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금융 외쳤지만…높은 연체율·정책 지연에 기업대출 ‘역성장’
중기 연체 급증에 위험관리강화
원화값 폭락에 기업대출여력 ‘뚝’
당국, 규제완화 명확한 지침 못내놔

19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6일까지 기업대출 잔액은 전월 말 대비 2898억원이나 역성장했다. 지난달 5대 은행 기업대출 잔액이 4조7393억원 줄어들었지만, 이는 연말 결산을 앞두고 부채 등을 정리하는 기업들의 상황과 맞물린 계절적 요인이 컸다. 작년 1월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5조1001억원 늘었고, 재작년에도 2조8311억원이 증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은행의 이자이익은 평균 잔액에 마진을 곱해 산출하는데, 한 해 이자이익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연초에 되도록 대출 잔액을 높이는 게 유리하다. 1월에 12억원을 확보하면 평균 잔액은 12억원으로 잡히지만, 연말인 12월의 12억원은 12개월로 나누기에 1억원만 평균으로 반영되어서다.
이에 1월에는 은행의 기업대출이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이례적으로 연초에 기업대출 잔액이 줄어들었다. 이재명 정부가 생산적금융을 핵심 정책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예상보다 기업에 대한 대출과 투자 확대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연초 5대 은행의 기업대출이 대폭 줄어든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가 생산적금융을 강조하며 기업에 대한 대출과 투자 확대를 독려하고 있음에도 생산적금융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생산적금융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주요인으로는 △중소기업대출 연체율 증가 △정부의 위험가중치(RW) 규제 완화 지연 △출렁이는 환율로 인한 대출 여력 부족 등이 거론된다.
실제 기업대출 연체율은 뚜렷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기업대출 연체율 평균은 지난해 12월 0.33%에서 2025년 12월 0.35%로 상승했다.
중소기업대출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4대 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연체율 평균은 2023년 12월 0.31%에서 2024년 12월 0.41%로 뛰었고, 2025년 12월에는 0.50%까지 상승했다. 중소기업 특화은행인 IBK기업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작년 3분기 1.03%로 2010년 3분기 이후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연체율이 높아지면 은행들은 대출 확대보다 리스크 관리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대출 문턱을 높이고 심사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안정적으로 돈을 상환할 수 있는 기업’만 제한적으로 지원하는 구조로 재편되는 것이다. 또한 기업 부실 가능성이 커질수록 손실 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하고, 이는 은행들의 수익성 악화로 직결돼 다시 대출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기업 투자에 대한 RW 규제도 생산적금융의 발목을 잡고 있다. RW는 높을수록 은행의 손실 흡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CET1·보통주자본 비율)에 악영향을 준다. RW가 높아지면 CET1 비율이 낮아져 은행의 부담이 확 커지는 구조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 생산적금융 활성화를 위해 은행이 비상장 주식에 투자하면 적용되는 RW를 400%에서 250%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금융감독원 시행세칙이 개정되지 못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발표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시행 방안이 확정되지 못하면서 현장에서 혼선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은행의 정책펀드 투자에 대한 RW 규제도 마찬가지다. 앞서 당국은 은행이 정책펀드에 투자할 때 RW를 100%만 적용하는 특례 요건을 명확히 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다. 이에 은행은 정책펀드 투자 시 RW 100% 요건을 적용받을 수 있는지 일일이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다. 투자할 때마다 당국에 입장을 물어야 해 빠른 의사 결정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불안정한 환율도 은행권이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을 주저하는 요소다. 금융계에 따르면 원화값이 10원 떨어질 때 4대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은 0.01~0.03%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ET1 비율 하락은 은행권의 가용 자본 여력을 줄이는 효과를 불러온다. 원화값 추락과 환율 변동성 확대가 장기화되면 은행들이 기업 관련 대출 취급을 섣불리 늘리기 어렵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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