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우타 고민, 접으셔도 됩니다”… 정교해진 천재와 무서워진 괴물이 뭉쳤다

2024년의 최고 김도영(23)과 2025년의 최고 안현민(23)이 만났다.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대표팀 타선의 핵심이 될 거라는 기대와 함께 2003년생 동갑내기 우타자 두 사람은 사이판에서 함께 땀 흘리고 있다. 야구를 시작한 이후로 김도영과 안현민이 같은 팀에서 뛰는 건 처음이다.
대표팀이 사이판에 캠프를 꾸리고 일주일째인 지난 16일, 김도영과 안현민이 훈련장 한편에 나란히 앉았다. 지난 인연이 그리 깊지는 않지만, 대표팀에서 만나자마자 부쩍 친해졌다. 인천공항 출국장부터 함께 움직였다. 사이판에서도 같은 훈련조로 배치됐다. 서로의 타구를 보며 감탄하고, 그날의 컨디션을 묻고는 한다.
■고교 정상에서 격돌했던 두 사람, 그들의 인연
5년 전 두 사람은 고교야구 정상에서 만났다. 2021년 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김도영의 동성고와 안현민의 마산고가 격돌했다. 승자는 안현민이었다. ‘포수’ 안현민이 결승전 도루만 3개를 기록하며 마산고의 9-3 승리를 이끌었다. 안현민은 당시 대회에서 7도루로 도루상까지 수상했다. 6도루의 김도영을 제쳤다.
2021년 협회장기 우승은 지금까지도 마산고의 유일한 전국대회 우승으로 남아있다. 안현민은 “죽을 때까지 기억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학교의 첫 우승일 뿐 아니라, 이미 ‘천재 타자’로 또래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김도영이 상대였기 때문에 더 의미가 컸다.
안현민은 “(김)도영이는 그냥 천재였다. 그때도 이미 타격이 거의 완성형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정밀해진 것 같다”고 했다. 곁에 앉은 김도영이 고교 3년 동안 결국 우승은 하지 못하고 준우승만 2번 했다며 가볍게 한숨 쉬자 안현민이 한마디를 보탰다. “그래도 프로에서 우승한 도영이가 승자죠.”
인연은 프로에서 다시 극적으로 이어졌다. 2024년 6월20일, 조용히 군 복무를 마친 안현민이 KT로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선발 출장했다. 상대는 공교롭게도 김도영의 KIA였다. 첫 타석에서 안현민은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 후 폭투와 뜬공으로 3루까지 진루했다. 3루수 김도영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군대에서 10㎏ 이상 증량하며 근육으로 몸을 꽉 채운 동갑내기 친구를 향한 감탄 그리고 환영의 인사였다.

■ 2024년의 김도영, 그리고 2025년의 안현민
김도영과 안현민은 1년의 시차를 두고 차례로 폭발했다. 2024년 김도영이 38홈런·40도루로 최우수선수상(MVP)을 차지하며 최고의 타자로 우뚝 섰다. 이듬해 2025년에는 안현민이 불과 112경기만 나가고도 22홈런에 80타점을 기록하며 신인왕과 골든글러브를 석권했다.
안현민은 2024년의 김도영을 돌아보며 “그때는 제가 1군 주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영이가 활약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당연히 나와야 할 퍼포먼스였다. ‘도영이가 이제 제대로 터지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김도영은 지난해 안현민을 두고 “사실 현민이가 그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고 웃었다. 처음에는 ‘반짝 활약’이 아닐까 의심도 했다고 했다. 김도영은 “실제로 붙어보니 전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 덩치가 워낙 크니까 현민이가 타석에 서면 꽉 차 보인다. 3루 강습 타구를 한번 받았는데 무서울 정도로 타구가 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현민이의 활약이 저한테도 강한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다”고 했다.
타석 서면 꽉차보이는 현민이 깜짝 활약…
나에게도 동기부여
부상 후 복귀, 증명해야하는 무대
한국 야구의 시너지 올리겠다
고교 대회선 내가 이겼지만
프로서 우승 경험한 도영이 승자
국제대회 우리가 주축, 책임감 느껴
잘 준비해 자신감 끌어올릴 것
차례로 폭발한 두 사람이 이제는 대표팀 중심 타자로 한껏 기대를 모으고 있다. 좌타에 비해 힘 있는 우타자가 부족하다는 류지현 대표팀 감독의 고민을 한 방에 날린 것도 이 두 사람이다. 국제대회 경쟁력도 이미 입증했다. 안현민이 지난해 11월 일본과 2차례 평가전에서 홈런 2방을 때렸다. 김도영은 2024년 프리미어12에서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하며 3홈런을 쏘아 올렸다.
두 사람은 주위의 기대에 들뜨기보다 ‘내려놓기’를 택했다. 안현민은 “평가전에서 홈런을 쳤다고 자신감이 새로 생긴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지금은 어차피 제로 베이스다. 대회 준비하고, 연습경기 치르면서 대회 자신감까지 끌어올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국제대회에서 새로운 투수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을 것 같다. 처음 보는 투수에게 한 타석 만에 바로 안타를 때리기는 쉽지 않다. 타석에서 플랜을 짜고, 만약 결과가 안 나오더라도 그 다음 타석을 준비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도영은 지난해 햄스트링만 3차례 다쳤다. WBC가 복귀 무대다. 새로운 증명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도영은 “오랜만의 실전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잃을 게 없다는 생각도 한다. 많이 쉬었기 때문에 남들은 WBC에서 막 많은 걸 보여줘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저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다”고 했다. 무조건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나가야 야구도 잘 된다는 걸 김도영은 프로에서 체득했다.
말은 이토록 차분하지만, 준비는 독하게 했다. 류지현 감독은 “사이판 야수 중 제일 앞에 있는 선수가 김도영”이라고 여러 차례 칭찬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몸을 잘 만들어왔다는 이야기다. 안현민은 사이판 입국 첫날 ‘연례행사’ 같은 몸살감기로 고생했지만, 이제는 정상 컨디션을 찾아가는 중이다. 타격 훈련부터 특유의 장타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이들이 말한다 “우리가 한국 야구 새 황금세대”
김도영, 안현민을 비롯한 2003년생 선수들을 두고 ‘새 황금세대’가 등장했다는 말이 나온다. 전설의 ‘92학번 세대’와 ‘82년생 세대’를 이어 ‘03년생 세대’가 당면한 WBC는 물론이고 앞으로 한국 야구를 이끌고 갈 것이라는 기대 섞인 표현이다.
김도영과 안현민은 새 황금세대라는 화려한 수식어에 짓눌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안현민은 “저희가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주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선 선배님들도 그걸 바라실 것 같다. 황금세대라는 말을 듣고 있는 만큼 더 큰 책임감을 느끼면서 야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김도영 역시 각오가 단단하다. 김도영은 “저희 또래 중에 이미 증명을 한 선수도 많고, 새로 증명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친구들도 많다. 그 선수들까지 올라오면 다들 기대하시는 그런 세대가 될 것 같다. 각자 소속팀에서도 상위권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그런 저희가 더 책임감을 느끼고 야구를 한다면 한국 야구에도 더 큰 시너지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오는 21일 사이판 1차 캠프 일정을 모두 마친다. 이후 각자 소속팀 스프링캠프에서 더 훈련하고, 다음 달 15일 일본 오키나와 2차 캠프에서 다시 뭉친다. 3월5일 WBC 개막도 이제 눈앞으로 다가왔다. 김도영, 안현민을 비롯해 대표팀 모두의 목표는 하나다. 계속된 부진의 고리를 끊고, 8강 토너먼트가 열리는 미국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새 황금세대를 이끄는 두 사람의 방망이가 폭발한다면 그 기대 또한 현실이 될 수 있다.
사이판 | 심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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