다고 해서 '인맥 예술'의 오명이 씻기지는 않는다. 부모의 배경이 실력이 되는 미술관은 더 이상 시민의 자부심일 수 없다. 대전시는 무너진 공정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역 예술인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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