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공항 비행기 한 대도 못 채우는데...지방공항에 수십조 쓰려는 이유
가덕도·대구경북 통합·새만금 등 8곳 추진
곳곳 제동에도 지방선거 앞두고 다시 '열기'

4만5,157명.
지난해 1~11월 양양국제공항 이용객 수다. 하루 135명꼴로, 단거리 노선에 투입되는 작은 항공기(B737-8·150석) 한 대도 채우지 못하는 규모다. 양양국제공항은 11개월 동안 182억 원의 손실을 냈다. 10년간 누적 적자가 1,500억 원에 육박하면서 ‘만성 적자 공항’ 꼬리표를 달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28년 춘천-속초(양양) 동서고속화철도가 개통하면 그 운명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서울과 속초가 1시간 30분 거리로 좁혀진다.
인천국제공항 외에 한국공항공사가 관리하는 전국 14개 공항 중 9곳이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1월 무안국제공항은 222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여수공항도 같은 기간 152억 원 손실을 냈다. 울산공항과 포항경주공항도 각각 150억 원, 125억 원 역성장했다. 한국공항공사의 5년간(2020~2024년) 누적 당기순손실은 8,329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상반기 손실만 575억 원이 넘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공항 적자에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신공항 사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신설 추진 또는 검토 중인 지방 공항은 부산 가덕도신공항, 제주 제2공항,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새만금신공항, 울릉공항, 흑산공항, 백령공항, 서산공항 등 모두 8곳. 아직 불씨가 꺼지지 않은 경기국제공항(수원)과 포천공항까지 더하면 총 10곳에 이른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밀고 있는 신공항 8개 건설에 드는 사업비만 24조 원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은 19일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 사업자 선정을 위한 2차 입찰 공고를 냈다. 16일 1차 입찰에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단독 응찰해 유찰됐다. 2차 입찰까지 유찰되면 단독 응찰한 컨소시엄을 대상으로 수의 계약을 진행할 공산이 크다. 가덕도신공항은 2035년 6월 개항을 목표로 추진됐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공사기간을 2029년으로 앞당기자 우선협상대상자였던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사업을 포기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가덕도신공항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경제성과 안전성 문제로 두 차례나 백지화됐다.
이날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은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이번 재입찰은 정상적인 경쟁을 전제로 한 절차가 아니다"라며 "처음부터 유찰을 설계하고 특정 컨소시엄과 수의계약을 하기 위해 짜여진 수순을 밟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도 가덕도신공항 사업이 안전성과 기술적인 면에서 감당 불가능한 사업이라 판단해 (입찰에서) 빠졌다"며 가덕도신공항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만성 적자에도 불구하고 지방 공항 신설이 탄력을 받는 데는 공항이 있어야 지역이 발전한다는 지역 논리가 힘을 얻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경제성 검증을 소홀히 한 채 정치 논리로 공항 건설을 밀어붙이면 결국 피해는 지역 주민에게 간다”며 “항공사들은 지금도 지방 공항에서 비행기를 빼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적지 않은 지자체가 승객 부족으로 발생한 항공사 손실을 보조금으로 메워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손해를 보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비행기를 띄우는 곳이 많다는 이야기다.
다수의 지방 공항은 항공사나 공항공사 입장에서 수익이 되는 국제선 유치도 쉽지 않다. 정기편 없이 부정기편에 의존하는 지방 공항도 적지 않다. 2028년 개항하는 울릉공항에도 비행기를 띄우겠다고 나서는 항공사가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국토부는 지난달 10일 발표한 ‘항공정책 기본계획'에서 다수 도서 공항이 개항할 예정이나, 개항 성공과 안정 운영을 위한 지원 방안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돈 먹는 하마' 보고도... 식지 않는 신공항 열기

그럼에도 신공항 건설을 향한 지역의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법원 판결로 빨간불이 켜진 새만금신공항 건설 사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은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고시가 위법하다며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새만금신공항은 2019년 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받고, 2029년 개항을 목표로 총 사업비 8,000억 원이 투입된 사업이다. 법원은 새만금신공항의 연간 예상 조류 충돌 횟수가 최대 45.9회로, 무안국제공항(약 0.07회)보다 650배 많게 평가됐지만, 입지 선정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공항 기본계획을 취소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새만금신공항은 군산공항 바로 옆에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데, 신설되면 군산공항은 물론 차량으로 1시간 10분 거리인 무안국제공항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전북도는 “경제적 논리로 사업 당위성을 판단할 경우 지역 소멸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며 “전북의 낮은 공항 접근성 해소를 위해 신공항은 필수”라는 입장이다.
충남도가 추진하는 서산신공항도 비슷한 상황이다. 서산신공항은 2023년 예타에서 탈락해 사업이 사실상 멈췄지만, 기본계획 수립 단계에서 공항 건설 사업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충남도 관계자는 “기존 공군 비행장 활주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입로와 터미널 정도만 지으면 된다”며 “2028년 운항 개시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비가 500억 원 이하로 확정될 경우 충남도는 예타를 생략하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국내선 전용 공항이지만, 우주항공청 개청 등을 이유로 국제공항 승격이 추진되고 있는 경남 사천공항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바람을 타고 있다. 지역 주민 정모(62)씨는 "우주항공청을 중심으로 세계 5대 우주강국을 목표로 하는 만큼 사천공항이 국제공항으로 승격되면 좋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수요가 없으면 적자가 날 텐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우려했다. 사천공항에서 동쪽 김해국제공항까지는 차량으로 1시간 10분, 서쪽 여수공항까지는 50분이 소요된다.
"양적 성장은 이제 그만, 질적 성장 집중해야"

전문가들은 '공항 만능주의'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항이 들어서면 지역이 발전할 것이라는 낙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센터장은 "시장에 의해 좌우되는 항공산업 특성상 공항이 늘어난다고 해서 항공기 숫자나 운행 편수, 여객 수요가 함께 증가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며 "정치적 결정보다 경제적 타당성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79명이 희생된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계기로 국내 공항의 질적 성장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일단 짓고 보는 정책에서 벗어나 기존 공항 기반시설 안전성 강화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의 실장급 인사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계기로 지방에선 집과 가까운 공항보다는, 좀 멀어도 규모가 있는 공항, 비행기가 자주 뜨고 내리는 공항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며 "경제적 타당성과 함께 향후 정책엔 국민의 이 같은 인식에 변화에 따른 수요를 담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도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0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자체는 혜택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며 공항 신설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강 실장은 공항 건설에 따른 혜택은 지자체가 누리면서도 운영상 책임은 지지 않는 점을 들어 지방 공항 정책 기조 변화를 예고했다. 그러나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합리적 판단보다는 표심을 자극하는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부산= 권경훈 기자 werther@hankookilbo.com
군산= 김혜지 기자 foin@hankookilbo.com
울릉= 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서산= 윤형권 기자 yhknews@hankookilbo.com
세종=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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