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사라진 22년 직장… 신장 투석하면서도 떠나지 못했다
지난해 7월 하청노조 만든 뒤 120여 명 해고
20년간 고용승계 이뤄졌지만 하루아침 실직
"주5일 야근해도 급여는 200만 원 남짓"
"연차 제도 없어 아파도 쉬지 못해"
사측, 희망퇴직·다른 지역 재입사 제안했지만
하청노조 "일하던 곳에서 일하게 해달라"

2026년 1월 1일. 한국GM 세종물류센터 하청업체 노동자 120여 명에게는 새해의 희망 대신 절망이 덮친 날이다. 사측으로부터 집단해고당했기 때문이다. 22년 동안 이 회사에 다니며 아이 둘을 키워낸 '왕고참'부터 결혼과 내 집 마련을 꿈꾸던 입사 2년 차 막내까지 하루아침에 차가운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 결국 이들은 일터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여야 지도부와 만나 GM 집단해고 사태 해결을 위해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뜻을 모으면서 이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조 세우자 계약이 해지됐다"

세종시의 한국GM 세종물류센터는 회사가 생산한 자동차 부품을 포장, 분류해 개별 정비소나 고객사로 보내는 업무를 한다. 물류센터에는 한국GM 본사 소속 직원도 있지만 일감을 위탁받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많다. 이번에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1차 하청업체 '우진물류' 소속이다.
14일 세종물류센터에서 만난 김용태(34) 금속노조 GM부품물류지회장은 "20년 넘는 시간 동안 하청업체는 바뀌어도 노동자들의 고용은 승계돼왔다"며 "그런데 지난해 노조가 만들어진 뒤로 집단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한국GM의 1차 하청업체는 2003년 범진산업을 시작으로 우진물류, 세종물류, 태경테크노, 현대코리아를 거쳐 2017년 7월 다시 우진물류로 바뀌었지만 노동자들은 바뀌지 않고 계속 같은 공간에서 일해왔다.
문제는 지난해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김 지회장은 "노조 결성 소식이 퍼지자 회사가 '당신이 직원들을 책임질 수 있느냐' '애 있는 사람들은 어쩌려고 이러느냐' '노조를 만들면 다른 업체가 하청을 맡게 된다'는 등의 압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주일에 다섯 번씩 끌려가 이런 압박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노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노동 여건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이다. 한국GM 세종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 기본급은 158만 원(지난해 기준). 기본급에 경력이 반영되지 않아 신입사원과 20년 차 직원이 같았다. 하지만 매일 야근이 돌아가는 등 노동 강도는 고됐다. 김 지회장은 "근로계약서에는 오전 8시까지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일하도록 돼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며 "주 5일 출근을 하면 닷새 내내 저녁 7~8시까지 야근을 했다"고 말했다.
야근을 하고도 매달 손에 쥐는 돈은 기본급에 지게차 수당 3만 원, 야근 수당을 모두 합쳐도 200만~230만 원 남짓이었다. 야근을 할지 말지 선택할 수도 없었지만 야근을 하지 않으면 급여가 지나치게 쪼그라든다는 게 김 지회장의 설명이다.
'쉴 권리'도 문제였다. 보통 직장인은 1년에 15일씩 연차가 부여되지만, 세종물류센터 하청노동자들은 한 달을 일하면 연차가 하루 생기는 월차 제도만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 지회장은 "월차 제도가 적용되다 보니 1월에 몸이 아파 출근을 못 하면 급여가 총 20만 원 넘게 삭감된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5일 노조를 만들었다. 그러자 회사는 노동자들이 속했던 1차 하청업체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새해 첫날 실직자가 된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노조가 반발하자 회사는 희망퇴직을 신청하거나 입사원서를 다시 내면 일부 노동자를 선별해 인천 부평 등에 있는 제조 라인으로 소속을 바꿔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생활 터전을 통째로 옮기고 하는 일도 물류 업무에서 제조업으로 갑자기 바꾸라는 건 회사를 나가라는 뜻"이라며 "일하던 장소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물류센터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GM은 2018년 경영위기 때 산업은행으로부터 공적자금 8,100억 원을 지원받은 회사다. 그럼에도 고용 안정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노조 측은 비판했다. 김 지회장은 "GM은 창원·제주·인천 물류센터를 폐쇄하고 하청 노동자를 대량 해고하고 있다"며 "공적자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감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하청노동자 대량 해고가 오는 3월부터 시행되는 노조법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노란봉투법은 하청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했다.

주3회 신장 투석하면서도 버티는 이유는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에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다. 2005년 입사한 김종진(53)씨는 회사에 다니며 아들과 딸을 키웠다. 22년 동안 3, 4번 하청업체가 바뀌었지만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은 적은 없었다. 집단해고 이후 물류센터에서 농성 중인 그는 몸이 좋지 않아 일주일에 3번 신장투석을 해야 한다. 김씨는 "매주 월, 수, 금 투석하는데 한 번 하면 4시간 정도 걸린다. 투석이 끝나면 다시 물류센터로 온다"며 "성치 않은 몸으로 차가운 바닥에서 노숙을 해야 하니 가족들의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그는 '왜 신장투석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농성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내 고향은 전북 군산이지만 아이들 고향은 세종이다. 이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운 특별한 곳"이라며 "내 청춘을 다 바친 곳에서 억울하게 쫓겨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세종물류센터에서 '인생 2막'을 꿈꾸며 2023년 입사한 길준호(43)씨는 입사 2년이 되기 전 해고 통보를 받았다. 길씨는 "갑자기 해고를 당해 생계가 막막하다"며 "이렇게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은 억울하다. 하루빨리 현장으로 복귀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이 외에도 17세 때 방직공장 여공으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세종물류센터에 자리 잡았던 여성노동자는 정년을 1년 앞두고 일자리를 잃었고, 회사에 다니며 결혼과 내 집 마련을 꿈꾸던 막내 노동자도 해고 뒤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자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고용승계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지회장은 "우리가 회사에서 해고된 이유는 그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마음에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장기적으로 물류센터 노동자 신분이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하지만 지금 당장 원하는 건 우리가 일하던 곳에서 하던 일을 다시 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하청노동자가 불합리한 이유로 해고되지 않도록 고용승계 관련 제도 역시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GM은 "노조 설립과 무관하게 우진물류와 계약은 종료 예정이었다"며 노조 설립 때문에 집단해고한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이번 문제는 협력사 간 고용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로 한국GM은 직접 고용주가 아니다"라며 "고용승계 등 하청업체 노동자 고용문제는 한국GM이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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