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곳 발로 뛰어 쓴 ‘떡볶이 대동여지도’

박진성 기자 2026. 1. 2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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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네 맛집 찾은 ‘떡볶이 도감’
얼굴·이름 숨기고 맛본 114곳 엄선
학교 앞 등 따로 분류… 사진 1348장
서울 마포구 '신수동 국물떡볶이'/대모험서울

서울 마포의 ‘신수동 국물떡볶이’는 간판도 없는 작은 가게인데 동네 떡볶이 애호가들로 북적인다. 대문이 파란색이라 동네 주민들은 ‘파란 대문 떡볶이’로 부른다. 젓가락도 포크도 없이 숟가락과 가위만 나온다. 떡·어묵·계란을 사정없이 자른 뒤 떠먹으면 된다. 빨간 국물 빛깔에 비해 맛이 슴슴한데, 먹을수록 향이 깊어져 별명은 ‘떡볶이계의 평양냉면’. 로컬 맛집 중 하나다.

요즘 인스타그램·블로그 같은 소셜미디어 속 범람하는 ‘떡볶이 맛집’은 광고로 얼룩져 있다. 적당히 많이 검색되는 가게를 간 뒤 맛집이라고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은 차고 넘친다. ‘맛집’ 전문 매체도 여러 음식 중 하나로 소비할 뿐, 오로지 떡볶이만 깊게 파고 들어 분석하는 경우는 드물다.

잠원떡볶이/대모험서울

‘대모험서울 떡볶이 도감’은 디지털 시대의 부박한 방법론을 거부한다. 힘들어도 옛 방식을 택했다. 서울 전역의 ‘로컬 떡볶이 맛집’ 백여 곳을 1년 반 동안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책으로 엮었다. 요즘 유명한 이른바 ‘파워블로거’나 ‘인플루언서’들과 달리 광고비는커녕 떡볶이 값도 꼬박꼬박 다 냈다. ‘나만 알고 싶은’ 동네 떡볶이 가게들의 소소한 역사와 맛을 담았다. 가게 사장과 일일이 인터뷰해 가며 메뉴 재료와 특징 등도 썼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1348장이 책에 빼곡하다.

저자 ‘노익’은 전직 게임 개발자, ‘슈니’는 전직 기업 홍보 직원이다. 재미없는 직장 생활 대신 진짜 하고 싶은 꿈을 좇아 이번 책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노익은 “지도 앱에 저장된 장소만 5000개가 넘을 만큼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는 걸 좋아했다”고 했다. 슈니는 “명동 위주로만 다니는 외국인들에게 서울 구석구석 ‘찐로컬’의 맛을 전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떡볶이를 소재로 꼽은 이유는 “진짜 한국인의 작은 일상을 보여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앞으로 일일이 발로 뛰어 직접 확인해야 할 곳이 많다”며 한사코 얼굴과 신상 공개를 거부했다.

대모험서울 떡볶이도감 표지

이 책에 수록된 떡볶이집은 총 114곳. 여러 단계를 거쳐 엄선된 곳들이다. 우선 서울 1만여 개 떡볶이집 중 체인점을 싹 뺐다. 떡볶이가 메인이 아닌 곳도 제외했다. 그중 업력이 꽤 되면서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만 추려내니 800곳. 여기서부터 기존 떡볶이 관련 서적, 유튜브, 동네 커뮤니티 등을 통해 검증하고 주민들의 반응을 확인해 추린 곳이 130곳이다. 현장 답사를 거쳐 치열한 논의 끝에 책에 114곳을 담았다.

책을 쓰며 가장 고민한 지점은 목차 구성이다. 동네별로 묶는 쉬운 방법은 버렸다. 대신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는 ‘학교 앞 떡볶이’, 북적이는 시장통에서만 먹을 수 있는 ‘시장 떡볶이’, 옛 맛을 간직하고 있는 ‘타임머신 떡볶이’ 등 11개 분류 기준을 만들어 목차를 짰다.

그래픽=백형선

저자들은 ‘세계관 최강 떡볶이’ 챕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가게 사장의 철학과 신념이 강한 7곳을 추렸다. 예컨대 2009년 광진구 중곡제일시장에 문을 연 ‘콩이네’는 튀김을 주문하면 10~15분은 기다려야 나온다. 속도를 포기하는 대신 가장 맛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팽이버섯 튀김, 샌드위치 같은 식빵 튀김, 어묵으로 돌돌 만 야채튀김 등 개성이 가득하다. 고춧가루·고추장을 숙성시킨 비법장에 멸치·건새우·진미채 등을 갈아 넣어 만든 구수한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면 좋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만 아는 ‘숨은 성지 떡볶이’ 챕터도 포인트다. 숭실대 앞 ‘손칼국수’는 상호와 달리 대학생들에겐 떡볶이 맛집으로 통한다. 수북한 양배추로 낸 단맛의 즉석 떡볶이가 대표 메뉴. 칼국수집답게 칼국수 사리를 추가해서 먹을 수 있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앞 ‘성화치킨호프’는 점심 시간이면 즉석 떡볶이를 먹고 있는 직장인들로 꽉 차 있다. 경쟁 떡볶이집이 밀집된 곳을 다룬 ‘격전지 떡볶이’ 챕터엔 국물·떡 분석표도 그렸다. 예컨대 명지대 앞엔 카레 베이스(엄마손 떡볶이), 고춧가루 베이스(이정희 떡볶이), 간장 베이스(순이네 고릴라 떡볶이) 등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저자들은 앞으로 서울의 동네 카페·빵집, 작은 공원 등 ‘찐 로컬’을 보여줄 수 있는 시리즈를 계속 만들겠다고 했다.

애플하우스/대모험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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