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트로트’ 천만 뷰 열풍…음악가들은 속이 타들어간다

강푸른 2026. 1. 2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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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가수 박재범 씨의 노래를 트로트 버전으로 편곡한 AI 커버 음악. 대표 사진 역시 합성 이미지로 제작됐다.


"원곡 멜로디가 생각나지 않는다." "박재범 노후연금까지 챙겨주다니…." "'섹시(sexy)'가 '색시'로 들린다."

생성형 인공지능, AI를 이용해 힙합 가수 박재범 씨의 노래를 트로트풍으로 편곡한 유튜브 커버 영상에 달린 댓글 반응들입니다.
올린 지 1달여 만에 유튜브 조회 수 300만, 인스타그램 조회 수 700만 등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가수 CL 씨 등 다른 K팝 가수들의 트로트 커버도 줄줄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한층 이국적인 인도 풍이나 가스펠 버전 편곡도 등장하는 등 AI 기술에 힘입어 유행으로 번지는 모양새입니다.

트로트풍 '몸매' 편곡 버전을 처음 올린 유튜브 계정 '뽕미더머니'는 영상 설명에서 "기존 곡에서 영감을 받아 트로트 스타일로 재창작한 허구의 편곡 콘텐츠"라고 밝혔습니다.
원본 음원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AI 보컬과 자체 편곡·편집을 통해 제작된 2차 창작물로써 박재범 씨 본인의 음성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실제로 가사를 제외하면, '트로트 몸매'의 가락과 장단에서 원곡 '몸매'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상,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 걸까요?

박재범 씨 본인이 최근 시상식 무대에서 트로트 버전 '몸매' 한 구절을 슬쩍 부르는, 이른바 '샤라웃'(공개 언급)하면서 상황이 유쾌하게 마무리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만일 박 씨 외에 다른 가수들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한다면 이런 AI 커버 곡은 법정에서 저작권 침해로 인정될 소지가 크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입니다. 음악 창작자들의 인격권과 재산권 등을 보호하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역시, 만약 선을 넘는 패러디는 '인격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요. 더 살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프로보노’ 등의 OST를 작곡한 박성일 음악감독이 KBS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표절 시비 등을 따질 때) 멜로디 일부가 비슷하냐, 안 비슷하냐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어요. 하지만 AI가 시작된 시대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죠. '강남 스타일'을 예로 들자면, 그 뒤에 후속으로 만들어지는 음악이 새로운 창작물로 인정받으려면 원곡이 없어도 만들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해요. 반면 원래 '강남 스타일'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노래들이라면 이건 '침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이런 (상황을 다룰) 법안이 전무해요." (박성일 음악감독)

내년이면 전업 음악가로 활동한 지 30년이 된다는 박성일 감독. 우리가 아는 '나의 아저씨', '폭싹 속았수다', '시그널' 등 수많은 유명 시리즈의 OST가 박 감독의 손끝에서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AI와 저작권'을 주제로 박 감독을 인터뷰했을 때, 박 감독은 현업에서 체감하는 위기감이나 우려가 대단히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작곡가 중에서도 자신이 만든 음악이라고 해놓고, AI를 주로 써서 만든 음악을 들려주는 경우가 이미 종종 생기고 있다는 거죠. 이대로 가다간 저연차 작곡가들부터 AI로 대체될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당연히 그게 비용이나 시간에서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AI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박 감독은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음악계는 수년 안에 붕괴할 거라고 진단했습니다. 창작자들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적절한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AI에 원곡을 학습시킬 때 돈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허락 주체가 각 저작권자한테 있다는 거예요. 수십 년 동안 당연하게 보호받았던 권리가 AI라는 기술이 등장했다고 해서 더 이상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거든요. 이제 음악을 열심히 만들 필요가 있겠다고 사람들이 생각할까요? AI를 활용한 사업 노하우에 더 관심을 갖지 않을까요?" (박성일 음악감독)

(왼쪽)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짜깁기한 유튜브 쇼츠. (오른쪽) 같은 음악을 활용한 전 세계 수많은 쇼츠들.

박 감독이 말하는 '사업 노하우'란 유튜브 등에서 쉽게 보이는, 이른바 ' 불펌 쇼츠'를 말합니다. 넷플릭스 같은 원저작자의 허락 없이 인기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영상을 1분 내외로 짜깁기한 이런 영상들에, 원래 드라마 OST가 아닌 AI 음악이 배경으로 삽입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몇 달에 걸쳐 OST를 열심히 작곡하고 녹음한 음악가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수익이, 이런 기형적인 AI 음악 시장에는 분기마다 수십억 원씩 저작권료 명목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게 박 감독의 주장입니다.

"사람들은 그 음악을 들은 적이 없어요. 그냥 드라마 쇼츠를 봤을 뿐이죠. 하지만 실제 음악을 정식 스트리밍으로 한 번 듣는 것과, (쇼츠로) 10초간 보는 것의 저작권료는 동일합니다." (박성일 음악감독)

지난 15일 열린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와 저작권 관련 협회·단체와의 간담회.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제공

'AI 3강' 진출이 목표인 우리 정부는 어떤 입장일까요?

우리나라 인공지능 정책의 사령탑인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지난달 15일 '대한민국 인공지능 행동계획'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는 ‘인공지능 학습 평가 목적의 저작물 활용 및 유통 생태계 활성화’ 항목이 담겨 있었는데, 한국방송협회 등 문화 콘텐츠 분야 창작자·저작자를 대표하는 16개 단체는 AI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편향적 정책이라며 크게 반발했습니다.

결국 양측이 마주 앉은 지난 15일 간담회 자리에서도 정부와 산업계 측은 AI 학습에 사용되는 저작권 보상은 '저렴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콘텐츠 창작 저작권 단체는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맞섰는데요. 양측 입장의 간극만 확인하고 자리는 마무리됐습니다.

AI 행동계획 내용을 어떻게 다듬어 나갈지, 이 둘의 입장 차이를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는 여전히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인 셈이죠. 모레(22일)엔 세계 최초로 인공 지능 관련 규제를 담고 있는 AI 기본법도 시행됩니다. 이 역시 정부는 규제는 최소화하고 시장을 육성하겠다는 방침인데요. 쓰는 건 참 쉬워도, 파생되는 사회 문제를 뜯어 보면 하나도 쉬운 게 없는 게 바로 AI가 아닌가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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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푸른 기자 (strong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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