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권리로 물드는 도시를 꿈꾸며
최중증 성인 발달장애인에 기회 제공 현장
‘시민으로서 존중’ 한 가족 생애 궤적 변화
지역사회 도움 덕분… 느린 걸음 동행할 것

“인천서구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가 우리 가족의 죽음을 막았다.”
센터를 이용하는 한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남긴 말이다. 최중증 자폐 아들을 27년 동안 키우며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내 아들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또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이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한 가족의 생존과 존엄을 지키는 일임을, 현장은 매일 확인하고 있다.
2019년 문을 연 우리 센터는 지역사회 최중증 성인 발달장애인에게 행복한 삶의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는 파트너 현장이다. ‘마주보는 삶’, ‘행복한 삶’, ‘보통의 삶’, ‘당당한 삶’을 돕기 위해 발달장애 청년들과 동행하고 있다.
센터의 문을 열며 우리는 약속했다. “당신들의 귀한 자녀를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장애 정도가 심하다는 이유로, 대소변 자기처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휠체어를 탄 중복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선별하거나 거절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오직 투명한 공개추첨으로만 이용자를 선정했다. 낮 활동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세상이 함부로 ‘문제’로 규정해 버린 청년들의 일상을 지키는 센터가 되자고 외쳤다.
정원 70명에 600명이 넘는 시민이 설명회와 공개 추첨식에 모였다. 추첨함 앞에서 오열하던 어머니들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학교 졸업 후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집에만 갇혀 지내고, 부모는 직장과 사회생활을 포기한 채 24시간 돌봄에 매달려야 했던 세월이었다. 그 피눈물 앞에서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우리가 믿는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은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좋은 지원자들이 함께 협력하고 보듬으며 보통 사람들의 권리와 기회를 통해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장애당사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와 비장애인의 변화와 성장을 통해서도 이들은 충분히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센터의 미션과 비전, 운영가치의 핵심은 결국 권리이다. 자기결정권, 평등권, 보편성과 고유성의 동시 존중을 기반으로 발달장애인을 ‘보호·성장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존중하고 동행할 때 가족의 삶도 함께 회복된다.
실제 변화는 가족의 일상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최중증 성인 아들과의 충돌이 두려워 10년 넘게 일부러 늦게 퇴근했다던 한 아버지는 “이제는 일찍 퇴근해 아들 손을 잡고 산책한다”고 웃는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복용하던 정신과 약을 센터 이용 1년만에 끊었다는 어머니도 있다. 장애를 가진 자녀의 일상이 바뀌면 결국 한 가족 전체의 생애 궤적이 변화한다. 이런 변화는 센터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지역사회의 지지와 관심이 없었다면 이들에게 충분한 인력과 안전한 환경, 다양한 경험을 보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인천 서구에서 꾸준히 최중증 발달장애 청년과 가족을 지원해 온 SK인천석유화학 임직원의 나눔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한 가정의 생존과 권리 보장에 어떻게 닿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한다. 임직원 개개인이 급여의 1%를 기부하여 조성한 기금으로 센터를 후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우리 센터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 그럼에도 전국 여러 기관과 지방정부, 중앙정부의 자문과 견학이 이어지고 새로운 정책과 사업 기획에 참고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지금 우리 센터로 모이는 관심이 전국 곳곳의 현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더 많은 성인 최중증 발달장애 시민과 가족에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우리 센터는 ‘권리로 물들다!’라는 슬로건처럼 발달장애인의 삶 전 영역이 권리의 색으로 채워지는 사회를 꿈꾼다. 이는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꿈꾸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오늘도 현장에서 느린 걸음으로 일상을 누리는 발달장애 청년들을 사랑하며 나는 조용히 다짐한다.
“이들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고, 이들의 가족이 ‘우리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이 현장은 멈추지 않고 흔들림 없이 갈 길을 가겠다.”
/김재웅 인천 서구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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