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주쿠 한복판 '라면 성지'… 한국인의 빨간 맛, 통했다
컵라면 왕국 일본서 봉지 라면 앞세워
신라면툼바, 2025년 히트상품 올라

2025년 12월 9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의 대표 상권인 하라주쿠에서 상점이 밀집한 다케시타 거리에 들어서자 농심이 같은 해 6월 문을 연 팝업스토어(임시매장) 신라면 분식이 나왔다. 매장에 들어가니 신라면, 신라면툼바, 짜파게티, 안성탕면, 너구리 등 농심의 봉지 라면이 매운맛을 떠오르게 하는 빨간색 매대에 진열돼 있었다.
매대 오른쪽엔 봉지 라면을 바로 끓여 먹을 수 있는 조리 기계 네 대가 있었다. 한강 편의점, 무인 라면 매장 등 한국에선 흔한 모습이지만 일본은 아니다. 컵라면을 더 즐기고 봉지라면은 집에서 끓여 먹는 일본 소비자가 보기엔 낯설어서 오히려 신선한 그림이다.
키오스크에서 주문 가능한 토핑도 한국과 사뭇 달랐다. 계란, 치즈, 파, 떡국 떡 등 라면과 찰떡궁합인 토핑에 더해 우유를 고를 수 있었다. 매운맛에 상대적으로 약한 일본 손님을 고려한 배려였다. 조리 기계 반대편에 놓인 TV는 손님 모습을 비췄다. 방문 손님들은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려고 사진을 남겼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자 현지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삼사오오 들어왔다. 이렇게 신라면 분식에서 라면을 먹은 사람은 지난해 11월 기준 3,600명으로 하루 평균 120명 정도 찾았다. 매장에 들어와 사진을 찍는 등 체험만 하고 나간 이들까지 합하면 더 많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하라주쿠에 놀러와 신라면 분식을 방문한 도쿠야마 사라(18)는 신라면, 친구 오시마 쓰바키(17)는 오징어짬뽕을 골라 끓여 먹었다. 도쿠야마는 "매운 음식이 먹고 싶어 들어왔다"며 "신라면은 맛있게 맵고 면이 쫄깃쫄깃해 편의점에서 종종 먹는다"고 말했다.
라면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K푸드를 맨 앞에서 이끌고 있는 품목이다. 라면 수출액을 보면 2025년 1~11월 기준 13억8,200만 달러로 단일 품목 중 가장 많았다. 드라마, 영화 등 K콘텐츠에서 자주 보이는 덕분에 글로벌 소비자에게 빠르게 다가간 라면은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을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을 넘어 세계인의 일상에 서서히 녹아드는 단계다.
일본 외식기업과도 협업, 현지화 속도

농심의 신라면 분식도 K라면을 일본 소비자가 일상 생활에서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제품으로 키우기 위해 시도했다. 농심은 2002년 일본 법인을 세우고 현지 공략에 나섰지만 한계가 있었다. 일본에서 매운맛 라면 시장은 한국처럼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농심에 기회였다. 일본 소비자가 집밥 요리처럼 봉지 라면도 취향에 맞게 조리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공유하기 시작하자 신라면 등이 과거보다 더 많이 노출됐다.
일본에서 소비자 반응을 확인한 농심은 2024년부터 더 공격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 회사는 도쿄, 오사카, 삿포로에서 잇따라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소비자를 만났다. 도쿄 팝업은 열흘 동안 1만3,000명이 방문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연 게 하라주쿠 신라면 분식이다. 도쿄점은 페루 마추픽추점에 이어 두 번째다. 현재 신라면 분식은 3호점인 베트남 호찌민점까지 가동 중이고 올해 중국, 러시아로 확대할 계획이다.
농심은 일본 각지에서 매장 350여 개를 갖고 있는 현지 야키니쿠 프랜차이즈 야키니쿠킹 등 외식기업과도 뭉치고 있다. 무한리필 고깃집인 야키니쿠킹 매장에서 신라면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형태로 2025년 상반기에 협업을 진행한 두 달 동안 35만 식을 매장 손님들이 즐겼다. 아울러 일본을 겨냥한 제품 '쫄깃한 너구리'도 지난해 10월 출시했다. 해산물 국물을 살리고 매운맛을 줄인 라면이다.
신라면 툼바는 닛케이 트렌디가 발표한 '2025년 히트 상품 베스트30'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 유력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사가 발행하는 월간지인 닛케이 트렌디는 매년 히트 상품 베스트30을 공개한다. 한국 라면이 이 지표 순위권에 든 건 처음이다. 닛케이 트렌디는 신라면 툼바를 "인스턴트 라면 왕국인 일본에서도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끈 제품"으로 평가했다. 신라면 툼바가 내세운 매콤한 크림맛 콘셉트가 일본 소비자에게 통했다는 분석이다.
일본 시장 호조에 힘입어 농심의 현지 법인 매출은 2020년 723억 원에서 2024년 1,064억 원으로 커졌다. 2025년 상반기에도 역대 가장 빠른 속도인 65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김대하 농심 일본 법인장은 "매운맛 라면은 일본 라면 시장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며 "현지 맞춤형 제품, 팝업스토어 등을 통해 농심 라면을 계속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박경담 기자 wall@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전국 공항 15곳 중 9곳 적자인데 10개 더?... 선거 앞두고 불붙는 공항 신설 경쟁 | 한국일보
- “혹시 반명이세요?” 이재명 대통령 기습 질문… 정청래 대표의 답은? | 한국일보
- 하루아침에 사라진 22년 다닌 직장…주3회 신장 투석하면서도 떠나지 못했다 | 한국일보
- [단독] 20대 마라톤 유망주 왜 죽어야 했나… '가족여행' 약속은 마지막 말이 됐다 | 한국일보
- 승무원들, 극한 한파에 왜 얇게 입고 출근하는지 아세요? | 한국일보
- 20년 청와대 요리사 "DJ는 대식가, 노무현은 라면 직접 끓여" | 한국일보
- "日 잃어버린 세대와 비슷"고시원살이 청년, 쑥 늘어난 까닭 | 한국일보
- "피자라도 보내라" 이 대통령 특급 칭찬 경찰관… 포상금 기부 미담까지 | 한국일보
- [단독] 이혜훈 장관 지명 직전… 아들에 27개월 치 월세 한 번에 받아 | 한국일보
- '영포티'에 英BBC도 주목… "나이가 위계인 한국, '윗사람 조롱'인 셈"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