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마두로 잡았지만 물가는 못 잡아…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들다”

마이애미·도럴/박국희 특파원 2026. 1. 20.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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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1년]
[2] 흔들리는 ‘텃밭’ 플로리다
지난 3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 소식을 들은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하는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왼쪽). 지난 17일 마이애미 도심 주택가에서 주민들이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료로 나눠주는 생필품과 식료품을 받아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다(오른쪽). /EPA 연합뉴스·박국희 특파원

지난 16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인근 도럴(Doral)의 베네수엘라 식당 ‘엘 아레파조(El Arepazo)’. 최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축출 사태를 반영하듯, 입구에는 “감사합니다, 트럼프 대통령!(¡GRACIAS, PRESIDENTE TRUMP!)”이라고 적힌 스페인어 팻말이 붙어 있었다.

성조기와 베네수엘라 국기를 매단 차량에서 내린 70대 쿠바인 호르헤 메사씨는 “독재자 타도는 우리 쿠바인들의 꿈이기도 하다”며 “트럼프가 아주 일을 잘하고 있다. 쿠바에도 곧 같은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식당에서 만난 베네수엘라 의사 출신 로헬리오 보스칸씨 역시 “바이든 정부 때는 베네수엘라가 마약과 범죄로 미국을 오염시켜도 방치했지만, 트럼프 정부 들어 정의가 부활하고 있다”며 “마두로를 체포해 베네수엘라를 해방시킨 트럼프는 우리의 영웅”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대외 압박 정책이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 많이 살아 ‘도럴수엘라(Doralzuela)’로 불리는 이곳에서 확실한 효능감을 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럴과 마이애미시(市) 등을 포함한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인구의 약 70%는 히스패닉(중남미계 이민자)이다. 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플로리다를 붉은색(공화당 상징색)으로 물들일 수 있게 한 핵심 동력이었다.

미국 플로리다 도럴에 있는 한 베네수엘라 식당(왼쪽). 한 쿠바계 주민은 성조기와 베네수엘라 국기를 차량 양쪽에 꽂은 채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에는 쿠바를 해방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식당 내부에는 스페인어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오른쪽). /박국희 특파원

하지만 차로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히스패닉 주민들이 즐겨 찾는 ‘세다노스(Sedano’s) 마켓’ 풍경은 사뭇 달랐다. 화려한 ‘트럼프 내셔널 도럴’ 골프 리조트 인근에 위치한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의 화제는 정치적 승리가 아니라 트럼프 2기 1년간 더 악화된 장바구니 물가였다.

카트를 밀던 60대 쿠바계 이민자 마리아 곤잘레스씨는 과자 한 봉지를 들었다 놨다 반복하더니 “마두로 축출은 환영하지만, 과자 한 봉지가 여전히 5달러(약 7000원)를 넘는 현실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공산당이 싫어 공화당을 찍었지만, 계산대 앞에 서면 여전히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이념과 현실의 괴리는 마이애미 도심 근처 오버타운(Overtown) 지역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17일 오전 한 민간 단체가 식료품과 생필품을 무료로 나눠주는 현장에는 수백 명이 길게 줄을 섰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한 여성은 “트럼프나 마두로를 생각할 겨를도 없다. 당장 먹고사는 게 너무 힘들다”며 “물가가 내려갈 기미가 안 보인다”고 토로했다. 현장 곳곳에서는 새치기를 하는 주민들끼리 고성이 오가고 경찰이 개입해야 할 만큼 분위기가 격앙됐다. 마이애미의 쿠바계 밀집 지역 ‘리틀 아바나’ 등 주택가 곳곳에는 치솟는 주택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한 집주인들이 차고나 방 한 칸을 쪼개 세를 놓는 ‘이피션시(Efficiency·개조형 셋방)’가 생존 수단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지난 16일 미국 쿠바계 이민자들의 최대 도시인 마이애미 '리틀 하바나' 도미노 파크에서 쿠바계 노인들이 도미노 게임을 하고 있다(왼쪽). 지난달 있었던 마이애미 시장 선거에서는 반공·보수 성향의 히스패닉 공화당 지지층이 대거 투표에 나서지 않으면서 28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소속 시장이 탄생했다. 지난 17일 마이애미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초고층 빌딩들을 배경으로 주민들이 무료 생필품과 음식을 받아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다(가운데·오른쪽). /박국희 특파원

2023년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밀 문서 유출 혐의로 기소된 직후 법원 청사를 빠져나와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지지자들이 모여 있던 마이애미의 쿠바 식당 ‘베르사유(Versailles)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날 이곳에서 만난 카를로스 디아즈씨는 “지난 1년 새 집 보험료가 2배 가까이 뛰었다”며 “트럼프가 마두로는 잡았을지 몰라도 서민 물가는 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민심 변화는 선거 결과로도 확인된다. 지난달 9일 마이애미 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59%)가 공화당 후보(40%)를 19%포인트 차로 눌렀다. 공화당이 마이애미 시장을 빼앗긴 것은 28년 만의 일이다. 2024년 대선 때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트럼프 득표율이 55%였던 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지지세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이 같은 경고등은 플로리다 밖에서도 켜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버지니아와 뉴저지 주지사, 뉴욕 시장 선거 등에서 공화당은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취임 1년도 되기 전에 여당이 텃밭과 경합주에서 연패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래픽=이진영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8~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유권자 53%는 “트럼프가 불필요한 외교 문제에 집중하면서 경제를 희생시키고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 경제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37%(AP조사)까지 떨어졌다. 현지 정가에서는 마이애미의 반란을 ‘트럼프 2기’ 국정 동력은 물론,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 향방을 가를 오는 11월 중간선거의 예고편으로 보고 있다. 미국 선거를 좌우하는 경제·물가 이슈에서 트럼프가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공화당 핵심 지지 기반인 백인 노동자층과 히스패닉 연대가 이탈해 중간선거 참패와 조기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애미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쉐브린 존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은 본지 인터뷰에서 “히스패닉 유권자들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주거비와 보험료 등 생활비 인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며 “이번 마이애미 시장 선거 결과가 올해 중간선거에서 전국적 현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공화당 아나 마리아 로드리게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은 “경제 문제가 선거 패배에 일조한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한 번의 시장 선거로 오랫동안 쌓여온 공화당과 플로리다 유권자의 정치 연대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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