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젠지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극장 대신 야구장·팝업스토어 가는 Z세대

내가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있던 1980년대 후반, 명절 성수기를 맞아 극장에 걸린 영화를 보러 갈라치면 아버지가 꾸짖던 게 기억난다. 대부분 일종의 봉건적 사고방식에서 발로된 꾸짖음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최소한 한 세기 이상의 시간 동안 ‘킬링타임’이라는 자리를 점유해왔다. X세대인 난 소싯적 여자 친구와 ‘타이타닉’을 보기 위해 암표를 사기도 했고, 혼자 어두운 극장에 웅크리고 앉아 스크린 속 장면들을 동경했던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히 말해 영화를 보는 것 말고는 딱히 시간을 보내며 놀 만한 유흥도 없었던 것 같다. 혼자든 둘이든, 여럿이든 간에 오후쯤 영화 하나 정도는 봐야 해질 무렵의 저녁 식사와 술 자리로 여흥이 자연스레 이어졌으니 말이다.

사실 ‘극장 장사가 좀 된다’고 할라치면 적어도 천만 관객 동원 한국 영화가 꼭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대박은 없고 중박도 겨우 터지는 처지에 직면했다. ‘야당’이 겨우(?) 300만 이상의 관객을 넘기며 한국 영화 박스 오피스 2위를 차지했으니 말 다했다. 영화진흥위원회 데이터에 기반하여 2025년 한국 영화 시장을 분석해보면 결과가 명확하다. 대박 영화는 전무해졌고, 중박 한국 영화가 거의 실종되었다. 심지어 박스오피스 톱 10에서 10위인 ‘검은 수녀들’ 역시도 160만 명대를 기록했을 뿐이다.

극장이 최고의 여가 공간이었던 시절엔 톱 10에 있는 영화들의 관객을 합치면 대략 6,000만 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2025년은 고작 2,500만 명 선을 겨우 넘겼다. 지난해는 애니메이션들만이 외국 영화 흥행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체인소 맨: 레제편’, ‘주토피아2’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영화 산업을 분석하는 이들은 극장에 관객이 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입장료 가격이 비싸다’는 걸 꼽는다. 주말 기준으로 영화 입장료는 1인 1만 5,000원이다. 2인 기준으로 영화 티켓 사고 팝콘과 음료수를 사면 5만 원에 육박하는 건 금방이다.

극장이 소멸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에 위치한 야구장은 실로 넘치는 관중들로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KBO의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야구 관중은 총 1,088만 명 정도였다. 하지만 2025년은 이미 9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인 1,231만 명을 훌쩍 넘겼다.

그에게 왜 야구가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야구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단지 야구장에 가서 친구와 경기를 보는 그 순간이 굉장히 즐거우며, 에너지가 넘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처럼 한국 야구 관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에는 2030세대의 비중, 특히 여성 관중의 비중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외야석 기준으로 1만 원 미만으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도 영화에 비해 매력적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A씨에게 야구장에서 주로 사먹은 간식을 물었더니 대략 2만 5,000원 선의 치맥 세트를 자주 사먹는다고 했다. 어쨌든 잠실 야구장 외야석 기준으로 하면 주말 극장에서 소비하는 금액과 엇비슷하긴 하다.

대전에 사는 20대 C씨는 주말이면 서울 성수동으로의 여행을 계획한다. 서울 여행의 주목적은 ‘팝업 스토어 투어’다. 약간 시들해졌다고 하지만 성수동의 주말은 여전히 인파로 들끓고, 팝업으로 북적인다. 팝업 투어가 새로운 놀이로 부상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현대의 팝업 스토어는 대부분 온라인 예약을 통해 입장이 이루어진다. 팝업을 주최하는 기업 또는 브랜드에서는 대중 모객을 위해 각각의 팝업 모두에 이벤트를 준비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벤트를 한다는 건 즉 사은품 혹은 선물이 있다는 의미다. C씨를 비롯한 젠지 팝업 투어러들은 시간을 빼는 대신 사은품을 얻는 이 행위에 큰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 놀러 가서 멋있고 예쁜 공간에서 사진도 찍고 선물도 받아요. 일석이조인 거죠!” C씨의 말이다.


이는 ‘케데헌’에 등장하는 까치 캐릭터 ‘수씨’와 호랑이 캐릭터 ‘더피’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작품 및 뮷즈(뮤지엄 굿즈의 줄임말-국립박물관문화재단)와의 유사성으로 폭발적 인기를 끈 것이 크게 한몫했다.

일단 비용적 측면에서도 접근 가능성이 좋다. 국립, 시립 등으로 운영되는 박물관의 경우는 무료가 많으며, 특별전의 경우는 유료로 책정되기도 한다. 미술관 역시 국립과 시립 등 모두 기존 사설 전시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각양각색인 시대
이처럼 영화 극장은 더 이상 청춘이 시간을 때우며 노는 유일무이의 공간이 아니다. 현 시대는 ‘가성비의 시대’다. 정해진 금액으로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어느 정도의 만족을 누리는지가 중요해진 시대다. 그런 면에서 작금의 극장은 가성비가 썩 좋은 놀이터는 아니다. 야구를 비롯한 축구, 농구, 배구 등의 스포츠가 다시금 젠지로부터 각광을 받는 이유는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흥행 역시 스포츠, 팝업 스토어 등의 흥행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은 모든 측면에서 영화의 가성비를 넘어선다. 시대가 변한 만큼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각양각색으로 다변화되고 있다.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픽사베이, 매경DB, 각 브랜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14호(26.01.2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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